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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하나님, 하나님의 이스라엘(신명기1:19-33)
고영수 2020-10-03 추천 2 댓글 0 조회 606
[성경본문] 신명기1:19-33 개역개정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을 떠나 너희가 보았던 그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아모리 족속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너희가 이르렀나니

21.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22.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23. 내가 그 말을 좋게 여겨 너희 중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매

24. 그들이 돌이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고

25. 그 땅의 열매를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26.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28. 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스라엘의 하나님, 하나님의 이스라엘(신명기1:19-33/2020.10.4.오전)

 

1. 우리나라의 옛날이야기에 보면, 호랑이가 여우를 잡아먹으려고 하자, 궁지에 몰린 여우가 웃으며 하는 말이 이 세상에 나 보다 강한 짐승은 없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호랑이가 믿지 않으니, 그럼 그 증거를 보여 줄 테니 날 따라와 보라고 하면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호랑이가 뒤 따라가면서 보니, 정말 만나는 짐승들마다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가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놀라서 슬그머니 도망을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짐승들이 여우를 보고 도망을 간 것이 아니라 뒤 따라오는 호랑이가 무서워 도망을 간 것입니다. 

여우는 그것도 모르고 온갖 교만을 떨면서 가다가 사나운 늑대에게 잡혀 먹히고 말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우리에게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내가 잘 나고 똑똑하고 능력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 형제나, 이웃사촌이나 스승이나 선배들 덕분에, 그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후광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이 살아가고, 또한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그들 덕분에 피할 길이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망하는 지름길로 가려면 열심히 교만을 떨고 자신만 믿고 큰 소리를 치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이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인간의 연약함을 보완하기 위해서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2. 이스라엘이 원래는 어떤 민족이었습니까?

요셉이 70명의 가족을 이끌고 애급에 내려간 후, 세월이 지나면서 노예로 전락했고, 무려 43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그들을 애급에서 구원하였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가리켜 한국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족보도 근본도 없고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노예 출신들이었습니다.

당시 애급과 중동 지역의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 히브리인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유브라데) 강을 건너 온 자라는 의미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일본인이 한국인을 비하해서 조센징이라고 하고, 한국인이 일본인을 쪽발이라고 하고, 동양인이 서양인을 양키라고 하는 것처럼, 그들은 이스라엘을 근본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으로 본 것입니다.

아브라함 시대만 해도, 우수한 민족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가장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아브라함의 택하시고, 그의 자손들을 자신의 백성이요 기업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출애굽에서 부터 시작하여 남 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무너지기 까지의 역사를 보면, 불신앙의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 어떤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어떤 백성이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언약을 이루시고, 그 언약에 충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새 힘을 주시며 그들을 축복하셨고, 함께 동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1절에,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두렵다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19절에는 "크고 두려운 광야" 라 하였고, 29절에도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담대함과 두려운 대적을 물리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22-23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의견을 존중해 주시고, 그 일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도와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정탐꾼으로 갔다고 돌아온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25) 고 말할 정도로,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서 예비하신 축복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4. 계속해서 31-33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보다 앞서가시면서 출애굽을 방해하는 애급을 대신 싸워 물리치시고, 홍해 바다에 길을 내어 그들을 무사히 건너게 하셨고, 이후로도 계속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날 동안에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해 주셨습니까?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31) 다고 하였습니다.   

33절에 보면, 심지어 이스라엘이 잠시 머물기 위해서 장막을 치는 장소까지 앞서 가시면서 찾으셨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지키시고 인도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신실하셨습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험하는 것은 신실함의 가치라는 것이 매우 귀하다는 것입니다.

신실한 성품 그 자체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신실한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특별한 축복이고 은혜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실함은, 허위나 속임이나 사악함이 없이 순수하고 진실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믿는 자들에게 적용될 때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경건함과 거룩함에 이르게 하며, 하나님께 적용될 때에는 언약에 대하여 변함이 없고, 반드시 약속하신 대로 성취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택한 자기 백성을 위해서 신실하셨고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부끄러운 것 중에 하나는,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 때는 저렇게 말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나중에는 또 다른 말을 합니다.

그 안에 의로움이나 진실함이 없고 사악함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신실하신 여호와, 자기 백성에 대하여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입니다.

그가 대하여 이스라엘은 어떻게 행하였습니까?

 

5.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행위는 본문26-27절에 가장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명령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베푸신 은혜를 원망으로 갚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백성을 멸하는 악한 신으로 매도하였습니다.

두려운 자를 이기도록 새 힘과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 앞에 낙심하고 말았습니다.

전쟁터에서 지휘자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은 사형감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처음에는 정탐꾼을 보내자고 말하면서, 가나안에 대하여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는데, 정탐 후에 그 태도가 급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7절에 보면, 그들이 아모리 자손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모리 족속은, 요단 동편에서 큰 왕국을 이루고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민21:21-32).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 땅을 조용히 통과만 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을 때, 그 제의를 거절하고 군대를 모아 대항하였고, 그 때, 아모리 족속은 이스라엘에게 대패한 후에는 변방에 힘이 없는 세력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아낙 자손들도 거인으로 유명한데,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하면, 여자의 키가 2미터 정도였다고 하며, 참고로 신3:11절에 나오는 바산 왕 옥의 침대 길이는 약 4미터 정도였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러니 싸워보기도 전에 사기가 죽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출애굽에서부터 시작하여 광야 4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수없이 많은 기적과 능력을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32절에 보니,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 다고 했습니다.

 

6. 이스라엘이 40년의 세월을 보낸 광야라는 곳은 그야말로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공기와 태양 빛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300만 가까운 무리가 그것도 40년의 세월을 먹고 마시고 입고 전쟁까지 치루면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 증거를 신8:4에서 볼 수 있는데,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 다고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뜨거운 태양빛과 사막에서는 의복이나 신발이 빨리 닳아 없어지는데, 아무리 현대의 기술이 발달해도 40년 동안 입고 신어도 헤어지지 않는 옷과 신발은 없습니다.

사실 광야 40년은 환경이 열악한 만큼, 매일 부어지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는 말과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그런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니,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7. 첫째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기적이 일상화 되면 그것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아무리 위대한 능력과 기적이라도 세월이 지나면 그것은 일종의 신화로 바뀌고, 사람들의 기억은 퇴화되면서 신화는 마침내 사람들의 농담 거리가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셋째는, 불신앙의 배후에는 반드시 사단이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멸망 시켜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 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단의 전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을 유혹하고 그들에게 악한 생각을 가져다주어 망하게 합니다.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선진국 이상으로 잘 살게 된 배경에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리더십이 있는 대통령들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도자들과 함께 나라를 지키며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쏟아낸 땀과 눈물과 피의 희생을 많은 사람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일부는 자신들의 능력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희생하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땀과 흘린 피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자유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소련, 중공, 북한의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것은 우리만의 힘이 아닙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우방 국가들의 도움 때문이었습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것도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였습니다.

이제 7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이런 귀한 기억들이 우리의 모든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어느 개인이라도 이 지구촌에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나라와 민족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8. 그런데 본문에서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낙심하여 밤새도록 통곡하였습니다.

원래 정탐꾼의 보고를 들으면, 문제가 무엇이고,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떤 행동을 일으켜야 하는지 생각하고 의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성통곡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좋은 의견을 제시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서 죽이려 했습니다.

감히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의견은 꺼내지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의논이 안 되니 대책도 세울 수 없으니, 그냥 그대로 무너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40년의 세월을 광야에서 방황하며 고난의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첫째는, 이스라엘은 오랜 세월 동안 애급에서 노예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노예에게는 자기 생각이나 판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들은 머리를 쓰는 대신에 육체를 사용할 뿐입니다. 오직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하면 됩니다.

둘째는, 두려운 마음이 생기면, 그 곳에는 더 이상 믿음이 자리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핑계거리를 만들어 내고 거짓말을 합니다. 모든 일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사실은 내가 원인이고, 두렵고 떨리는 내가 문제인데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고 환경과 조건을 탓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불신은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9. 그들이 출애굽하면서 체험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함 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변함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는 광야 길이란 크고 두려운 곳이란 사실을 하나님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생명이 살아갈 수 없는 곳, 뱀과 독충과 예측할 수 없는 기후의 변화, 모래 바람이며, 낮에는 찌는 듯 한 더위에 밤에는 살을 에는 추위에, 그것뿐만이 아니라 사방에서 예고 없이 나타나는 대적들의 공격을 생각하면, 광야 40년 동안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40년을 크고 두려운 광야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앞서가시면서 저들을 위해서 대적들과 싸워 승리를 얻게 하셨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보호해 주셨고, 매일 만나를 내려 주시고, 바위를 쪼개어 샘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적어도 이스라엘이 이렇게 40년의 세월을 보내었다면, 앞으로 남은 가나안 정복의 사업을 위해 왜 염려해야 합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군대의 무기나 군량미나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대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앞서 가시면서 저들을 위해 싸우심으로 얻는 승리에 대한 확신입니다.

이스라엘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은, 그래서 내가 너희를 지킨다, 내가 너희를 인도한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싸울 것이라고 거듭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라엘에 대하여 신실하셨으나, 이스라엘은 그 분의 사랑과 은혜를 입으면서도 불순종과 원망과 두려움에 빠져 스스로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10.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고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들처럼 이랬다저랬다 흔들리면서 불성실하셨습니까? 

아니면 우리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우리를 차별하시거나 고난당하는 우리를 외면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하신 것처럼, 인생의 광야 길에서 우리를 위해 싸워 주셨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셨고, 아버지가 아들을 안는 것처럼 우리를 안으사 오늘 이곳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모세의 고백대로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신32:10)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어떤 인생의 장애물이 놓여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를 위해서 복되고 영광스러운 미래를 준비해 놓으신 줄 믿고 낙심도 원망도 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살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리면, 여호와는 영원토록 신실하신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는 그 여호와 하나님께 변함없는 신실한 백성이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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