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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생각할 때에(마태복음1:18-25)
고영수 2020-12-12 추천 0 댓글 0 조회 68
[성경본문] 마태복음1:18-25 개역개정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 일을 생각할 때에(마태복음1:18-25/2020.12.13.오전)

 

1.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공통적인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지성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성경에 기록된 기적과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빼 버리고, 이성적으로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범위 안에서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의 수준에 맞춰서 잘 알아듣기 쉽게 전한다는 생각에, 성경의 내용 일부를 외면하거나 왜곡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상대방의 수준이나 입장을 배려하기 때문에 상당한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엉뚱한 곳에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에 우리가 계속해서 이런 방법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한다면, 성령님은 왜 오셨는지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오셨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요14:26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기억나게 하여 우리의 삶에 적용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을 고려하고 그 사람들의 수준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성경 말씀을 조금이라도 왜곡한다면, 이것은 성령님의 하시는 일을 빼앗는 것이고, 그 분을 우리 가운데서 쫓아내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한"(고전2:13)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적인 일이란,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 가운데서 지금까지 행하셨고 또 행하고 계시는 모든 일을 말하는데, 이것을 전도자가 제 마음대로 취사선택 하고, 제 뜻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 전하고, 그 결과도 성령께서 주장하신다는 것입니다. 

 

2. 현대인들은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신화 정도의 수준으로 폄하하고,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책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하심을 부정하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런 현상은 스스로 똑똑하고 자부심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심합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의 말씀보다는 세상 사람들의 수준에 맞추어서 설교하고 전도를 한다면 훨씬 전도가 잘되고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이고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무엇을 덧붙이거나 혹은 빼버리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하나님 말씀이 아닌, 세상 지식을 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고 사람들의 수준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을 변화시킨다고 한다면, 성령님의 역사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에 초대교회가 이런 방법을 시도했다면, 우리는 아마 이 세상에 기독교 신앙이 존재했는지 조차 모른 채 살다가 죄 가운데서 죽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전도자로서, 복음의 사명자로서 당연한 의무이지만, 그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며, 이 일을 위해서 그 분은 이곳에 보냄을 받고 오셨습니다.

제가 이런 사실을 서론에서 길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오늘 본문의 내용이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처녀가 아들을 낳는다는 말씀 때문입니다.

 

3. 과연 현대인들에게 오늘 본문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믿을 사람이 어느 정도이며, 그들의 반응은 어떨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동정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말하는 나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런 부분에 대하여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성령님은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 즉 성령의 도우심으로 되었기(딤후3:16)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배우거나 깨닫는 일이나 말씀을 생활에 바로 적용하게 하는 것은 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던지 그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결과를 미리 염려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요셉과 이미 결혼하기로 약혼한 마리아에게 아이가 생겼습니다.

이로 인하여 요셉에게는 인생 최대의 위기가 오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동거하기 전에 잉태되었다는 이 말은, 요셉에게 있어서 마리아에게 이미 나 말고 다른 남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의 이런 문제는 한 사람이나 가정이 사회적으로 당하는 피해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이 요셉이라는 사람의 신앙과 인격입니다.

성경은 그를 가리켜 의로운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이런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성급하게 대응하거나 감정에 치우쳐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신중하며 이기주의적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지혜롭게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4.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운 일을 만나면, 제일 먼저 감정의 조절이 잘 안됩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상대방의 잘못을 들추어내면서 공격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분노에 사로잡혀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거나, 매우 이기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판단하게 되기 때문에 나중에 보면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이럴 때 믿음의 사람은 우리보다 먼저 더 많은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그 분이라면 이럴 때 어떤 결정을 내리셨을까, 이럴 때 무엇을 생각하시며 어떻게 행동하셨는지 생각하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욥19:29절에 보면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른다고 하였고, 잠12:16절에는,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는" 다고 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통해서 자신이 받은 수치와 이 피해를 어떻게 하면 원만하게 해결할 것인가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린 결단이 무엇입니까? 가만히 끊고자 하였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지만, 이 상황에서 서로가 더 이상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더 많은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조용히 해결하기를 원했습니다.

만일에 이 문제가 시끄러워지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을 상황이고 뱃속의 아이도 죽게 됩니다.

그러나 요셉은 믿음의 사람이요 지혜롭고 자비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놓고 많이 고민하고 생각에 생각을 더한 끝에 마리아와의 관계를 조용히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내용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요셉이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고 자비롭고 지혜와 신중함이 있는 사람이라도, 그 생각과 판단에는 한계가 있고 제한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5. 그런 사실이 2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 이라는 이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씀이 본문에서 두 번씩이나 반복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마리아에게 일어난 이 일이 요셉이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요셉이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을 많이 해도, 지금 자기 인생에서 일어난 최대의 위기인 이 사건에 대한 참다운 실상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겨우 생각해 낸 것이 마리아와의 관계를 조용히 끊어서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을 면하자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행하시고 계시는 일은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요셉처럼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라 하여도, 아무리 믿음이 뜨겁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만분의 일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꿈에 나타난 천사가 전하는 말의 핵심은, 이 일은 성령으로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2:9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은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알수도 깨달을 수도 없다고 하면서, 10절에 가서는,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신" 다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12절에,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의로운 사람도, 정직한 사람도, 열심을 내는 사람도 성령 받지 아니하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면, 늘 인간적인 방법과 힘으로 하기 때문에 반드시 마귀가 시험하고 그래서 원망하거나 낙심하고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행19:2절에 보면, 에베소 사람들이 전도자를 통해서 복음을 받고 예수를 믿었지만, 그들은 성령을 받은 일도 없었고, 성령께서 계시는 줄도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사명자가 될 수 있습니다.

 

6. 처녀가 아들을 낳는다는 이 말은, 요즘 세상 사람들도 듣고 웃을 일입니다.

이것은 요셉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줄도 모르고 마리아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꿈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서 이 일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일이요 성령으로 된 것인 줄 알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처녀가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이것은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본문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고 하는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서 임마누엘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자꾸 찾으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눈이 어두워지고 미련함에 빠졌기 때문에, 그래서 이 일을 위해서 자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미 약 700여 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미리 예언해 주셨습니다.

사7:14절에 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바로 이 말씀 그대로 700여년 후에 마리아와 요셉을 통해 성취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런 경우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중대한 계획이 있지만, 내가 깨닫지 못하고 성령의 인도하심도 받지 못할 때에는, 도리어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방해꾼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7. 그런데 요셉의 경우는 구약의 요셉도 꿈쟁이지만, 마리아의 남편인 신약의 요셉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본문의 내용으로 1:20절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둘째는 베들레헴에서 애급으로 피난가라는 지시를 꿈에 받았습니다(2:13-14).

그리고 세 번째는 애급에서 올라올 때, 갈릴리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2:22).

저도 최근에 꿈을 꾸었는데, 친구가 거듭해서 꿈속에 나타나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연락을 했더니, 부친께서 99세로 소천을 하셨는데 마음이 많이 무겁고 고민이 많았는데, 장례를 끝내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제게서 연락을 받은 것이라고 하면서, 목사님의 꿈이 신통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셉의 경우에는 꿈을 통해서 깨달았지만, 우리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바로 이것입니다.

요셉은 인생에 일어난 일생일대의 중대한 이 문제를 가지고 많이 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생각의 깊이를 더한다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계시 되어진 말씀을 가지고 성령께서 우리를 깨닫게 하실 때, 우리의 생각이 바뀌고 우리의 삶이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깨닫고 난 후에,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 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도록 그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우리가 요셉처럼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동물은 본능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생각이 없습니다마는, 인간은 생각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며, 이 일에 몰두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 이스라엘이 받을 축복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사무엘도 말하기를,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15:22)고 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줄 아는 그런 마리아와 요셉을 통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들은 내 생각과 내 삶의 방향에 상관이 없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700년이나 오래 전에 예언되어진 이 말씀의 성취가 헤롯 왕가의 사람들이나 훌륭한 종교지도자들을 통해서 성취된 것이 아니라, 이 일을 깊이 생각하다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내 생각으로는 받아들이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생각이 변화되고 영원히 복을 받는 그런 은혜가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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