- [성경본문] 마가복음12:18-2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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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19.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0.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21.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22. 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23.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26.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산 자와 죽은 자(마가복음12:18-27/2020.1.19.오전)
1. 녹차를 마실 때에는 같은 녹차라도 그 맛은 물의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너무 뜨거우면 차에 함유되어 있는 비타민 C가 파괴되고 카테킨이라는 성분이 많이 나와서 떫은 맛을 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끓는 물을 70-80도까지 식혀서 우려내면 가장 맛있는 녹차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홍차는 녹차의 잎을 발효 시킨 것이기 때문에 90-100도의 뜨거운 물로 우려내어야 제 맛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몇 도 정도가 되어야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될 수 있겠습니까?
계3:15-16절에 보면,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고 하시면서 우리의 믿음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어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벧전1:22절에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고 하였으니, 하나님은 우리가 100도로 끓는 뜨거운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적당한 온도를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다 보니, 생명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변화의 삶을 살지 못하고 생명력을 잃은 종교 생활로 만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죽도록 충성해야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그런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죽은 신앙일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산자와 죽은 자라는 제목을 정해 보았습니다.
2.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려 제거하기 위해서 정치적인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했지만, 예수님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말씀으로 그들의 간계를 물리치시고 도리어 우리에게는 귀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완패를 당해도 쉽게 물러가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공격했는데 그들 가운데 구원 투수가 등판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종교적인 문제로 예수님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좀 특이한 종교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 중에서 오직 모세 5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였고, 인간의 몸이 죽으면 그 속에 있는 영혼도 사라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천사의 존재도 믿지 않았고, 메시아 같은 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정말 묘한 것은, 자신들도 믿지 않는 부활에 관한 내용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범한 실수 중에서 최대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읽고 배우면서도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디서든지 사람에게 있어서는 질문과 경청이 중요합니다.
질문을 하게 되면 내 수준이 드러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만, 질문은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들고, 그래서 질문을 통해서 사람이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이 자신들도 믿지 않는 부활의 문제를 가지고 질문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려 그를 제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배움도 중요하고 삶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많이 배우고 경험이 많아도 한쪽으로 치우치면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고, 생각의 틀도 여러 가지로 바꾸어 가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3. 그들은 성경에 관해서는 박사라고 하면서도 그 성경을 지나치게 오해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사두개인들은 솔로몬의 시대에 성전에서 봉사하던 사독 제사장의 후손들로, 이 가문은 모든 제사장 가문들 중에서 가장 정통성 있는 가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심 보다는 세월이 가면서 점점 현세적이고 이지적이고 정치적인 집단으로 변절되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종교 때문에 먹고 살면서도 신앙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에게 던진 질문이 무엇입니까?
어느 가정에 칠 형제가 있는데, 맏아들이 장가들어 아들 없이 죽었고, 모세의 법에 따라 그 아래 동생이 형수를 취하여 살았지만 역시 아들이 없이 죽자 계속해서 칠 형제가 한 여자를 데리고 살았지만, 아무도 자식을 보지 못하고 나중에는 그 여인도 죽었으니, 부활한 후에는 이 여자가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난해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부활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는 부활에 대한 인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활이란 현세의 육체적인 삶의 연장 선상에 있거나, 혹은 그 보다 더 나은 상태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슬람의 경우는 테러로 자폭하여 죽으면, 그 보상으로 천국에서 72명의 눈이 크고 아름다운 처녀들과 결혼해서 세상에서 누리지 못했던 쾌락을 영원토록 누리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부활은 그런 수준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로 살아 있을 때에 가진 그 생명이 부활 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지만, 그러나 빌3:21에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의 형체로 변형이 되기 때문에 식욕이나 성욕이나 물욕이나 명예 욕 같은 인간의 육체가 가지고 있던 그런 성질의 욕구에서 완전히 해방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이나 소유의 개념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결혼이나 남녀의 관계가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영광 속에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부활은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이며, 마치 라디오로는 텔레비전의 전파를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는 누릴 수 없는 세계가 부활 이후의 영광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알지 못하고, 말씀이 주는 영생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불가해 한 세계일뿐입니다. 문제는 오늘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핵심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 27절에 기록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는 이 말씀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다고 하는 과거를 말하지 않고 현재형으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은 오래 전에 이미 죽어 육체는 썩어서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 생명은 하나님 품에서 영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후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 라고 하였고, 요5:29에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고 함으로 육체를 가진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부활이라는 과정을 통과하는데, 문제는 그 부활이 영원한 사망과 심판을 받기 위한 부활인지, 아니면 영원한 영광과 상급을 누리기 위한 축복인지, 과연 내가 장차 부활하면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총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천국이 기다리는 영생과 영광의 부활로 나아가는 줄 믿습니다.
5.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질문하는 그 질문이 그야말로 그들의 인생과 삶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한 여자를 놓고 칠 형제가 한두 번도 아니고 일곱 번을 반복하면서 죽고 결혼하고 또 죽고 결혼했지만, 그들이 아니 그들 가문이 원하던 상속자를 한 사람도 얻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24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성경도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수고하고 얻기를 원하는 것은 일곱 번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없는 사람들의 세계는 늘 죽음과 두려움이 함께 할 뿐만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 이후에도 영원한 형벌의 고통이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해서 자살도 시도 하지만,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자기 소유와 힘만 믿고 살다가 죽어서도 지옥에서 하나님 없이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고 부활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는 인생처럼 불쌍한 존재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육체는 시간을 따라 연약하고 노쇠해져 가지만, 사람의 생명은 죽는다고 끝이 아닙니다.
그 영혼은 천국이든지 지옥이든지 그곳에서 영생한다는 사실, 믿고 싶지 않아도 이것은 사실이며 성경은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귀저기가 필수품이지만, 자라나면 도리어 귀찮은 물건이 되고, 성인이 되면 그런 것에 의지하여 살던 어린 시절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연약한 육체로 있기 때문에 많은 것들이 필요하고 또한 그런 것을 의지해서 살아야 하지만, 부활 이후에도 그런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도리어 영생을 누리는데 방해가 될 뿐입니다.
우리가 장차 가는 천국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 분의 변함없는 사랑과 권능에 의해 살아가는 곳입니다.
6. 부활의 신앙은 사랑이 없는 이 차가운 세상에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뜨거운 사랑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자는 이미 천국에서의 영생을 얻은 자로 살아가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부활 신앙만 있으면 죽어도 다시 사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뿐 아니라, 이 부활 신앙으로 세상의 어떤 환란이나 문제나 시험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의 부활이 심판의 부활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광의 부활이 되었음을 기뻐하며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 이것이 우리가 받은 남다른 은총이요 축복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부활을 기다리는 우리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영원토록 살아있는 산자의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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