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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드리는 것(신명기14:22-29)
고영수 2021-07-31 추천 0 댓글 0 조회 685
[성경본문] 신명기14:22-29 개역개정

22.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28.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믿음으로 드리는 것(신명기14:22-29/2021.8.1.오전)


1. 제가 유럽을 좋아하다 보니, 성지순례를 시작으로 이곳저곳을 방문했는데, 역시 로마를 포함해서 이탈리아는 가장 인상이 남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하면 사방으로 뚫려 있는 길이고 그 대표적인 것이 아피아 가도입니다.

아피아 가도는 기원전 312년에 개통된 것으로, 로마의 명문인 클라우디아 가문의 재무관을 지낸 아피우스가 처음으로 로마를 대표할 만한 길을 만들었고,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아피아 가도라고 한 것입니다.

아피우스는 고속도로만 만든 것이 아니라, 상하수도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입니다.

인로 인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 그대로, 로마는 길을 잘 만들어 세계적인 번영을 이루었지만, 반대로 보면, 이 길 때문에 로마는 수없이 외적의 침입을 받았고, 그래서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아피아 가도는 우리 기독교에도 중요한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 있습니다.

64년에 네로 황제가 로마에 불을 지르고 기독교를 대대적으로 박해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로마를 탈출했고, 베드로도 로마를 떠나려고 이 아피가 가도의 출발점에 서 있을 때, 로마로 들어가시려는 예수님을 만났고, 베드로는 그 주님을 향해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네가 버린 양들을 위해 다시 십자가를 지기 위해 로마로 간다는 그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되돌아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길은 디모데를 포함해서 수많은 전도자들이 복음을 들고 다녔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복음화가 빨리 진행된 것도, 이 아피아 가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행이라는 것은 시작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길 위를 오고 가며 서 있지만, 우리는 의외로 내가 오고가며 서 있는 이 길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길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인류에게 있어서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요 감동을 주는 삶의 교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제가 길에 관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본 영화가 있는데, 그것은 1954년, 이탈리아 감독 페데리코 펠레니가 만들고 안소니 퀸과 감독의 부인인 줄리에타 마시나가 주연으로 나오는 「길」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손에 의해 참파노 라는 차력사에게 팔려간 백치 소녀 젤소미나는 매를 맞고 온갖 구박을 받으며 함께 공연을 하다가 살인을 저지른 참파노로 인해 정신이 돌아버리고, 그런 그녀를 참파노는 길 위에 버려두고 떠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생의 삶도 전부 길 위에서 시작되면서, 길에서 인연을 맺고, 길에서 싸우고 지지고 볶다가 결국 길에서 헤어지고 길에서, 그것도 도중에 생애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우리에게 길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 핵심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는 이 말씀입니다. 모든 생명은 그에게서 나왔다가 그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본문의 말씀도 읽어보면 결국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이, 오늘 본문의 내용도 결국에는 영적인 원리, 곧 영생에 이르는 길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여행을 가서 2천 수백 년의 세월을 소유하고 있는 이 아피아 가도 위를 걷는다고 해도, 이 길의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면, 그저 관광지에 딸린 흔히 있는 길에 불과하지만, 역사적인 배경을 알고 그 길에 서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고 찾아내지 못하는 귀한 감동과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도 우리가 가진 일반적인 상식에서 생각한다면, 아! 오늘 설교는 십일조 내라는 설교구나! 그렇다면 내용은 뻔한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일에 우리의 생각이 여기에서 머문다면, 오늘 말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것을 기대할 수 없으며, 더 좋은 것은 더더욱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내용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우며, 무엇을 결심해야 합니까?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내용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매년 토지 소산에서 얻은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인생을 즐기거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소비를 즐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대하여 인색한 마음을 보게 되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지나치고 일방적이라고 생각합니까?

22절의 내용을 보면, "너는, 마땅히 매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땅히 라는 말은, 반드시 지킬 것이라는 의미인데, 그 위에 더하여 매년이라는 말은 정말 일방적인 요구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사람이 살다 보면 흉년도 만나고, 천재지변이나 사업에 실패하거나 병들어 누워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 형편은 아랑곳없이 한 해도 빠짐없이 십일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전체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들이 경영하는 모든 토지의 주인이라는 사실과, 우리에게 모든 열매와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 사회에도 십일조 개념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왕이 십분의 일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은 것을 가져갔으며, 그것도 모자라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으로 나가 생명을 걸고 싸워야 했습니다.

사실 나라와 민족을 지킨다는 개념보다는 왕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십일조 개념이 변하여 세금명목으로 국가가 징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4. 문제는 십일조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십일조가 사라지지 아니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또한 십일조에 대한 명령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신26장에 가면 또 십일조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11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고 하면서, 12절에는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씀의 배경에는 나의 모든 소득은 다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신약시대는 십일조의 의무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친히, "십일조는 드리되"(마23:23), 십일조뿐만 아니라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고 하시면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대로 레위인과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위해 베푸는 양식, 즉 구제비까지 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문 27-29절에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말하는 십일조는 3가지가 존재하였습니다.

첫 번째 십일조는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일을 맡은 레위인들을 위해서 내는 십일조입니다. 

그들은 12지파 중에서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 기업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들의 생활비에 해당하는 십일조를 내어야 했습니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에게서 받은 것 중에서 다시 제사장들을 위해서 자신들의 십일조를 드렸는데, 이것이 두 번째 십일조 입니다.

그리고 안식년을 기준으로 해서 매 3년째에 가서는, 본문 27-29절에 나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잔치 비용을 모아 두었다가 고아나 과부들을 구제하는 수단으로 드리는, 구제비에 해당하는 것이 세 번째 십일조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5. 그런데 요즘도 간혹 보면, 십일조를 교회에 드리지 않고 자기 소득의 십분의 일에 해당하는 금액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구제하고 선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본문 23절의 말씀처럼, 십일조는 하나님이 정하신 장소, 곧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인 하나님의 성전에 드려야 하고, 그것을 먼 길로 운반하기 쉽지 않으면 돈으로 바꾸어서라도 정한 장소로 가져가야 한다고 24절에서도 똑같이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선교나 구제하는 물질은 28절에 기록된 것처럼 매년 드리는 십일조와는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어떤 유명한 신학자나 목회자가 십일조에 대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와도, 참 믿음의 사람에게 십일조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하나님의 명령인 줄 믿기 바랍니다.

설교의 제목 그대로 십일조는 내게 주어진 상황이나 형편에 관계없이 나를 축복하시는 축복의 하나님에게 내가 믿음을 가지고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그 명령에 거역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십일조로 시험해 보라는 말씀이 말라기 3:7-12절에 기록될 정도로 이스라엘도 강퍅한 마음에 이 십일조 문제 때문에 많이 넘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십일조 드리는 자는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고 했으니, 우리가 축복받고 성공하기 위해 십일조를 드리자 하는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일조 개념은 첫째로, 나의 모든 소득과 소유를 하나님이 주셨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십일조는 하나님의 일을 전담하고 우리의 영혼을 책임지는 레위인들을 위한 것이지 내 소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겔44:30절에 보면, "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에게 네 집에 복이 내리도록 하게 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을 제사장을 통해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린다고 해도, 그것은 다 하나님의 소유이고 나는 그 분의 것을 관리하고 있는 청지기라는 사실에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6. 그러므로 십일조는 믿음으로 드리는 예물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누구라도 드릴 수 없으며, 믿음이 없으면 인색한 마음이 들고, 억울한 마음에 들기 때문에 기쁨으로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일조 없이 신앙생활 하는 자들의 특징이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는 이런 부담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포도나무의 가지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 이것만 잘하면 성공하고 살아남고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사모가 베란다 농사를 지었는데, 호박도 심고, 고추와 토마토도 심었는데 농사가 잘 안됩니다.

누구 책임입니까? 농사를 짓는 주인인 제 아내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이 식물들이 혼자서 아무리 애를 쓰고 수고를 해도 주인이 제대로 돌보지 않거나 농사법을 모르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열매는 주인이 맺도록 보살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그것으로 우리는 영원히 성공하는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주인되신 하나님이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염려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는 현재나 장래를 위해 염려하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이미 천지만물을 만들어 주셨고, 그 만물을 우리 손에 맡기시고, 우주에는 일월성신을 달아 놓으셨는데 무엇을 두려워하고 염려하겠습니까?

세 번째 특징은 스스로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7. 그러나 믿음으로 십일조를 드리면, 이런 고통과 고민과 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십일조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 중심의 내 믿음을 고백하는 행위이며, 또한  십일조 드리는 그 날은 본문의 내용처럼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는 축제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이 어려운 이웃과 나그네를 구박하거나 외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 가운데서 구제와 선교와 건축을 위해 또 다른 십일조를 드리되 즐거움으로 드리면,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영원한 축복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비결은 십일조를 포함한 모든 예물을 하나님께 믿음으로 드리는데 있습니다.

믿음으로 드리면 우리의 마음이 기쁘고, 믿음으로 행하면 인생이 즐겁지만, 그렇지 못하면 신앙생활은 종교생활이 되고, 결국 우리 인생의 멍에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 즐거우면 그것은 인생 최고로 성공한 것입니다.

십일조는 믿음의 사람이 믿음으로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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