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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의를 행하면(신명기12:15-28)
고영수 2021-06-19 추천 1 댓글 0 조회 637
[성경본문] 신명기12:15-28 개역개정

15.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으려니와

16.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17.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네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네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네 각 성에서 먹지 말고

18.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19. 너는 삼가 네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2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히신 후에 네 마음에 고기를 먹고자 하여 이르기를 내가 고기를 먹으리라 하면 네가 언제나 마음에 원하는 만큼 고기를 먹을 수 있으리니

21.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멀거든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너는 여호와께서 주신 소와 양을 잡아 네 각 성에서 네가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먹되

22.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을 수 있거니와

23. 다만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리니

24. 너는 그것을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으라

25. 너는 피를 먹지 말라 네가 이같이 여호와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면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누리리라

26. 오직 네 성물과 서원물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라

27. 네가 번제를 드릴 때에는 그 고기와 피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에 드릴 것이요 네 제물의 피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위에 붓고 그 고기는 먹을지니라

28.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선과 의를 행하면(신명기12:15-28/2021.6.20.오전)


1.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52년에 발표한 그의 대표작품인 「노인과 바다」를 보면, 고기를 잡기 위해 주인공인 늙은 산티아는 84일이 지나도록 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86일 째, 배 보다 더 큰 5.5미터에 700키로의 대형 청새치를 만나 꼬박 이틀 밤낮으로 사투를 벌인 후, 3일째가 되어서야 물고기와의 싸움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산티아는 작은 배에 고기를 단단히 묶어 끌고 돌아오지만, 이번에는 피 냄새를 맡은 상어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작살로 상어들의 공격을 막아내지만 물고기를 지키기엔 역부족이었고, 간신히 항구로 돌아온 산티아에게 남은 것은 앙상한 뼈만 남은 청새치와 쏟아지는 피곤과 허탈감이었습니다.

평생 바다에서 살았던 산티아가 오랜 시간 생명을 걸고 획득했던 전리품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헤밍웨이는 종군 작가의 경험을 살려 「무기여 잘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킬리만자로의 눈」과 같은 작품을 통해 계속해서 명성을 얻게 되었고, 1953년에는 풀리쳐 상을, 1954년에는 노벨문학상을 타는 등, 돈과 명성을 함께 누리고 결혼도 4번씩이나 했지만,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다가 1961년, 엽총으로 61세의 일생을 스스로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지만, 그의 작품에는 허무주의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으며, 결국 자신의 작품처럼 자신의 생명도 그렇게 끝내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돈과 명예를 쥐면 인생이 행복할 줄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자신들이 생명을 걸고 추구했던 이런 것이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게 되면서, 더 깊은 절망과 고통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은 육신만이 아니라 그 안에 육신의 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신이 아무리 편하고 풍족한 삶을 누린다 해도 내 심령에 만족이 없고 평안이 없으면, 그 인생은 한마디로 말해서 지옥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 다고 하였고,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일요2:15,17) 고 하였습니다.


2. 오늘 본문의 내용을 통해서 결론과 같은 말씀이 28절에 있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 는 이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을 받기 원하고 그 복을 자녀들도 함께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내가 복을 원하면서도 그것을 누릴 만한 그런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생명의 가치와 그 생명을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생명의 가치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축복을 누릴 때에 참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먹으라는 것과, 먹지 말라는 말씀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추구하는 복은 먹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며, 먹을 때에는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생각해 볼 것은, 먹지 말라는 명령으로 이것은 단 한 가지만 조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피를 먹지 말라는 것으로 4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먹으라고 하시면서 왜 피는 먹으면 안됩니까?

23-24절에 보니,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리니, 너는 그것을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으라" 고 하였으니, 피는 생명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 고대로부터 이방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들은 신에게 드리는 제물을 잡아서 올릴 때, 그 피를 마시면 신과 교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런 잘못된 이방인의 풍습을 따르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레17: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고 하였고, 레7:27절에는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다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했습니다.

사람은 물론이고 짐승의 피도 생명 그 자체이며, 피의 용도는 단 한 가지, 즉 죽을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죄를 씻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씻기 위해서 자신의 피를 대신 흘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피를 마시는 것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정한 법을 모독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피를 마시는 것을 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만의 법이 아니라 신약시대에도 같은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15:20에 보면, 예루살렘 총회에서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방인들은 자기 신을 섬기면서 피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자녀들까지 불에 태워 바치기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런 잘못된 행위를 따르지 못하도록 미리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피를 먹지 못하도록 금하신 이유는 생명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이 생명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4. 그 다음에는 먹는 것에 관한 명령으로, 레위기에서 부정한 짐승으로 정해진 것 이외에는 어떤 것이든지 마음대로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17절에 보면 가나안의 3대 대표적인 산물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더불어 소와 양, 그리고 15절에 나오는 가축이나 노루며 사슴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음식을 먹을 때 혼자서나 자기 가족들만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18절에 보니, 자녀는 물론이고 종들과 그 성에 살고 있는 레위인들과 함께 먹으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일상생활 하는 가운데서 일용할 양식은 가족들끼리 먹을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거나 절기를 만나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난 후에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먹을 것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히 19절에 보니,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레위인에게 무슨 특혜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12절에 보면, 레위인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때, 하나님 섬기는 직분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기업을 따로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지파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가져오는 십일조와 각종제사를 통해서 주어지는 제물로 생계를 유지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먹는다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어디서 누구하고 먹느냐는 것입니다. 


5. 요즘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 혼식하는 경우가 많고, 더 심한 것은 때가 되어도 먹지 않거나, 먹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겨우겨우 연명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경제가 어려우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자기 건강을 손상해 가면서 절약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본문 18절을 보면, 사람에게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혼자서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은 더 없는 즐거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욕심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방해합니다.

다른 곳에서 많은 재물을 사용하면서 하나님께는 인색한 경우도 많습니다.

마귀가 40일간 금식하신 예수님을 찾아와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돌로 떡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이 능력만 있다면 돌로 떡을 만들어 먹는 것이 뭐가 잘못된 것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사단을 향해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단의 목적은 예수님을 도와주고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배고픈 약점을 이용해서 그분을 시험한 것입니다.   

한 끼 굶었다가 시장에 가면 여기저기 먹고 싶고 사고 싶은 것이 많지만, 배부른 상태에서 가면서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본문에 보면, 먹는 다는 말이 반복되고 있는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그 대상은 전부 하나님이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아껴서 여기저기 쌓아두고 과도하게 아끼면 남은 만나처럼 전부 썩어 버립니다.

사람이 애쓰고 수고를 했으면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먹지도 못하고 쓸 곳에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그래서 기쁨도 감사도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6. 우리 인생은 나그네의 삶입니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인 산티아 처럼 목숨 걸고 목숨 걸고 지킨다고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조금 여유 있게 주신 것은 쌓아놓고 그것을 우상처럼 섬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즐거워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요리하는 사람의 기쁨이 무엇입니까? 내가 정성껏 준비한 것을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먹고 즐기며 함께 그 기쁨을 나눌 때 행복을 맛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원하시는 것은, 남들과 함께 나누고 즐기고 누리는 기쁨을 하나님 앞에서 맛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날이 되면 종교적 의무감에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하나의 축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받은 은사와 물질과 믿음의 능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사명이고 축복입니다.

어떤 의사가 시각장애인에 여러 가지 합병증 환자를 불쌍히 여겨서 정성껏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의사의 정성어린 치료가 열매를 맺어 퇴원하게 되었는데, 환자가 의사에게 선물을 했습니다.

의사는 양말이나 손수건이겠거니 하고 받아보니, 금반지가 들어 있었고 그래서 받을 수 없다고 했더니, 옆에 있던 간호사가 이것은 받아야 한다고 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어느 날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 이유는 고마운 의사에게 보답할 길이 없어서 전철을 타고 노래를 부르면서 구걸을 해서 그 돈으로 금반지를 구입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이 의사의 생각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구걸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라고 생각해서 관심이 없었는데, 이런 귀한 선물을 받고 보니, 내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식 공부시키려고, 늙은 부모를 모시려고, 병든 아내를 치료하려고 저렇게 구걸하는 구나 생각하고 자꾸 도와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7. 우리는 늘 풍성한 은혜를 받고,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많은 감동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결단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의 행복이 남 보다 많은 것과 더 좋은 것을 누린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열매를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보면, 이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인지,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같은 콩이라도 집안에 있는 그릇에 심으면 콩나물이 되지만, 바깥 땅에 심으면 콩나무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의 열매를 내 가정에만 심으면 콩나물 이상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생명을 귀히 여기고,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영원한 축복을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그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마10:42).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 자녀는 물론이고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까지 불러서 하나님 앞에서 함께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이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과 의를 행하는 것이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는 영원한 축복의 행위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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