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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오신 예수(요한복음1:9-14)
고영수 2021-12-04 추천 0 댓글 0 조회 761
[성경본문] 요한복음1:9-14 개역개정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빛으로 오신 예수(요한복음1:9-14/2021.12.5.오전)

 

1. 사람들은 고등교육을 받고,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가치관으로 시대를 비평하면서 자신을 지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는 곳에는 고통과 분쟁과 헛됨으로 넘치고 있을 뿐, 제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생명의 말씀에 기초하는 인격이나 사고의 능력, 그리고 진리 위에 서 있는 삶이 아니고는 이 세상에서 그 어떤 몸부림이나 지성적인 활동도 다 헛된 것이고, 그 결말은 예외 없이 욕심과 죗값으로 반드시 멸망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빛이요 그 어떤 사람이라도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집중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은 생명의 빛인 진리로 넘치며,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 어둔 세상을 비추는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이곳에 모인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긴장을 해야 합니다.

이유는 진리의 말씀은 우리의 심령과 마음에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면 짐승도 사람처럼 먹고 마시고 잠자고 행동하는 것이 비슷하게 보여도, 사람과 짐승은 전연 다른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지정의를 사용하여 이해하고 공감하고 관찰하고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또한 여기에 관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 지식 중에 하나쯤으로 생각하거나, 철학적인 사고를 위해 도움을 주는 지혜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간절한 마음으로 구원을 사모하고 은혜받기를 사모하면, 주님은 만나 주시고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불안과 두려움과 혼란과 근심 속에 살던 인생이 변하여, 인간이 무엇이냐? 나는 누구며 어디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다가 또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답을 얻게 되고, 그래서 그때부터 불안 대신에 평안을 얻고, 두려움 대신에 확신을 가지고, 근심 대신에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지난주부터 교회는 대강절,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천년 전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맞이할 준비를 못해서 그분을 마구간에서 태어나게 하셨고, 애급으로 피난을 하도록 만들었지만, 우리는 진리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 곧 생명의 빛을 우리 심령의 지성소에 모심으로, 하나님의 축복받은 자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축복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 사람들은 학문과 지식, 지위와 능력과 부귀를 자랑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남다르게 누리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이 세상이야말로 천국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생명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내가 자랑하고 의지하며 교만한 마음으로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끄러운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랑할 것이 많았고, 교만한 마음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았지만, 예수님을 만난 뒤로는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게 될 정도로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적인 사고방식으로 판단하는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진리의 말씀 안에는, 인간이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창조의 능력과 영원한 축복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풍성이 넘치는 줄 믿습니다.

3.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10-11절의 말씀으로,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 다는 이것입니다.

이 세상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과 인생을 포함한 만물의 모든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하지 않았다는 이것입니다. 세상 표현으로 하면 반역이고 배신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왜 우리에게 좀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자신을 계시할 수 없었느냐고, 그분의 나타나심과 표현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우선 본문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 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빛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단순하게 빛이라고 하지 않고 참 빛이라고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빛은 단순히 생각하면 어두움을 밝히는 빛의 역할을 하지만, 여기서 그리스도를 참 빛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둠을 밝히는 진리의 빛으로만 오신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되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빛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은 생명을 살리고, 저주받은 환경을 변하여 축복으로, 병든 생명도 치료하고, 심지어 망가지고 버림당한 생명까지도 살리고 새롭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그래서 참 빛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빛이 있지만, 인생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빛은 오직 참 빛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빛은 잠시 잠깐 어둠을 밝히다가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그 어둠에 삼킴을 당해야만 하는 제한적인 빛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영원한 생명의 빛이 되시는 분입니다.

어두운 방에 불을 밝히면, 캄캄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문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을 통해서 사물을 보고 느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가 빛으로 오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그가 내 안에 빛으로 오시면, 이전에는 깨닫지도 못하고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을 알게 되고, 더 귀하고 복된 것들을 영원히 우리 자신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참 빛을 받으면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모든 저주는 물러가고, 이유도 모른채 당하는 고통은 사라지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전연 새로운 삶을 그것도 영원히 사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도 지금도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치명적인 문제점입니다.

그 사실을 11절에서 밝히기를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는 이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문제점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까지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을 내 안에 받아들이기면 하면, 내 안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을 믿기만 하면, 그분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 지신 고난의 희생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일인지 저절로 깨달아지고 수용이 될 수 있습니다.

 

5. 그래서 본문 11절에서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서는 안 될 곳이나, 방문해서는 안 될 곳을 가신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자기 땅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땅에서 거부당하고 배척당하고 자기 백성에게 당하신 멸시와 십자가의 죽음은,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당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모욕과 수치였고, 고통이며 외로움이었으며 마지막에는 그들의 미움 때문에 죽임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일을 미리 알고 있던 세례요한은 자기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향해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1:29)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배척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배척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들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였고, 그 죄 때문에 참 빛의 비췸을 거부하여 어두움에 숨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 보니, "빛이 어두움을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어둠이란 단순하게 태양이 사라진 캄캄한 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어두움은 죄악에 사로잡혀 그 생각과 삶의 모든 영역이 불법과 무지함에 갇혀 진리도 모르고 생명도 모르고 깨달음도 뉘우침도 없이 사는 사람들의 삶의 실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어두움이 지배하는 정치의 특징은 외치는 구호와 명문은 그럴듯하지만, 결과는 사람들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갈수록 고통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런 어두움이 지배하는 사회는 개인주의의 욕심으로 팽창하여 결국에는 풍선이 터지듯이, 바벨탑처럼 소리를 지르며 무너져 내릴 뿐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증언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6. 사도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가리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롬3:10-12)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고 사람 대접받으면서 인간이 추구하는 지고의 선과 행복을 누리고 싶어도, 눈물로서 시작해서 죽음이라는 고통으로 끝나고 마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죄 때문입니다.

내 죄가 내 욕심이 내 고집과 어리석음이 내 인생을 저주 속에 빠뜨리고 고통하게 만들었고, 그것도 모자라 죽은 후에는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져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자기 백성이 구원받고 죄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얻는 일이라면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십자가에서 희생해 주셨습니다.

자기 생명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본문 12절에 보니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지금도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내 안에 쌓아놓은 욕심과 분노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는데, 그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품고 사는 사람들과 사랑을 먹고 자란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고, 나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더 많은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만족하면서,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값진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에는 지금 내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가는 길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7. 요셉은 어려서부터 형님들에게 차별당하고 무시당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과 조건에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꿈꾸는 미래는 자신을 괴롭히는 형님들과 같은 그런 인생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살리고 모든 사람을 도와주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꿈을 가진 요셉을 축복하시고 마침내 어린 소년이 꿈을 꾸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요셉을 보고 애급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 (창41:38) 이라고 하였고,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39)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된 꿈이었고 삶이었고, 하나님 앞에 받은 사명이었습니다.

이것은 신화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지금도 믿는 자들 가운데서 살아 역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요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내어주신 은혜인 줄 믿습니다.

아무리 재벌의 자식으로 태어나도 머리 나쁘고 건강이 나쁘면 부모와 사람들의 근심덩어리일 뿐입니다. 바로 이런 인생을 위해서, 내 힘으로 내 지혜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며, 의지할 곳도 없는 그런 인생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지금 우리의 심령의 문 앞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성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12)다는 것입니다.

 

8. 인간은 밤 하늘에 떠 있는 달처럼 결코 스스로 빛을 비출 수 없습니다.

스스로의 문제와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보내 주셨고, 진리의 말씀으로 오셔서 영접하는 자들 가운데 영원한 생명으로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막10:45) 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예외없이 이 세상에 올 때 받기 많은 것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형제와 친구의 사랑을 받으며, 믿음의 형제들로부터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어두움을 비추는 유일한 생명의 빛이요 진리의 빛입니다. 

그러나 자기 땅, 자기 백성에게 오셨지만, 그들이 영접하지 아니함으로 이 세상은 지금도 어둠으로 인하여 분쟁하고, 죄로 인하여 고통하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서 나라와 민족 가운데서도 고통과 분쟁과 미움이 떠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빛과 진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정에, 내 심령에 모셔 들이면, 죄로 인하여 분쟁과 미움과 고통으로 가득찬 세상은 변하여 생명과 은혜로 충만하며,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에 영원한 생명의 빛을 소유하는 줄 믿습니다. 

이사야 61장에 보면, 그곳에 인생의 역전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축복의 복음이 전파되고, 상한 자에게는 주님의 치료의 손길이 임하고, 슬픔과 근심에 빠진 자에게는 위로와 소망과 찬양이 넘치며, 무너지고 황폐된 곳은 반드시 회복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진리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지금까지 우리 인생을 괴롭히던 모든 저주와 고통은 물러가고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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