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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받은 주님의 사랑(요한복음17:9-19)
고영수 2021-11-13 추천 0 댓글 0 조회 742
[성경본문] 요한복음17:9-19 개역개정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우리가 받은 주님의 사랑(요한복음17:9-19/2021.11.14.오전)

 

1. 1704년, 독일에 베냐민 슈몰크 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목사 아들로 태어나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를 대신해서 설교할 때가 많았고, 그때 그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은 한 변호사의 도움을 통해 신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는 가톨릭과의 30년 전쟁으로 1천 6백만 독일 인구가 6백만으로 줄어들 정도로 나라가 황폐되었고, 온 국민은 고통과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종교전쟁에 이긴 카톨릭의 허락이 없이는 마음대로 목회할 수도 없었고, 병자를 심방하는 일도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베냐민 목사가 시무하는 지역에는 루터교회 하나만 목회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고 나머지 교회들은 전부 카톨릭으로 귀속을 시켰기 때문에, 그는 무려 36개의 광대한 지역을 맡아 목회를 하다 보니, 한 번 심방을 나가면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집은 불에 탔고, 사랑하는 두 아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잿더미를 뒤지다가 보니, 어린 두 아들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까맣게 타 죽어있었습니다.

그때, 베냐민 목사님은 불과 32살이었습니다.

망연자실하여 한참을 울다가, 조용히 무릎을 꿇고 주님께 기도하는데, 그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막14:36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십자가를 앞에 둔 예수님의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하기를,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세상 고락간 주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였습니다.

그의 이런 기도내용이 마침내 찬송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애창곡이 되었고, 오늘 우리가 가진 찬송가 549장에도 남아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아픔을 딛고 더욱 열심히 목회하다가 여러 번 쓰러졌지만, 지팡이에 의지하여 심방을 멈추지 않았고, 그리고 그가 남긴 1천 편이 넘는 찬송시는 많은 사람들의 위로와 소망이요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2. 저는 다니엘기도회의 간증자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우리에게는 왜 구원받은 자로서 구원에 은총에 대한 감격이 없을까? 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로서 감사가 없을까?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는 무엇이고, 우리가 믿고 있는 이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간증의 주인공들이 믿고 따라가는 그들의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망을 가지고 시작한 2021년도도 벌써 저물어 가고, 다음 주일이면 추수감사절을 맞이합니다.

사실 추수감사절은 구원의 은총을 입은 성도에게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매우 의미 깊은 날입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들의 간증에서 아무리 감동이 있고 은혜가 넘쳐도 그 때 뿐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매일의 생명의 양식인 성경을 통해 은혜받고 받은 은혜를 성령님의 도움으로 내 삶에서 재생산해낼 수 있을 때, 그때 우리는 진정한 간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의 성품이 내 인격이 되고, 성령의 능력이 내 삶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충만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을 깨달아서, 잃어버렸던 구원의 감격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가 넘치는 성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3. 요한복음 17장은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중보기도 내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가 입은 그분의 은총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주셨다는 말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은 사람들에 관한 것입니다. 특히 9절에 보면,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 이라는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이미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된 은총을 입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그의 소유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에 대한 확신과 구원의 감격이 우리에게는 너무 약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10:28절에 보면,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한 번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영생을 선물로 받은 자는 누구도 그분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고, 자녀된 우리의 신분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서 한 발짝 세상을 향해 나가보면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돈이나, 한국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부동산이나, 여자들이 좋아하는 다이어몬드를 포함한 보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리저리 주인이 수시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원히 내 소유라고 믿었던 세상의 좋은 것들이 어느 순간 마치 모래처럼 내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 나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피눈물 같은 내 가족, 내 형제, 부부 사이라도 이리저리 찢겨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서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온전한 내 소유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여기에 목숨을 걸고 청춘을 걸고 달려가다가 넘어집니다.

 

4.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이것입니다.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내것, 내 이름이 새겨진 보물이나 통장의 돈이나 재산이 내일은 누구의 손으로 흘러 들어갈지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내 영혼은 하나님의 손에서 마귀도 빼앗을 수 없다는 이것이 보배롭고 아름답고 귀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백하기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롬8:38-39) 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누구에게 속해 있으며, 내가 누구의 소유인지에 따라 내 인생의 모든 가치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똑같은 한국인이라도 북한에 사는 사람들은 공산주의 독재자의 노예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그야말로 위태함에 빠진 제 생명을 위해서 목숨을 걸지 않으면 하루도 살아가기 어려운 존재들이 북한에 사는 동포들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헌법에 생존권을 보장받고 자유를 누리면서 잘살고 있습니다.

원래는 그들이나 우리도 다 똑같은 죄인이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엔국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우리도 생지옥에서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살았을 것인데, 주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총이 우리 죄를 씻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 믿습니다.

 

5. 계속해서 9절과 15절에 보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날 위해 기도하신다는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 분이 날 눈동자처럼 끝까지 지켜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큰 어려움이 없이 잘 살다 보면, 이것이 전부 내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이 연약하고 무능하고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흙으로 만든 육체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셨기 때문에 인간이 가치 있는 생명이 된 것이지, 하나님이 흙으로 만든 육체에 생기를 불어넣지 않으셨더라면 사람의 손으로 제멋대로 만든 우상보다 더 못한 존재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을 위해 하신 기도의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십자가로 인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그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관심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쏟아붓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셔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본문 9절에 보니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 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우리를 사랑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주시는 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6. 전도를 해 본 사람들은 잘 압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소유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마귀의 자녀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8:44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의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 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고 했습니다.

거짓말하며 온갖 불의를 행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의 아비가 과연 누구겠습니까?

그래서 문제는, 전도해서 한 영혼을 구원하려고 하면, 마귀가 한 영혼이라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온갖 방해를 하고 발악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럴 때, 전도자가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섭섭한 마음을 가지면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마귀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 소유를 생명을 걸고 지키려는 것처럼, 마귀는 원래부터 자기 소유였던 그래서 멸망할 한 영혼을 그리스도인들이 구원하고 살리려고 하니 보고만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11, 12절에 보면, 보전한다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조심스럽게 돌본다, 굳세게 붙들다, 보호한다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시는 목적은 그들이 악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거룩함을 지킴으로 아버지께 받은 사명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자체가 영적인 전쟁입니다.

어제 다니엘기도회의 간증에, 아마존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가 하는 말이 귀신들린 자를 회복시켰더니 그 귀신이 집에까지 따라와서 자기 딸에게 들어가서 발악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이런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7.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들은 이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2장에 보면, 이 세상은 공중권세 잡은 마귀가 사로잡고 있다고 했습니다. 악한 마귀가 이 세상의 온갖 악하고 잘못된 풍습과 유행을 만들어 내어서 자기를 따르도록 유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소망을 둔 사람은 늘 세상에게 속고, 유혹에 넘어지고, 결국은 죄 때문에 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의 자녀인 줄 믿습니다.

똑같은 하늘 아래에서 똑같이 이 땅을 밟고 살지만, 우리는 그들과는 신분이 다르고 그 출발점과 마지막도 전연 다른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잠깐 죄 가운데 떨어졌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을 입어 다시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회복하였고, 두 번 다시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영원히 사는 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17절에서도 예수님은 우리가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한 자가 되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진리를 떠난 악한자들이 제 마음대로 사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이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그래서 죄인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생명의 길이 없고, 늘 죄로부터 추적을 받기 때문에 평안이 없습니다.

 

8. 옛날에 김세레나라는 가수가 부른 갑돌이와 갑순이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서로 사모하며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어느날 갑순이가 시집을 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갑돌이는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두 사람이 가진 치명적인 실수는 서로 마음뿐이었지 진정한 고백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면, 당연히 나를 위해 자기 생명까지 희생하신 그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고백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 다윗은 늘 반복해서 하는 고백이 무엇입니까?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이같은 고백을 매일 아침 순간마다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틀림없이 갑돌이처럼 밤새도록 후회하며 눈물 흘릴 일만 남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결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사도바울의 고백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사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받은 축복 중의 축복인 줄 믿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흙으로 지은 연약한 인생이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삶 자체가 죄 덩어리일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날 지켜 주시고 중보기도로 함께하시니 우리는 두려울 것도 염려할 것이 없는 것은,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땅을 밟고 살아도 우리는 그들과 신분이 다른 하나님 자녀입니다.

성경에 흘러넘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셨고, 아들까지 주셨고, 또 넘치도록 채워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답게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약속해 주시면서 염려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 부러워하지 말고, 받은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고, 예수님의 중보기도에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이 사실에 감사 감격하며 살 때, 우리의 삶은 입술을 열지 않아도 이미 전도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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