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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복음인가?(마가복음16:19-20)
고영수 2020-09-05 추천 3 댓글 0 조회 51
[성경본문] 마가복음16:19-20 개역개정

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왜 복음인가?(마가복음16:19-20(2020.9.6.오전)

 

1. 사람들이 스포츠를 즐기고 열광하는 이유는 그곳에 정해진 룰이 있기 때문입니다.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심판과 감독관이 있으며, 최근에는 비디오나 인공지능으로 결과를 판독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팬들의 즐거움과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전 세계가 열광하는 월드컵 축구 때에는, 가끔 심판들의 오심 때문에 그야말로 울분이 폭발하는 사람들도 많고,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하는 팬들끼리 싸움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포츠는 엄격한 룰과 공정한 심판이 있을수록 재미를 더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룰을 어기고 편파적인 판정이나 오심이 반복된다면, 관중들의 야유와 경멸로 그렇게 뜨거웠던 응원과 열정은 식어지고,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스포츠뿐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공정한 룰이 지켜지기를 원합니다.

국가의 법이 공정하게 적용되어지고, 공공질서가 유지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은 강한 자나 약한 자나 서로 공존하며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일본에서 수상이 사임을 밝히면서, 후임자를 놓고 자민당 안의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 경선이 공정한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입니다.

몇몇 파벌의 힘 있는 자들이 모이면 그곳에서 백성들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 정치 집단들이 원하는 것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온 세상이 지금, 그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의 생각에는 헌법이야말로 국가를 유지하는데 최고의 권위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 헌법 위에서 국가의 법을 마치 천 조각처럼 찢고 짜깁기 하는 듯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공정한 룰이 사라지는 그런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2. 인간의 삶 자체가 욕망의 덩어리로 뭉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 욕망을 뿌리 뽑으려고 하지만, 인간의 욕망을 뿌리 째 뽑아버리면, 인간의 삶의 의욕 자체가 상실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욕망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욕망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 분출해 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과 그 영혼의 가치는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어떤 욕망은 사람의 힘으로는 다루기 어려울 정도로 난폭한 것도 있으며,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어지럽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욕망은 의로움과 거룩한 비전을 가지게 만들며,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찾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 세상에서 공정한 룰이 파괴되고, 갈수록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는 이유는, 우리의 인격과 신앙이 이 욕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욕망을 조절하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 훈련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욕망을 하나님 섬기는 일에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왜 복음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복음 이외에도 우리 인생에 소중하고 아름답고 귀한 것들이 많이 있으며, 사람들이 추구하고 소망하는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왜 우리는 하필 복음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산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는 왜 우리 가운데 오셨으며, 그가 이 세상에서 성취하신 일이 무엇이며, 또한 그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경우는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고 착하게 살면 구원을 얻는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가 복음에 대해서 지나치게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을 통해 지식을 쌓아가며, 그 지식을 바탕으로 변화되는 이 세상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되지 못하면 빠른 속도로 변화되는 이 세상에 적응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육체를 가진 인생의 삶 보다 더 귀한 내 영혼과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아무런 준비도 없고 지식도 없고 경험이 없이 어떻게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복음은 무엇이며,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위해 어떻게 살며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 깨달아서, 영원한 승리자, 영원한 영광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합니다.  

 

3.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그 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다 이루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육체로 계실 이유가 없기 때문에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에 앉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십자가로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는 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제사법이며, 율법적인 조건들이 많았지만,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완성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그런 일을 반복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1: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 다고 하였고, 행2:21절에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고 부를 그 이름은 어떤 이름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을 의지하며, 그 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기만 하면,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사람을 괴롭게 하는 엄격한 종교 생활도 아니고, 무거운 짐을 지우는 율법의 멍에도 아니고, 십자가로 인한 자유와 평안과 영원한 기쁨입니다.

독일에 마티 바덴(Marti baden)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여행을 가서 값싼 여관에 머물렀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구두가 없어졌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서 욕을 하고 나중에는 하나님도 원망했습니다.

그 때 친구가 찾아와서 헌 구두를 빌려 주면서 오늘 주일이니 교회나 가자고 했습니다.

따라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어떤 사람을 보니 두 다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찬송을 부를 때에도 눈물을 흘리며, 기도 할 때에도 간절한 마음을 담아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고 한심한 인간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두 다리를 잃어버렸는데, 하나님께 감사하고, 구원 받은 은혜에 감격하고 있는데, 나는 잃어버린 신발은 또 새것으로 구입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데, 훔쳐간 사람을 욕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으니 그 부끄러움에 쥐 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이 불구자를 통해서 감화를 받은 마티는 하나님께 감사할 일만 생각하며 감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독일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재무부장관이 되고, 독일 경제를 부흥시킨 훌륭한 정치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4. 나라고 하는 존재가 내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로 보이고 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까칠하고 신경질적이고, 계산에 빠르거나 인색하고, 혹은 난폭하거나 교만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아닙니까?  

아니면, 나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이 하고 싶고 쉬기 좋은 편안한 장소처럼 여겨지고, 어려움 당한 사람에게 잠시만이라도 피난처가 되어주고, 때때로의 즐거움과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만 되면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치 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살기도 벅차고 어려운데 어떻게 남을 생각하고 남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십자가를 붙들고 이 복음을 외쳐야 합니까? 

이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고, 이 복음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나타내며, 그분의 사랑으로 인해 죄로 말미암아 비참한 상태에 빠진 인간이 어떻게 변화되고 새로워지는지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고 하였습니다.

복음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멀어지고 약화되고 사라지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의 복음은 영원한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은 변함이 없으며, 이 사랑은 변할 수도 없으며, 취소될 수도, 바뀔 수도 없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5. 세상은 착하게 살아라, 열심을 내어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면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도리어 그렇게 살려는 사람들, 진실과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핍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복음은 우리 인생에 분명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제자들에게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 보다 큰 일도 하리"(요14:12)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18세기를 가리켜 한 마디로 영적으로 죽은 시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 합리주의를 반박하는 보일 강좌가 개설되었고, 성공회의 주교인 죠지 버틀러가 이성주의를 대항하기 위해서 쓴 「종교의 유비」(The Analogy of Religion)가 나왔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자신은 결혼도 하지 않고 금욕주의자로, 성경 연구에 최고 열심을 내었지만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내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죠지 윗필드와 요한 웨슬리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설교에 성령께서 불을 붙여 주시니 부흥의 불길이 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들은 혼란을 일으키는 장본인이라고 비난했지만, 성령의 역사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 위대한 설교자들이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죠지 휫필드는 설교를 할 때마다 두 뺨이 눈물에 다 젖었다고 합니다. 

그의 설교를 듣는 청중들도 구원 받은 자의 감격에 빠져 함께 울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6. 왜 복음입니까? 왜 복음뿐입니까? 

복음은 죄로 인해 마귀에게 사로잡힌 인생이 그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말하기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하였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4:7-8)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살면, 이 복음의 능력으로 마귀를 물리치고, 이 복음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지식으로 알고 가르치는 교회는 많습니다. 

이 지식을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죄 가운데 빠져 고통 하는 인생을 가장 확실하고 빠르게, 그리고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고, 그가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착하게 살고 신앙 생활을 열심히 만 하면 다 구원 받는 줄 착각합니다.

착하게 살면 구원을 얻습니까? 남보다 뛰어난 열심만 있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복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한 계시록에 라오디게아 교회가 나오는데, 겉으로 보면 이 교회는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완벽한 교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고 하시면서,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3:16-17) 고 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처럼 책망을 받고 부끄러운 교회가 된 이유는 복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7. 우리 인생을 죄에서 구원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케 하는 것은 오직 십자가 복음뿐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고통과 영원한 사망에 갇힌 이 비참한 인생을 치료하고 회복하며 구원하시는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하나님 알지 못하고 죄와 마귀에게 사로잡혀 고통하며 살았지만, 전도자를 통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만났고, 성령께서 이 복음을 깨닫게 하심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복음을 깨달으면, 영원한 하늘나라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옴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강물처럼 흘러가며, 이 복음을 깨달으면 우리 인생의 문제가 무엇이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분명한 답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복음을 깨닫고 고백한 것이 무엇입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바로 이것입니다.

인생의 본질은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곤고함과 사망의 고통에 빠져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깨닫게 된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20절에 보니, 지금까지 예수님이 하셨던 일들을 제자들이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따라오는 분명한 표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 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믿고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이 소유한 능력이요 역사입니다.

 

8. 죄에 빠진 인생을 구원하고 치료하고 소망을 주며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은 오직 복음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한 이 복음은 내 자신 뿐만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 축복이요 능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뜻은 바로 이 일, 곧 복음을 위해 살고 복음으로 인해 기뻐하고 복음 때문에 생명도 내어놓는 사명자로 살도록 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된 자의 삶은 십자가 복음 만을 자랑하고, 십자가 복음으로 영혼을 구원하고,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예수님의 유업을 이어가는 영원한 승리자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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