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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감사(누가복음10:21)
고영수 2020-11-14 추천 0 댓글 0 조회 23

예수님의 감사(누가복음10:21/2020.11.15.추수감사절)

 

1. 영국하면, 오래 전부터 한국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지금은 영국 국민소득이 약 4만 달러고, 한국도 약3만 달러에 이르고 있지만. 그러나 1970년대에 영국은 경제가 파탄이 날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이유는 선진형 복지국가를 이룬다고 국민들의 교육, 의료, 주택 등에 막대한 세금을 쏟아 붓기 시작하니, 지출이 급증해서 결국 국민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의 50%에서 80%까지 세금으로 걷어갔기 때문에 근로의욕과 창의, 발전의욕이 사라지고 너도 나도 일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다보니 생산성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소위 영국병이라는 것이 생겼던 것입니다.

요즘 한국의 상황을 보면 50년 전에 파탄을 경험했던 영국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더 많은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 집값을 천정부지로 높이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몇 년 안에 국가 경제는 파탄이 날 것이 자명합니다.

좋은 정부란 세금을 많이 거두어 들여서 많은 일을 해서 공로를 쌓는 정부가 아니라, 적게 거두어 들여서 많은 일은 못해도 돈을 적게 쓰는 정부가 좋은 정부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도 주부가 남편이 벌어온 돈을 아낌없이 낭비를 한다면, 겉으로 보기는 생활이 좋아진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가정 형편은 점점 골병이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상한 법안들을 만들어 그야말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런 나라로 만들어 가고 있으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불평불만은 물론이고 오죽하면 이런 사람들에게 투표를 한 사람들이 원망스러울 정도입니다.

일본의 경우도 이미 오래 전에 직장이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NTT의 유선전화의 가치를 소유자의 권리와는 상관없이 땡 처리를 하더니, 이제는 NHK의 시청료를 텔레비전이 있든 없던 상관이 없이, 각 가정이 아니라 사람의 인원수대로 시청료를 강제로 징수하려고 하다가 주춤한 상태이고, 최근에는 일본이 개량한 특수 농작물의 씨앗이나 모종이 외국에 밀반출 되는 것을 막기 위한다는 구실로 만든 법이 있는데, 이런 농작물의 씨앗이나 모종을 정부에서 관리를 하고 매년 농가가 이것을 돈을 주고 사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외국의 도둑을 잡는 것도 좋지만 이로 인해서 일본농촌이 정부의 노예가 될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 생활의 안팎을 바라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입에서 감사 대신에 불평이 나오고, 기쁨 대신에 한숨과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2.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늘 말씀 드리는 것은, 추수감사절의 성경적인 유래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그의 백성으로서의 감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문득 우리의 삶에서 감사가 사라진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감사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찾아보니 대표적으로 두 군데에서 예수님의 감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누가복음의 경우는, 예수님이 70인의 제자들을 파송한 후, 그들이 돌아와서 전도사역을 보고할 때, 예수님이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신 내용입니다.

1970년대, 제가 서울 시내를 다니다가 예수님이 파안대소하고 웃으시는 초상화를 보았는데, 매우 생소하게 느껴진 기억이 있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하면 그렇게 웃으실 만한 일이 있으셨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 분의 삶은 출생에서부터 시작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그것도 마구간에서 출생하였고, 태어나자마자 헤롯왕의 핍박을 받아야 했고, 그것 때문에 애급으로 피난을 가셔야 했으며, 헤롯 왕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나사렛에 정착했지만, 30년간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고, 도중에 부친 요셉이 죽어 가장으로 남은 가족을 돌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부분인 공생애 3년간은 어떠했습니까?

제일 먼저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마귀의 공격을 받으셨고, 집요하게 달려들어 공격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매일 시달리셨고, 12명의 제자들을 훈련시키시는 어려움에 더하여, 귀신들린 자들, 병자들, 창녀와 골치 아픈 세리들과, 따라다니는 굶주리고 고통당하는 백성들과 어울리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시며 많이 우셨고, 많이 탄식하셨고, 늘 피곤하고 외로웠습니다.

마8:20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따르겠다고 했을 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 하셨는데, 저는 청년의 때 이 말씀을 읽고 예수님이 너무 불쌍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3. 그 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우셨고, 고통하는 자들과 함께 아파하셨으며, 외로운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인한 고통과 수치는 어떻습니까?

그들의 죄 때문에 대신 십자가를 지셨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고맙게 여기거나 감사할 줄 아는 자는 없었습니다.

도리어 군중들은 예수님을 향해 분노를 쏟아 내면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3년 동안 훈련 받았던 그 분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렸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는데, 만일에 우리 같으면, 하나님, 이게 뭡니까? 왜 나를 이런 세상에 보내셔서 이렇게 고생을 시키시냐고 불평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삶을 보면서, 과연 그분에게 감사와 기쁨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예수님은 늘 기뻐하시고 하늘 아버지께 감사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느끼는 기쁨과 감사의 조건과,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맛보는 기쁨과 감사의 이유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한 살 차이로 태어났는데, 아이들이 어릴 때, 방안에서 용변을 보는 용기를 구입했는데, 이 똥통을 서로 차지하려고 양쪽에서 붙들고 씨름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는데, 그것을 빼앗겼을 때에는 땅이 꺼질 듯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에도 우리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앞부분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뻐하고 있는 이유는,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는 것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는 사람의 힘으로는 귀신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에게 명할 때, 그들이 도망가는 것을 보면 얼마나 신이 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칭찬하시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4. 20절에 보니,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는 것입니다. 

만일 제자들의 생각대로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이 항복을 하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면, 귀신을 좇아내지 못했을 때에는 슬퍼해야 합니까?

제자들은 생각하기를, 남들이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던 일을 하였기 때문에 자신감과 우월감에 사로잡혀 기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면, 결국 교만한 마음이 앞서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비극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천부교로 알려진 이미 죽은 박태선의 전도관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원래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창동교회 장로였습니다.  

어느 날, 기도 하던 중에 권능을 받아서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장님과 귀머거리의 눈과 귀가 열리면서, 집회 때 마다 수십만의 군중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자 교만한 마음이 생기면서 독자적으로 신흥종교 집단을 만들고, 부산 기장과 경기도 부천에 신앙촌을 만들면서 교주가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가 순수하게 시작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다고 하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귀가 교만한 마음에 가라지를 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많으면 기뻐하고 돈이 없으면 슬퍼해야 합니까?

자식이 공부 잘하면 기뻐하고 공부 못하면 화가 납니까? 

우리가 근심하거나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이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을 보면 그 사람의 근본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뻐할 이유와 감사의 원인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구원받는 것 보다 더 큰 기쁨과 감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5. 제자들이 전도 나가서 귀신을 물리쳤는데, 과연 그것이 제자들의 힘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도 고백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명령했더니 귀신이 항복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예수님 이름으로 행하면 이런 능력이 나타나겠습니까? 아닙니다.

행19장에 보면,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마술 하는 사람들과 제사장 스와게의 일곱 아들들이 흉내를 내다가 도리어 귀신의 공격을 받아 큰 낭패를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 귀신이 무엇이라고 말하였습니까?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행19:15)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달려드니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벌거벗은 채로 도망했다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깊은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기쁨의 원천이었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조건이 된 것입니다.

귀신이 제자들에게 항복하는 것도 기쁜 일이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이 일로 인하여 기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기도회의 간증 중에, 병이 낫고 기적이 일어나고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이런 것은 오래 못 간다고 했는데, 매우 정확한 말입니다.

이런 현상은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평신도의 입에서도 이런 간증이 나오니 놀라운 일입니다.

아무리 큰 능력과 위대한 일을 행하여도 그 감격, 그 기쁨은 속히 우리 안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내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그래서 내가 그 분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면, 내 안에서 주님의 평안이 나의 평안이 되고, 주님의 기쁨이 곧 내 기쁨이 되며, 주님의 감사가 나의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의 흥망성쇠가 우리의 감정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녀들을 지나치게 사랑하고 기대를 걸면,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 자녀가 내 우상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슬퍼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녀를 세상에 빼앗기지 않으려면 제일 먼저 가정마다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가정에서 믿음으로 살며,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것을 삶과 예배를 통해 보여 주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가정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그 자녀들 또한 자기들처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 나갔습니다.

 

6. 그리고 요11:41절에 보면,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해서 그의 무덤 앞에 서셨을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 42절을 보면, 「항상」 이라는 단어가 추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비록 하늘 영광의 보좌를 떠나 이 땅에 오셨지만, 변함없이 늘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시며 끊임없이 그 분과 교제를 나누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감사 조건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것 이전에, 많은 고난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대화하시며 함께 할 수 있었던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감사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한" 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어린아이들은 제자들을 말하며, 이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도자가 받은 권능 보다는 20절의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매일 매일 문명의 진화를 이루고 있지만, 이 세상의 지식과 지혜는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시며 왜 이 세상에 오셔야 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 불행한 것은 이 일에 대하여 누구도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롬1:21-23절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 다고 하였습니다.

 

7. 예수님의 감사는 지엽적인 문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 사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그리스도 말미암아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매일 매일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평안이 나의 평안이고 주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고 주님의 감사가 나의 감사가 되는 이것이 오늘 우리가 누리는 참되고 영원한 행복인 줄 믿습니다. 

끝으로 대상29:14절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 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성전건축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한 후에 하나님을 송축하면서 올린 기도였습니다.

대상28장부터 읽어보면, 다윗 왕과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성전건축을 위해 준비한 것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흘러넘쳤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서 드린 예물이 도리어 그들의 기쁨이 되었고, 그 기쁨이 또한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예배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기도회의 간증을 들어보면, 고난 속에서도 감사가 넘치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곳에 도리어 기쁨이 넘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안에 성령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시며, 그는 나를 위해서 이 땅에서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이며, 그는 나와 지금도 무슨 관계를 맺고 계시는지를 안다면, 우리는 귀신이 쫓겨 나간다고 능력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그것 때문에 기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너무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험으로 보아도 어떤 가정에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가면, 귀신이 미리 알아서 나가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하나님 자녀가 받은 권세요 능력입니다.

우리가 30만 엔짜리 새 옷을 사 입으면 몇 번은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매일, 몇 년이 가도 계속 자랑하고 기뻐한다면 그것은 약간 비정상적인 일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30만 엔짜리 옷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옷을 사 입을 수 있는 능력과 여유가 있다는 사실이 더 기쁘고 감사할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변함없는 친밀한 관계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 이후에 찾아오는 영광의 부활을 바라보고 감사하셨습니다.

우리도 돈 때문에, 사람 때문에 환경이나 조건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주님과 동행하며, 그 분의 공급하시는 은혜 안에서 영원히 살고 있다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매일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이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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