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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의 은혜(신명기16:15-17)
고영수 2021-11-20 추천 0 댓글 0 조회 854
[성경본문] 신명기16:15-17 개역개정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초막절의 은혜(신명기16:15-17/2021.11.21.추수감사절)

 

1. 유대인들에게는 인생의 교과서와 같은 소중한 책이 있는데, 그것은 탈무드라는 것으로, 이것은 구전으로 전승된 율법을 모아 해석한 지혜서와 같은 것입니다.

그곳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본질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이 매년 무교절과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이라는 삼대 절기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생활과 죽음의 재앙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방되어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는 절기이고, 칠칠절은 봄의 수확기를 맞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이고, 초막절은 수장절로 일년 동안 지은 농사의 수확과 받은 축복에 감사하는 제사였습니다.

이러한 절기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 칠칠절은 성령강림절과 맥추감사절로, 유월절은 부활절로, 초막절은 추수감사절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감사로 이어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향하신 명령이고 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추수감사절은 과거 이스라엘이 행하는 초막절과는 조금 다릅니다.

현대적인 감사절의 기원은 16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는 동안, 강대국인 스페인의 눈치를 보는 정치와, 성공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천주교의 영향으로 인해, 점점 개신교도들의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했고, 국교인 성공회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제임스 1세 때, 신앙의 자유를 찾아 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훌라워 호를 타고 영국을 떠나 신대륙인 아메리카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근과 질병, 견디기 어려운 추위와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신대륙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봄에는 살아남은 사람이 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씨를 뿌리고 경작하여 그 해 가을에 열매를 수확하면서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린 것이 오늘의 추수감사절이 된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개신교에 있어서 추수감사절은 신앙의 자유를 위한 목숨을 건 투쟁의 역사요, 환란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고 믿음을 굳게 지킨 사람들의 유산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의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제사였던 초막절과, 청교도들이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 추수감사절을 오늘 우리는 어떻게 지켜야 마땅한 것입니까?

  

2. 제일 먼저 잃어버렸던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감사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한 곳은 없지만, 누가 읽어보아도 이 내용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제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추수감사절에 해당하는 절기를 초막절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이 애급에서 나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40년간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출애급의 역사가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간 지금에도 이스라엘은 7월 15일이 되면, 과거 조상들이 겪었던 애급의 고통은 물론이고, 광야 생활을 돌아보며, 종려나무가지와 버들나무를 꺾어다가 바깥에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일주일을 기거하면서, 자신들의 조상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 예배의 핵심은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활이 어려워도 매주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은 내 인생의 최고이시며 나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5절 후반부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살아가면, 당연히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범사에, 복을 내리심으로 우리 인생이 감사가 넘치도록 축복해 주시는줄 믿습니다.

 

3. 지난주에 선교사 카톡방에 올라온 메시지 하나를 보니, 감사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 엄마에게 11살 된 둘째 아들이 다가가서, 엄마!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이 뭔지 아세요? 물었더니, 엄마는 글쎄 뭐가 달라질까? 너는 알아? 하고 되물었더니, 감사를 하면 행복해 진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엄마는 하도 기특해서 하나 더 말해 줄 수 있겠니? 이왕이면 3가지 정도는 말해보렴, 하였더니,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감사하면 사이가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아들에게, 너는 훌륭한 철학자야! 맞아!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하는 것인데, 감사를 하면 관계가 좋아질 수밖에 없어! 맞아! 맞아! .

둘째는 마지막 세 번째를 말했는데, 그것은 감사하면 몸이 건강해 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린아이들도 잘 알고 있는 이런 감사를 우리는 잊어버린 채 살고 있습니다.

사람 사이, 특히 부부관계, 형제들끼리, 친구끼리, 그리고 학교 선생님이나 회사에서, 교회에서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를 너무 당연한 듯이 생각하다 보니, 그 당연한 것이 조금이라도 침해를 당하거나, 내 감정에 손상이 오면, 감사는커녕 반발하고 욕하고 비판하고 미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11살 아이지만 틀린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선교사이신 부모님의 믿음이 어릴 때부터 이 아이의 심령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잘 자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사회적으로 약한 자의 위치에 있어도,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이웃을 향한 감사가 남아 있다면, 우리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고, 성공한 사람이며, 건강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4. 그다음에는 우리 안에서 감사가 살아나면 그 감사를 따라 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기쁨입니다.

사람들이 진담반 농담반으로 하는 소리가 있는데, 그것은 온종일 웃을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 같은데 나오는 좀비가 웃는 것을 보셨습니까? 웃을 잃어버리고 기쁨을 잊어버린 인생은 그야말로 좀비 같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본문을 전후로 보면, 11절에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하였고, 14절에 "함께 즐거워하" 라고 하였고, 15절에도 "너는 온전히 즐거워하" 라 하였으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자체가 기쁨의 축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안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기쁨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12절을 보니,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그때, 그들에게는 그 세월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고, 얼마나 부끄러웠으며, 얼마나 비참한 시절이었습니까? 

그 때를 생각한다면 누구라도 감사가 넘칠 수 밖에 없으며, 누구라도 기뻐 춤을 출 것입니다.

그러나 개구리가 올챙이 때를 생각할 줄 모른다고, 지나온 과거는 잊어버리고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기 때문에, 그래서 기쁨을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불행한 이유는 남들과 비교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수저 흙수저라는 자조적인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흙수저가 어때서, 뭐가 문제입니까?

이런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만든 언어이고 유행입니다.

이런 세상을 향해 믿음의 사람 사도바울은 선언하기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고후5:17) 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재창조된 하나님의 자녀이니, 누가 우리를 대적하며 누가 우리를 비웃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세상 풍습이나 사람들의 생각으로 우리 자신을 비하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5. 현대인들은 비교하기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또 한 가지는 욕심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움켜쥐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도 내 손에 들어오면 절대로 남에게 베풀지 못합니다. 말이 아무리 청산유수라도 마음에 욕심을 쌓아두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약1:15절에 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그리스도인이라도 욕심이 지나치면 그 욕심이 스스로를 죽이고 패가망신케 한다는 것입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지금도 양봉업자들이 3년에 한 번은 농사한 꿀을 이웃에게 나누어준다고 합니다.

이유는 벌은 내가 키웠지만, 그 불이 물고 온 꽃가루는 남의 꽃, 남의 밭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하였듯이, 오늘 우리의 삶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다음에는 이웃과 더불어 아낌없이 감사를 나누는 기쁨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된 신앙이 무엇입니까? 물질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요, 세상의 염려에서 해방되는 것이요, 남을 비판하거나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축복의 크기에 상관없이 감사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감사와 기쁨을 누구와 나누라고 하였습니까?

14절에 보니,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 하라고 했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가까운 이웃과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 복을 받았으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들이 내가 누리는 기쁨에 함께 참여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6.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킬 때, 첫째는 감사를 회복하고, 둘째는 이웃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고, 세 번째는 하나님께 힘껏 감사의 재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17절에,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힘대로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야드」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능력껏, 재력껏 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남들과 비교해서 드리는 감사예물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받은 그 은혜와 축복의 분량에 맞추어 부끄럽지 않게 드리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분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보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나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 모든 것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세상을 즐기고 남들이 맛볼 수 없는 쾌락을 즐기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그는 시간이 갈수록 감당하기 어려운 허무감과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힘들고 어려워도, 이 고난 속에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이 놀라운 계획이 있음을 믿고, 감사함으로 나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 안에 평안함을 주시고, 기도에 응답하셔서 감당이 안될만큼 큰 은혜와 축복을 내려 주시는 줄 믿습니다.

 

7.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인 정경화, 정명화와 피아니스트인 정명훈 삼 형제는 그의 모친이 믿음으로 키운 자식들입니다. 2005년, 손가락 부상을 입고 더는 연주를 할 수 없게 된 정경화씨는 낙심하고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의 어머니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믿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2010년에 기적적으로 손가락이 치료되었고, 다시 무대에 올라 바이올린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매료시켰습니다.

그녀가 손가락에 보험을 걸려고 할 때, 어머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보험을 들어야지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고 꾸짖으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첫째 조건은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초막절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을 회복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힘을 다하여 드리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15절에는 복을 주실 것에 대하여, 17절에는 주신 복을 따라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추수감사절은 과거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앞으로 받을 미래에 대한 감사를 함께 하나님께 올리는 감사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년 2022년을 어떻게 설계하고 있습니까? 정말 내년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싶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내 인생의 원동력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과거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자기 백성을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며, 무엇보다도 삶 속에 감사가 넘치는 사람의 오늘 이 감사부터 시작해서 평생에 넘치는 감사로 이어질 수 있도록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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