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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바꾸자(창세기32:24-30)
고영수 2021-06-26 추천 1 댓글 0 조회 623
[성경본문] 창세기32:24-30 개역개정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름을 바꾸자(창세기32:24-30/2021.6.27.오전)


1. 우리 조상들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부자의 유형을 3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첫째는 순흥에 만석 꾼으로 유명한 황부자가 있었는데, 부부가 10년 동안 보리죽만 먹으면서 버려진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어 마침내 만석 꾼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형제가 찾아와도 보리죽으로 대접하고, 부모님 제사에도 밴댕이 3마리를 놓고 제사한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황부자의 친구로 가까운 풍기에 최씨가 있었는데, 사위가 과거를 보러 가는데 노자가 없어 이 황부자를 찾아가서 돈을 빌리려 했지만 워낙 구두쇠라 염려했는데 선뜻 노자 50냥과 말 한 필과, 과거 보는데 식구들 끼니를 걱정하면 안 된다고 별도로 양식을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영남에서 과거 보러 가는 선비치고 황부자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덕을 많이 베풀었는데, 이로 인해 무려 80여명의 벼슬아치를 만들어 내었지만, 자식에게는 밭 한 뙈기도 남기지 않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황부자의 은덕을 입은 조정 대신들과 그 자녀들 덕분에 자자손손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둘째는 경주 최부자로 이미 10대에 진사 벼슬에 만석 꾼이 되었지만, 권세가 지나치고 부가 지나치면 망신한다는 교훈을 남겨서, 후손들이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않았고, 만석 이상의 재물은 소작인들과 지역 사람들에게 베풀어서 만석에서 단 한 석의 부도 늘리지 않았고, 이로 인해 조선시대를 통틀어 만석의 부를 10대 자손에게 까지 물려준 집안은 이 최부자 집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셋째는 한양 광통방의 만석 꾼으로 현부자가 있었는데, 나이를 먹자 자녀 일곱에게 재산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더니, 처음에는 서로 아버님을 모시겠다고 했지만, 몇 해가 지나면서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다가 자결을 하려고 창의문 고개를 넘어가는데, 잘살 때에 괄시를 많이 했던 조카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를 따라가서 조카에게 얹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카가 재상 댁에 나무를 해 주고 먹고 살다보니 이래저래 재상과 친분이 생기면서 다시 큰 돈을 벌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세월이 흘러 이제 임종할 때가 되어 자녀들을 다시 불러 모았는데, 유산으로 커다란 석짝 하나씩을 주었는데, 집에 돌아가서 열어 보니 쓸데없는 겨만 가득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일곱 자식들에게는 가진 재산을 한 푼도 남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2. 인류 역사 이래로 사람들이 가진 꿈 중에 제일 많은 것은 부자가 되는 것이지만, 부자라는 것이 내가 원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시험 보다 더 어려운 것이 부자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부자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야곱입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축복하시며, 그 축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하나님은 축복의 사람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본문을 보면, 29절 마지막 부분에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는 이 말씀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집을 나와서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쌓은 이 많은 재물은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24절을 보니 왜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야곱이 얍복 강에 홀로 남아서 천사와 씨름을 하였으며, 그 씨름을 한 결과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으로 왜 나를 축복해 달라고 하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보면, 야곱은 20년 세월을 온갖 고생을 감내하며 쌓은 축복이 대단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3절 이하에 보면, 형, 에서를 위해 마련한 재물만 보아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부족해서 이렇게 밤새도록 축복을 위해 씨름을 했단 말입니까?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장자의 명분을 얻기 위해 먼저 출생하려고 쌍둥이 형 에서와 싸웠습니다. 결국 에서가 먼저 나왔고, 야곱은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야곱이라고 붙였는데, 발꿈치를 잡았다는 의미 이외에도 야곱의 이름에는 속인다는 그런 뜻이 포함된 이름이었습니다.


3. 야곱은 자라면서 자신이 장자가 되지 못한 것이 너무 억울했고, 그래서 형과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샀고, 그것 때문에 집에서 도망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꼭 성공해서 집으로 돌아갈 것을 꿈꾸다 보니, 밤잠을 자지 않고 수고하고 고생했지만, 번번이 삼촌 라반의 꾀에 속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지혜와 재물의 축복을 주셨고, 20년 전에 집에서 도망치듯이 빠져 나온 것처럼, 이번에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험난했습니다.

삼촌 라반은 물론이고 특히 그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훔쳐 도망간다고 생각해서 야곱이 소유한 재물과 가족들까지 다 빼앗을 요량으로 그를 추격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의 귀향을 전해 들은 에서는 사기꾼 야곱을 죽이려고 군사를 동원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앞뒤 진퇴양난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마지막으로 택한 것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씨름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것은 야곱이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평생을 힘쓰고 애쓰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뒤에서는 라반과 그 아들들의 추격을 받고, 앞에는 형, 에서의 칼날이 기다리는 공격을 받고 보니, 지금까지 내가 밤잠도 자지 않고 수고하면서 쌓아 올렸던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이곳에서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위기감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인생을 축복해 달라고 홀로 남아 밤새도록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4. 아침이 밝아오면서 기도의 승자는 천사가 아니라 야곱이었습니다. 천사는 야곱의 환도 뼈를 쳐서 힘을 빼앗아 갔지만,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야곱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이제는 그만하자고 했지만, 26절에 보니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 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천사가 묻기를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고 야곱이라고 대답했더니,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 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데 이름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천사는 그에게 새 이름을 주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상징하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특히 히브리인들에게는 이름이 그 사람의 인생 자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름이 속이는 사기꾼이라면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으로서 도무지 어울리는 이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내 이름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삶 위에 부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름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야곱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일 먼저 원하시는 것은 인격의 변화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름에 변함이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 믿기 전의 삶에서 믿은 이후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다가 환도 뼈를 맞아 위골이 되었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더 이상 이전처럼 악착같이 긁어모으고 남들을 속여가면서 육신의 힘과 꾀를 의지해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5. 야곱의 씨름은 자신과 가족들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열매가 진정한 축복이 되게 해 달라고 생명을 걸고 하는 기도였습니다.

그 때의 상황을 호세아 선지자는 기록하기를,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 (호12:4)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면 내 삶이 변하고 내 인격이나 환경도 내가 수고하고 힘쓰고 희생한 만큼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론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 세상은 야곱 처럼 악착같은 사람들만 성공하고 그들만 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육체의 환도 뼈가 부러져서 더 이상 내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분의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 고 하였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장자의 명분을 놓쳐버린 억울함과,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 온갖 속임수와 꾀로 얻은 성공과 재물로, 원수 갚는 일을 위한 이름이라면,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대상자 곧, 믿음의 조상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얻는 이름이요, 그 분의 상속자가 되는 축복의 이름이요, 믿음의 자녀들과 함께 누릴 영원한 언약의 이름이었습니다.

     

6. 야곱은 인생의 최대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엎드렸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비록 장자의 명분을 놓쳤지만, 얍복 강에서 기도로 승리한 후에 다시 일어선 야곱에겐ㄴ 새 이름, 즉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이 이름은 온 이스라엘의 축복의 미래였고 영광이었고 영원한 장자의 이름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대표적인 증거로 아들 유다를 통해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아들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창46:3절에 기록된 것처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 대로, 마침내 그는 큰 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들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에 의한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축복의 사람이 되려면 먼저 내 이름을 바꿔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고후5:17절의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는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맞이하신 그 분의 터닝 포인트가 무엇입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였습니다.

눅22:42절에 보면,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고 하셨는데, 객관적으로 보면 이 기도가 무엇이 그렇게 힘들다고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에게 힘을 준단 말입니까?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은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고, 제일 어려운 것은 내 뜻을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자기 뜻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곧 죄도 없이 그 끔찍한 십자가를 나의 십자가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니, 이것이 죄도 없으신 예수님에게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그 분은 우리를 살리되 영원히 살리기 위해서 그 십자가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지셨습니다.


7. 우리는 지금 로마서를 기록하고 있는데, 로마서를 쓰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가 지금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빠져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통감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크고 유명한 교회도 많고 능력 있고 유명한 목회자, 선교사들도 많으며 각 교회에서 기둥같이 쓰임을 받는 성도들과 기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들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왜 의인은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으며 그래서 다 한 가지로 치우쳐 무익한 자가 되어서, 이제는 이 세상에서 선을 찾기 위해서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라고 하였고, 혀로는 속임을 베풀고,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가득하고, 우리의 손과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르며, 죄를 무서워할 줄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그런 세상 한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의 성공이나 행복이나 물질이나 명예를 위해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은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이며, 그것이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줄,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기 전 까지는 본인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남들은 다 아는데 나 혼자만 모른다는 것은 큰 비극이며 고통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나는 옳다, 나만 옳으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이것 때문입니다.

갈6: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고 하면서, 8절에 가서는,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 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고 하였습니다.


8.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야곱처럼 육체적으로 치열한 삶을 살아서 얻는 그런 부귀나 영광이 아니라, 얍복 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여 변화된 그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이름인 이스라엘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이 이름으로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영원한 성공자가 되고, 이 이름을 온 세상에 증거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새 이름을 주심으로 영원한 언약의 백성으로 축복하시는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로 영광 돌리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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