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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막고 있는 것(마가복음16:1-11)
고영수 2020-08-22 추천 0 댓글 0 조회 47
[성경본문] 마가복음16:1-11 개역개정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무덤을 막고 있는 것(마가복음16:1-11/2020.8.23.오전)

1.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가구 중에는 그 재질이 철재나 플라스틱도 있지만, 사람들이 제일 많이 선호하는 것은 나무로 만든 가구입니다. 그런데 나무로 만든 가구라 해도, 그 종류는 다양합니다.
천연 목재를 가져다가 만들어 사용하는 가구가 있는데, 나무가 원래 가지고 있는 결이나 색깔, 그리고 부드러움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기 때문에 사용하면 할수록 친근감과 무게가 느껴집니다마는 가격이 비쌉니다. 
그 다음에 집성목이라고 해서, 여러 가지의 나무를 가져다가 붙여서 만든 가구로 책상, 서랍, 선반 등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목재입니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애용하는 나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합판으로 흔히 가구의 뒷면에 사용되는 목재입니다.
가격도 비싸지 않고 천연 나무보다 훨씬 가벼워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뭇조각이나 톱밥을 본드와 섞어서 압축해서 만든 파티클 보드라는 것으로, 가격은 싸지만 강도가 약하며 습기에 약하고 건강에도 좋지 않은 물건입니다.
시중에 나가보면, 안에는 파티클 보드를 사용하고, 가구 표면에 나무처럼 보이게 프린트를 해서 본드로 정교하게 붙여 그럴듯하게 보이는 가구들이 있는데, 그야말로 최악의 가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집의 신발장이 그런 종류의 가구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나무로 만든 가구들이고, 겉으로 보면 색깔이나 디자인이나 기능성이 좋으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가격에 차이가 많이 나는 만큼, 가치와 느낌이 다릅니다.

2. 이것은 우리의 신앙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목이나 집성목 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 그런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안에는 톱밥이나 나무 부스러기를 모아다가 본드로 비벼 넣고, 겉에는 나무처럼 프린트 한 테이프를 붙여 놓은 것 같은 그런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면서도 겉모습에만 치중하다 보니, 그 내면 세계는 여전히 공허하고 답답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평소에 불평이나 잘못된 행동으로 드러나면서 사람들에게 교회 전체를 욕먹게 만드는 것입니다. 
각 가정에서 어린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님의 손길과 환경에 따라 성품과 인격이 형성되듯이, 우리의 신앙 생활도 말씀과 성령에 의해서 영적인 성품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우리 안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 이 사람은 평소의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함이, 친절과 부드러움과 선행이나 아름다움으로 드러나게 되고,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예배가, 이곳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이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내려가서 생명의 뿌리를 내리도록 예배에 집중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시시각각으로 들려오는 지구촌의 소식은 우리를 고통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혹시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니 마음이 편해졌습니까? 내일에 대한 염려가 사라졌습니까?
생각해보면 고맙고 감사하지만, 이것 때문에 우리 인생이 변화되거나 삶이 윤택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텔레비전을 통해 흘러나오는 뉴스를 시청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소식 때문에 내일에 대한 안심이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저는 막13장의 설교를 통해서 지금 우리 시대가 어떤 시대이며, 이런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소망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환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분의 자녀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오늘 이 시간, 이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3. 오늘 본문의 내용은, 안식 후 첫 날, 곧 주일 이른 아침에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셨고, 그래서 
그가 누워계셨던 무덤은 비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 몇 명의 여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무덤에 찾아왔다가 무덤이 열려 있었고, 그곳에서 천사를 통해 예수님이 부활하신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활의 현장을 목격하고 천사에게 부활의 소식을 들은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 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목격한 것이 무엇입니까?
무덤의 돌문이 열려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은 사라졌고, 평생에 한 번도 만나 본 적도 없었던 천사를 만나게 된 일과, 그를 통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는데, 이 모든 것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건이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통해 전해 들은 이 부활의 소식을, 돌아가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먼저 갈릴리에 가서 그들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지 못하면 말할 수 없습니다. 믿지 못하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런데 믿지 못하면서 말하고 믿지 못하면서 행동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사기꾼의 행위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려고 했기 때문에, 무덤을 막고 있는 돌문 때문에 고민했는데, 막상 현장에 도착해 보니, 그들이 염려하는 무덤의 돌문은 이미 열려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들이 염려하던 문제가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더 큰 두려움과 놀람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4. 빈 무덤을 지키고 있던 천사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증인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들은 현장을 목격하고 천사를 통해서 두 번째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사실을 목격하고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은 알고 있는 만큼 말할 수 있고, 경험한 만큼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세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응답, 믿음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은 기도하지 말라고 해도 기도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은 예배가 우리 인생에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여러분의 질병이 치료 되었고, 골치 아픈 문제가 해결되었고, 온갖 두려움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분명히 기도가 응답된 것이고 하나님 살아 계신 믿음의 역사를 체험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들어 본 적도 없고 생각도 못했던 일이 눈앞에 일어나자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반신반의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제 생각, 제 경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세 종류의 신자를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지식으로만 믿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올해 전 세계로 확산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서, 지금까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지식의 세계가 얼마나 허술하고 복잡하기만 하고 힘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둘째는 기독교를 인생의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하고 말씀을 교훈으로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의 세계를 자기 인생에 약간의 도움을 주고 체면 치례를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셋째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지식은 인생을 고통 하게 만들고, 그 속에 갇혀서 고생하다가 그 잘못된 생각과 고집 때문에 망하게 하지만, 여호와의 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죽은 사람도 살리는 부활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말씀으로 지금도 자기 백성에게 영육 간에 풍성한 생명의 양식으로 공급해 주십니다.
 
5. 예수님은 평소에 여러 번 자신의 부활에 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막14:28절에,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고 하셨는데, 오늘 본문 7절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또한 요11:25-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고 하셨습니다.
이 이외에도 자신의 부활에 관해서 많은 말씀을 해 주셨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기 생각과 상식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의 경험이 너무 생소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포함한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이 안치된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는 돌문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 돌을 치우고 무덤 안으로 들어가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들에게는 그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덤에 가 보니 이미 돌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고, 천사를 통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으니, 예수님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녀들은 감당할 수 없는 이 소식에 놀라고 두려워하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는 돌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오래 전부터 품고 있었던 부활에 대한 불신앙이 예수님의 무덤을 여전히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6. 사실 우리가 살면서 제일 두려워하고 하나님 앞에 제일 많이 회개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불신앙입니다.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고 하였고, 예수님도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 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제일 충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불신앙입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보다는 불신앙과 의심과 두려움이 더 충만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또한 미래에도 변함이 없는 줄 믿습니다.
그 분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축복과 능력 또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불신앙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구원하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모세가 왜 가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까?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온 천하가 두려워하는 그런 힘을 가진 사사 삼손의 불행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보다는 자신의 힘과 의지를 더 믿는 불신앙 때문입니다.  
불신앙은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게 하며, 내 생각과 고집을 버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불신앙은 나를 고통 하게 만들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돌덩어리가 예수님의 무덤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오랜 세월 동안 자리 잡은 불신앙의 뿌리가 예수님의 무덤의 문을 막고, 예수님의 부활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2천 년 전에 예수님은 부활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 속에는 아직도 예수님이 잠자고 계시고, 죽은 채로 부활의 능력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주님의 몸 된 이 교회가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부활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으로 교회는 죄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고, 병든 심령을 치료하고, 저주 받은 삶을 축복으로 바꾸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는 이것입니다.
  
7. 지금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는 불신앙이라는 돌덩어리에 막혀 있습니다.
이 돌덩어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이 돌덩어리가 기도 응답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돌덩어리를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온 인류가 시날 평지에 모여서 바벨 탑을 쌓아 하나님의 보좌 앞에 까지 올라가려고 했지만, 그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고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망 없는 인생들은 어떻게 해야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스스로 그 무덤의 문을 열고 나오신 것처럼, 우리 인생에 막혀 있는 만 가지의 돌멩이를 주님이 치워주셔야 우리도 부활의 능력과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나 사이를 가로 막고 서서 부활의 능력을 받지 못하게 만드는 이 불신앙의 돌문을 내가 아니라 주님이 열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부활에 대한 감격도 사리지고, 믿음의 신선함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면 알게 모르게 내 안에 불신앙의 돌문이 이 부활의 능력을 막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감격도 사라지고, 기도의 응답도 사라지고 믿음도 연약해 지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생각은 못하고, 죽은 예수님의 시신을 위해서 향을 바르는 것이 그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믿음의 행위요 의로움이라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이 평소에 하신 부활에 관한 말씀을 기억하였더라면, 부활의 감격을 안고 예수님을 만나러 갈릴리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8. 개와 고양이가 서로 펜팔을 시작했는데, 더디어 만나기로 하고 아름답게 치장을 한 후에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서로의 모습을 보고는 실망하고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고양이는 꼬리를 내리는 것이 반가울 때 표시이고, 개는 꼬리를 세우고 흔드는 것이 반가움을 표시하는 것인데, 서로가 제일 싫어하는 싸인 이라는 것을 서로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표현을 정확하게 읽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 사랑의 실체 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고 멸시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의 능력은 지식이나 인생 경험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빈 무덤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이 여인들처럼 부활 사건은 도리어 두려움과 염려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는데, 여전히 이 여인들은 무덤의 돌을 누가 옮겨 줄 것인가? 예수님의 시신를 누가 훔쳐 갔을까? 누구를 만나야 돌려받을 수 있을까? 쓸데없는 고민에 빠져 고통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사망에 사로잡혀 여전히 무덤에 누워있는 그런 예수가 아니라, 생명의 주인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에 대한 생명의 승리요, 악에 대한 의로움의 승리이며, 거짓에 대한 진리의 승리이며, 저주와 고통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승리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1:16) 이라고 하였습니다.
부활을 통해 나타난 이 하나님의 능력이 오늘 우리와 이 땅 이 민족을 살리는 줄 믿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오늘 내 안에 있는 이 불신앙의 돌덩이를 믿음의 능력으로 굴려 버리고, 부활의 영광 가운데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축복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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