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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앙의 시대(마가복음16:12-18)
고영수 2020-08-29 추천 2 댓글 0 조회 54
[성경본문] 마가복음16:12-18 개역개정

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불신앙의 시대(마가복음16:12-18/2020.8.30.오전)

 

1. 우리가 인터넷을 사용하면 반드시 그 사용한 기록이 자신의 컴퓨터와 웹페이지를 관리하는 회사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전화나 메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언제, 어떤 목적을 가지고 홈페이지에 접촉을 해서 무엇을 검색하고, 어떤 내용의 정보를 수집했는지 그 이력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상에서 남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그 사람만의 숨겨진 비밀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력을 타인의 컴퓨터에 몰래 침입해서 불법으로 그 내용을 수집해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람들의 경향이나 마음속을 다 들여다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 까지 과학의 힘으로도 밝혀내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 사람 속에 무슨 생각,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이것은 비밀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100 여 년 전에, 일본에서 이런 사람의 마음을 낱낱이 밝혀 공개한 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쯔메 소우세끼(夏目漱石) 가 쓴 마음(こころ) 이라는 소설입니다.

명치 시대에 한 젊은이가 친척의 배신으로 전 재산을 빼앗기고 상처를 입고 살아가던 중, 그가 머물고 있는 하숙집에 함께 기거하는 K 라는 친구가, 하숙집의 딸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고, 자신도 그녀에게 마음이 있었기에 그를 배신하고 그녀를 차지하게 되자, 이 사실을 알고 비관하던 K는 자살을 합니다. 비록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은 했지만, 결코 행복할 수 없었던 것은,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신의 배신 행위를 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이런 고통의 이력들을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私) 라는 인물에게 장문의 편지로 밝히면서, 본인도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는 그런 내용입니다.

 

2. 지금까지 700만 부가 넘는 출판부수를 넘기면서 지금도 일본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쯔메 소우세끼는 이 소설 이외에도 많은 작품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는 것은, 인간의 죄에 대한 개념입니다. 법에 저촉되는 것만이 죄가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것 까지 같은 죄로 취급하고 있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을 담은 작품이 1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많은 일본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심성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는 생각과, 무엇보다도 요즘 한국 사람들, 특히 지도자들이 법에만 걸리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으며, 법에 걸리더라도 권력의 뒷 배경만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그런 인식을 가지고, 온갖 거짓말로 도배를 하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지난주보다 더 강렬하게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의 불신앙에 대하여 책망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그들의 마음을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첫째는, 그들에게 믿음이 없다는 것과, 둘째는,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을 헛된 망상 쯤으로 생각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사실 요즘 세상에 만연하고 있는 단어 중에 하나가 가짜 뉴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썩어 문드러진 대한민국의 언론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온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있으며, 시간이 갈수록 불신의 고통은 깊어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신뢰감이나 믿음이 상실된 시대, 불신앙으로 가득찬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있었던 그 당시의 제자들이 당면한 상황도 지금과는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부활이란 상식 밖의 이야기이며, 허황된 생각이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마음 상태를 가리켜 완악하다고 꾸짖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 사회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두 세 사람의 증인이 있으면, 사실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본문 14절의 말씀을 보면,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한" 다고 하셨는데, 부활을 증거 하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수의 증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완악하다는 것은, 굳어지고 무감각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둔해졌다는 뜻입니다.

결국 완악한 이것이, 불순종과 목이 곧은 것과 관계를 이루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4. 믿음이 없으면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완악하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으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게 됩니다.

13절에서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는 이 구절이 그 당시 예수님 제자들의 영적 상태였습니다.

만일 마가 다락방의 성령 강림 사건이 없었다면, 아마 그들은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자들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러한 불신앙의 위기 속에 빠져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신 명령과 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5절에 보니,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는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제자된 자들에게 주어진 절대적 사명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잘 안됩니다. 

마음에 부담을 느낄 때도 있으며, 적당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상대방이 복음을 거부하게 될 때의 부담감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고 믿지 않는 것은 전도자의 책임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선택하던지 그것은 전적으로 본인들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는데 그것은 전해야 할 때, 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말하기를,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요8:47) 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부담을 가지지 말고, 기회 있을 때마다, 기회를 만들어 열심히 전하기만 하면 나는 내 할 일을 다 한 것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사명자인 줄 믿습니다.

 

5. 그렇다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또 한 가지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7-18절의 말씀입니다. 중요한 말씀이니 함께 봉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니라". 

본문을 가볍게 분석해 보면, 첫째, 귀신을 쫓아내며, 둘째, 새 방언을 말하며, 셋째, 뱀을 집어 올리며, 넷째,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으며, 다섯째, 병자에게 손을 얹은즉 낫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의 표적 가운데 내 자신이 가장 쉽게 믿을 수 있는 것과 쉽게 믿어지지 아니하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느 것과 어느 것입니까?  

저의 경우는 귀신을 쫓는 것과 병자를 치유하는 것이 제일 간단하고, 제일 곤란한 것은 독을 마시는 것입니다. 물론 쓸데없이 뱀을 집어 올리고 독을 마시는 그런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표적이, 어떤 차별이나 제한이 없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17절 서두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과연 이런 능력이 얼마나 일어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런 일은 내 자신이 행한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다면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6.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조금 전에 함께 읽었던 1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두 가지의 중요한 열쇠가 있는데, 하나는 「믿는 자들」이라는 것과 그 다음에는 「내 이름」이라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내 죄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나의 구주로 믿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 자기 이름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똑같은 성과 이름을 가져도, 그 이름을 소유하고 있는 본인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이름의 가치와 능력은 천차 만별입니다.

5살 먹은 우리 손녀의 이름과 할아버지인 제 이름이 가지고 있는 힘은 전연 다릅니다.

9급 공무원이 가지고 있는 이름과 국가 정상에 있는 대통령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힘과 권세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름은 어떻습니까?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하여 말하기를,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 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10-11)고 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영광과 풍성한 축복이 어떤 것인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주권자들에게도 이름의 큰 권세가 있지만, 전부 일시적인 것이고 제한적인 것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영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며, 온 세상과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케 하는 권세(엡1:21-23)가 영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와 같은 그분의 위대하신 이름을 믿는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7. 오늘 본문의 서두에 보면, 시골 길로 내려가는 두 제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들에 관해서는 누가24:13-35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만 알고, 부활에 관한 사실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눅24:17) 있었다고 했으며, 오늘 본문에서도 역시 믿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불신앙에 빠져서 방황하고 고통하고 있는 그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예언된 선지자들의 말씀을 가지고 그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절대로 믿지 못하겠다고 큰소리치던 도마에게는 손에 난 못 자국과 옆구리에 있는 창 자국을 보이시면서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고, 오늘 본문에서도 식사 중에 있는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언약의 말씀을 주심으로, 불신앙을 버리고 사명자의 능력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도 오늘날처럼 부활을 부인하는 거짓 뉴스는 많았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무덤을 지키던 로마 병사들에게 돈을 주면서, 부활이 아니라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고 소문을 퍼뜨리게 만들었습니다(마28:12-13).

현실이 이 지경이니 어찌 제자들이라도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마28:17절에 보면,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있는 중에도,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불신앙에 빠뜨리고 있는 장본인들이 누굽니까?

거짓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와 거짓 증거가 이 시대를 불신앙의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8. 우리의 믿음은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어떤 증거를 통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사신, 부활의 예수님이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 주실 때, 비로소 믿는 자가 되며,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실 때, 우리는 이 불신앙의 시대에 표적을 드러내는 능력 의 사람들이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은, 만민이 반드시 들어야 할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앙으로 위기에 빠진 이 시대에 우리가 그들에게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지하는 믿음의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부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는 누가 함께 하시며, 또한 그 분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줌으로, 불신앙의 위기에 빠진 이 시대를 치료하고 구원하는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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