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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렘 전쟁(신명기7:22-26/2021.3.7.오전)
고영수 2021-03-06 추천 0 댓글 0 조회 47
[성경본문] 신명기7:22-26 개역개정

2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2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기시고 그들을 크게 혼란하게 하여 마침내 진멸하시고

24. 그들의 왕들을 네 손에 넘기시리니 너는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제하여 버리라 너를 당할 자가 없이 네가 마침내 그들을 진멸하리라

25. 너는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26. 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것과 같이 진멸 당할까 하노라 너는 그것을 멀리하며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 당할 것임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헤렘 전쟁(신명기7:22-26/2021.3.7.오전)


1. 이탈리아는 나라 전체가 세계 최고의 관광 명소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답고 볼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그 중에서도 베네치아라는 물의 도시는 한 번 방문한 사람이라면 또 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볼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서쪽으로 밀라로를 향해 가다 보면, 베로나라는 아름다운 도시가 나오는데, 이곳 역시 관광 명소로 아름답고 유명한 도시인데, 그 도시 한 가운데의 에베르 광장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그 줄리엣의 집이 있고, 그 안에는 그녀의 무덤도 있는데, 그곳을 방문하려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몰려옵니다. 

무덤이라고 해도 줄리엣이 잠들었다는 석관이 놓여 있을 뿐입니다.

입구에서 부터 양쪽에 수많은 사랑의 사연들의 쪽지며 낙서를 어지럽게 붙여 놓았고, 안으로 들어가면 정원의 안쪽으로 줄리엣 동상이 있는데, 이 동상의 봉긋한 가슴을 만지면 연애 운이 트인다고 너도 나도 만져서 하얗게 닳아 버릴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속삭였다는 2층 발코니며 이것저것 볼거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전부 가짜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상관이 없다는 듯이 밀려 들고 있습니다.

사랑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가 15세기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은, 사실보다는 일종의 힐링(Healing), 즉 정신적인 치유나 위로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급변하고 있으며, 그래서 이제는 코로나 이전에 우리가 살던 세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코로나의 덕을 가장 많이 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4차 산업혁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가상 공간이라는 터미널을 만들어 세상의 모든 것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코로나로 활동의 자유를 빼앗겨 버리니 너나 없이 이 가상 공간으로 몰려들면서, 이제는 사실이나 진실 보다는, 현실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라도 인간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며 만족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상관이 없다는 그런 세계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르나의 줄리엣의 무덤은 이런 시대를 미리 내다본 걸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부활과 더불어 그 분의 재림과 영광의 천국을 사모하는 미래를 지향하는 신앙이지만, 동시에 과거를 잊지 않고 기독교가 태생되고 걸어왔던 신앙의 자취를 늘 되돌아보면서 늘 다시 출발하는 신앙, 그래서 개신교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급의 과정을 돌아보며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기억하고 메시아 왕국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듯이, 기독교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돌아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사도행전의 신앙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 사람들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만족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선이고, 불만이면 그 어떤 것도 악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를 구분하고 좌파냐 우파냐, 그리고 준법과 시민 정신을 주장하는 것은 팔자 좋은 사람들의 망상처럼 취급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따라 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하고,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혼란스럽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고 무엇을 지키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살고 옳게 사는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길과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으며,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3. 19세기만 해도 이웃 나라는 경계와 정복의 대상이었고, 20세기만 해도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동서 대립으로 인한 국경의 긴장, 전쟁의 위험으로 제한적인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이웃 나라는 교류와 협력, 통상의 대상이요 때로는 선의 경쟁의 대상입니다.

이것은 이웃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는 남녀 이외에는 성적인 구분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지금은 성적 구분이 수십 가지에 이르고, 그들의 정체성을 이 사회가 법적으로 인정해 가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는 물론이고 우상숭배라고 대적하면 법에 저촉이 됩니다.

과거에는 사상이 다르면 서로 싸우고 전쟁도 불사했지만, 지금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은 굉장히 민감한 부분입니다.

신약 성경은 그렇다 치고, 과연 구약 성경을 21세기 이런 사회에서 언제까지 전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될 정도로 어렵습니다.

신명기만 해도 전부 죽이고 멸절하고 쓸어버리고 없애라는 내용이 쏟아져 나옵니다.

과연 이런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선포하고 적용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만 보아도, 이스라엘은 지금 땅을 정복하는 것 이전에, 이것은 영적인 전쟁으로, 가나안인 그들을 멸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먹힐 것인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정복을 헤렘 전쟁이라고 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진멸, 접촉이 금지된 것을 의미합니다. 

원래 가나안 인은 그 죄가 관영해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심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자신은 물론이고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소유물조차도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들을 살려 두지 말며, 그들의 물건도 소유해도 안 됩니다.

그래서 헤렘 전쟁은 씨를 말리고 전멸 시키는 전쟁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4. 사람들은 기독교를 자비의 종교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을 열어보면 세상 사람들이 경악할 만한 내용들이 마구 쏟아집니다. 그래서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욕하거나 의심합니다.

문제는 우리 하나님이 세상에서 이렇게 인식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조차 하나님을 의심하고 자신의 신앙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은, 그만큼 성경에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무지한 만큼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만큼, 그 믿음은 흔들리고 신앙에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장애물을 만나고 고통을 겪어도,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실망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명령하셨는가? 왜 이런 방법으로 하시는지 알면 내 뜻과는 반대로 가도 절대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가나안 인은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지금은 살아있으나 반드시 심판 받을 존재입니다.

그 분의 관심은 그런 가나안 인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애급에서 구원한 이스라엘에게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에 들어가도, 그 땅 사람들처럼 살면 이스라엘도 똑같이 하나님의 손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을 다 없애라는 것입니다.

특히 25절 이하에 보면,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그 아래에 보니,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이유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들처럼 범죄하고 우상숭배에 빠질까 염려하셨기 때문이고, 둘째는 하나님이 이런 것들을 제일 싫어하시고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염려하시는 것은, 26절에 보니 이스라엘이 자기 백성이라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심판을 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5. 고대 사회에서는 전쟁을 통해 왕은 영토와 막대한 재물을 얻고, 전쟁에 참여한 자들도 전리품을 통해서 이익을 나누기 때문에 전쟁에 이기고 살아남으면 횡재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이런 전리품에 이스라엘은 손을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국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부정 탄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죽은 사람의 물건이나 사당 같은 곳에 있던 물건에 귀신이 붙어 와서 깽판을 치는 것을 부드럽게 표현하는 말이지만, 실상은 저주 받고 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물건, 즉 가증한 물건을 통해서 마귀가 틈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이 골동품을 수집할 때 그것이 무슨 물건인지 잘 모르고 희소 가치만 생각해서 소장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초창기에 교회가 자꾸 문제 생기고 시험에 드는데 알고 보니 성가대에 이단 교회에 소속된 신자가 있었습니다. 문제가 터져서 징계를 했는데 스스로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런데 자꾸 성가대에서 마귀가 알을 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청소하면서 성가대 좌석 밑을 유심히 살폈더니 그곳에 이단의 비디오 테이프가 한 보따리 있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몰래 돌려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먼 곳에서 한 시간 넘는 시간을 마다 않고 늘 새벽 기도를 다니시는 문 권사님을 성가대에 들여보냈더니 잠잠해졌습니다.

여호수아 7장에 보면, 아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전리품을 도적질 했습니다.

그 후에 일어난 아이 성에서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큰 패배를 맛보고 울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 사실을 여호수아에게 알렸고, 여호수아는 그 범인이 아간임을 알고 찾아낸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  

훔친 전리품과 아간의 가족 전체를 골짜기로 끌고 가서 돌로 치고 모든 것을 불에 태웠고, 그곳을 아골 골짜기라 불렀습니다.

이 사건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상숭배는 그 우상 자체도 하나님의 미움의 대상이지만, 우상 숭배하는 자가 접촉한 모든 물건이 그와 함께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그것이 아무리 좋아 보이는 물건이라도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6. 이 사건과는 반대로 거룩한 물건으로 인해 축복받은 가정도 있습니다.

삼하6장에 보면,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 성으로 가져올 때에, 나곤의 타작 마당에 오자 소들이 뛰어 법궤가 수레에서 떨어질 것 같으니 웃사라는 사람이 그 법궤를 잡았는데, 그 행위를 보신 하나님이 그를 치니 당장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느낀 다윗은 법궤가 다윗 성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고, 할 수 없이 오벳에돔이라는 사람의 집에 임시로 법궤를 모셨습니다.

그랬더니 3달 사이에 그 집이 엄청나게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다윗은 서둘러 그 법궤를 다시 모셔 오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구별하신 거룩한 물건은 사람을 복 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교회를 찾아오는 것은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교회 문을 통과하며 들어가고 나갈 때 마다 복을 받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것만 귀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제 몸처럼 쓸고 닦으며 봉사하면, 건강의 복을 주시고 물질의 복도 주시고 조상 대대로 저주 받은 환경도 축복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제 복이 안 되기 때문에 관심도 없는 것입니다. 25절에 분명히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 이라 했습니다.

우상을 만들 때나 우상을 섬길 때, 그들도 정성을 다해서 많은 희생을 치르며 자기 신들을 섬깁니다. 몰렉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을 위해서 제 자녀들을 불태워서 죽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 뒤에는 영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7.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다가 전리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올무가 되고 그것 때문에 아간 처럼 자신의 집안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전체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6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고 하시며, "그것을 멀리하며 심히 미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말씀에 불순종 해서 그것을 들이면 어떻게 됩니까? 

"너도 그것과 같이 진멸 당할까 하노라" 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욕심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깊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염려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다 점령한 후에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악과 우상숭배에 영향을 받아 그들도 가나안 사람들처럼 멸망할까 함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사람만 바뀌었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인 악은 그대로 존재하고, 그 악이 이스라엘로 인해 그 땅에서 더욱 번성하는 것을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경계를 하신 것입니다.

살전5:22에 보면,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악은 형체가 없는 존재가 아니라 늘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양으로 우리에게 접근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예배의 행위나 예배로 드리는 예물로 나타나듯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과 온갖 가증한 것들도 우상의 모양으로, 또는 우리 마음을 유혹하는 금이나 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5절에 기록된 말씀대로, 신상들은 불사르고, 그곳에 입힌 금이나 은을 어떤 경우에도 탐내지 말고 소유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8. 신약 시대에 와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 언약을 통해서 헤렘 전쟁은 사라졌지만, 헤렘 전쟁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변함이 없습니다.  

오래 전에 어느 사업체를 방문해서 예배를 드리는데, 사업이 잘되게 해 달라고 그곳에 비싸게 보이는 작은 함에 부적을 넣어 두었는데, 스스로는 할 수 없으니 그것을 치워 달라고 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집에 가져 와 보니 그 안에 눈이 똥그랗게 될 정도로 1만 엔 권이 여러 장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음식물 쓰레기를 그곳에 부어서 또 다른 쓰레기와 함께 싸서 버렸습니다.

그 당시에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그 일은 당연한 일이었고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신앙 생활을 잘 하는 비결이라고 하면 열심을 내는 것이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우리도 함께 미워하고 가까이 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도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본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나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이냐를 깨닫고 그 일이 십자가의 고난이라도 거부하지 않고 순종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하다는 말의 의미는 구별되었음을 뜻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가 있다면, 먼저 내 안에서 나 자신과 싸움이 헤렘 전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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