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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담는 손(신명기15:1-11)
고영수 2021-08-07 추천 1 댓글 0 조회 691
[성경본문] 신명기15:1-11 개역개정

1.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2.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3. 이방인에게는 네가 독촉하려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준 것은 네 손에서 면제하라

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9.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축복을 담는 손(신명기15:1-11/2021.8.8.오전)


1.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보려면 거울이나 사진을 통해서 볼 수 있지만, 영상을 통해서 보여지고 공개되는 사람의 모습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 사람 자신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현대문명의 기기를 통해서 이미 가공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저기서 찍어온 풍경 사진도 실제로 가서 보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사실은 잡지나 영화, 드라마를 통해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SNS를 통해서 올려지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모습에는 진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스스로의 모습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며 무엇을 보면 우리 자신의 참모습을 볼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손을 한 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이 손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한평생, 이 손을 가지고 살아왔고, 이 손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사람의 손을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그 사람이 살아왔던 생명의 이력과 인격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손을 보면 지나온 험한 세월이 보여지고, 손을 만져보면 그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사람의 손과 그 마음을 마치 동어의처럼 그렇게 기록하고 함께 표현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절에서 시작하여 11절에까지 손에 대하여 5번이나 반복하고 있고, 마음이라는 말도 3번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만 살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도 자세히 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월 23일에 시작된 동경 올림픽이 오늘 막을 내리는데, 대부분의 백성들이 반대한 올림픽이었지만, 일단 시작을 했으니 아름답고 가치있는 대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응원했습니다.


2. 그런데 지난 8월1일, 육상 남자 800미터 준결승 달리기에서 중간에 달리던 미국 선수가 넘어지자 그 뒤를 따르던 포츠와나의 아모스 선수가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5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리며 훈련하며 목표로 삼았던 올림픽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입니다.

앞서가던 미국 선수는 자신의 잘못으로 넘어졌지만, 뒤따르던 선수는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러나 아모스는 먼저 넘어진 미국 선수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더니 어깨를 껴안고 함께 골인하였습니다.

올림픽 메달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라이벌임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은 서로를 격려하고 탓하지도 않는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참된 스포츠맨십이라고 칭찬했고, 아모스 선수가 넘어진 선수에게 먼저 내밀었던 그 손을 보고 많은 사람이 감동했습니다.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우리에게 준 감동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문제는 오늘 우리 손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이 손에서 무엇을 보며 무엇을 느끼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 손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아픔을 주었고 무거운 짐이 되었을지.

움켜쥔 나의 이 손 때문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망하고 낙심했을지.

아니면 이 손으로 내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만큼 사랑과 은혜를 끼쳤으며, 그들에게 나의 이 작은 손으로 얼마나 힘이 되어 주었는지,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핵심이 무엇입니까? 너의 손을 펴라는 것입니다.

네 이웃의 가난한 자들과 어려움을 당하는 형제들을 향해서 이 손을 펴라는 말씀입니다.

     

3.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위해서 여러 가지의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은 안식년이 돌아오면, 다시 말해서 매 칠 년째에는 이웃이 빌려 간 빚을 면제해 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남에게 돈을 빌려줄 때는 받을 이자부터 생각하는데, 이자는커녕 원금도 받지 말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그러나 이런 우리의 생각은 아랑곳없이 하나님은 계속해서 너의 손을 움켜쥐지 말고 펴서 가난하고 어려운 자를 위해 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9절에 보면, 빌려간 돈을 갚지 않는다고 째려보고, 재물을 가진 손을 더욱 움켜쥐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고 하니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어제 뉴스를 보니, 미국에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바이든 대통령이 세 든 사람이 집세를 내지 못해도 당장 쫓아낼 수 없는 법을 만들어 시행할 것이라고 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집 주인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집 가진 자는 잘사는 사람이고, 세 든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집을 가진 자 중에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집 없는 서러움을 벗기 위해서 세금혜택에 융자며, 무리해서 집을 사는 사람들도 많고, 집을 따로 소유하고 있으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세를 사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게 되면, 시장경제가 혼란에 빠지게 되고, 가난한 자를 도우려다가 엉뚱하게 더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그렇다면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3절에 보면, 이방인에게는 해당 사항이 안되는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킬 의무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에게는 돈을 빌려 준 후, 값으라고 독촉을 할 수 있으며, 매 7년 마다 안식년이 돌아와도 그 빚을 면제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방인은 이스라엘과 달리 하나님의 언약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같은 이스라엘에게는 이자를 받으면 안되지만, 이방인에게는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곧 그들의 이웃이며 형제들에게는 자비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 가운데 약한 자도, 가난한 자도 없이 누구나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축복을 누리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사는 곳에는 강자가 있으면 약자가 있고, 부자가 있으면 가난한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만나면, 자신을 부자에게 팔아 스스로 종노릇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종이 되어도 7년째 곧, 안식년이 되면, 그를 자유인으로 놓아주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도록 재물도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3절 마지막에 보면, "네 손에서 면제하라" 고 하였는데, 이것은 법적인 것을 따지지 말고, 계약서로 상대방을 괴롭히지 말고, 그냥 스스로의 재량으로 없는 것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돈을 빌려 간 사람을 아무나 면제해 주라는 것은 아닙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지불 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면제를 해 주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빌린 돈도 면제해 주지만, 사업을 위해서 빌린 돈은 해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가끔 보면, 사업한다고 돈 빌려 간 후에 어렵다고 내 배를 째라고 버티고 도리어 큰소리치는 사람들은 법에 고소하고 혼을 내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과부나 고아나 나그네처럼 사회적인 약자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돈을 빌려주면, 받을 이자부터 생각하지 말고, 빌려 간 사람의 생활을 먼저 걱정하라는 것입니다.  

       

5. 그렇다면 내게 도움을 청하고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합니까?

8절에 보니,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고 하였는데, 이것은 빌러 온 사람의 형편을 살펴서 그가 요구하는 금액보다 더 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도 보면,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고후8:14)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돈이 많다고 항상 많은 것도 아니고, 없고 가난하다가 언제까지 가난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가 넉넉하면, 아! 이것은 하나님이 어려운 자들에게 흩어 구제하라고 주신 것이구나 생각하고 아낌없이 주면, 내가 어려움을 당하면 이전에 내가 흩어 구제한 것처럼 다른 사람이 내게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입니다.

로마가 도시국가로 태어날 때는 이미 사방에는 아테네를 비롯한 강대한 도시국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나중에 로마는 대제국이 되었고, 다른 도시국가들은 역사에서 하나둘 사라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로마는 점령국가들을 로마인으로 동화시켜 나갔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국가라고 함부로 다루지 않고, 그들에게도 로마인으로 시민권을 주었고, 선거권과 피선거권, 병역 의무와 납세 의무를 부과하는 대신에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자유로운 매매를 허락하면서 소위 형제국가와 동맹국가를 늘려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일정 기간, 로마에서 거주하게 되면 로마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심지어 노예 출신이라도 주인을 위해 큰 공을 세우거나 돈을 지불하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테네는 시민권에 대하여 너무 엄격했습니다. 

양쪽 부모 모두가 아테네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야 그 자녀도 아테네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위해서 많은 공헌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아테네 시민이 되지 못했습니다.

로마는 이방인이나 패배자나 노예라도 그들이 원하면 손을 벌려 그들을 도와 주었고 품에 안아 주었기 때문에 대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21세기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6. 언 듯 보면 본문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지나친 것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말씀에 손종하여 손을 펴서 선을 행할 때, 그들을 더 큰 나라 더 위대한 민족, 축복받은 언약의 백성을 삼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5절 말씀처럼 "네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 이라는 것과 둘째는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을 것" 이라는 것과 셋째는 10절에 보니 "이로 말미암아---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말할 때, 무엇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네게 하신 말씀, 곧 믿음의 조상들과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인, 이 성경 말씀 전체가 나를 축복하시기 위해서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아멘하는 이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서 우리 주위에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두셨고, 그들에게 내 손을 움켜쥐지 아니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이 손을 펴서 주고 나누고 공급하면, 이 일을 위해서 더 크고 놀라운 것으로 복을 주실 줄 확신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내가 손을 펼 때마다 나를 향해 손과 팔을 펴시고 찾아오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왜 나도 어려운데 이런 일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이미 우리의 빚을 갚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하여진 사망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영원한 자유와 영원한 하늘나라의 기업을 주셨습니다.


7. 초대교회 시대의 소아시아에 있는 많은 교회는 기근으로 어려움을 당한 예루살렘 교회를 자발적으로 도왔습니다. 우리나라가 북한 공산당의 침략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에는 전 세계 자유우방의 많은 나라들이 파병을 하고 도움을 주어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개인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그리고 많은 교회가 어려움 당한 자를 위해 손을 폈습니다. 

사람의 손은 그 사람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내 손을 움켜쥐고 있으면 가난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예수님도 내 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나보다 더 연약하고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움켜쥐지 말고 이 손을 펴서 내밀면, 우리의 손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놀라운 축복을 이 손에 담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받은 은혜를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고,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세 전부터 예비해 놓으신 축복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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