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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소식(누가복음2:10-12)
고영수 2021-12-18 추천 0 댓글 0 조회 773
[성경본문] 누가복음2:10-12 개역개정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제공: 대한성서공회

기쁨의 소식(누가복음2:10-12/2021.12.19. 성탄주일)


1. 인간은 누구나 갈등을 안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은 원래의 나라고 하는 존재와 행동하는 또 다른 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분리가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를들어 나는 행복을 누리고 싶은데 그것을 성취할만한 힘이 없거나 조건이 않될 때, 절망이 오고 좌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데로 마음 먹은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정직하게 살고 싶은데 현실은 거짓말하고 속이며, 법과 예의를 지키며 살고 싶은데, 실상은 내가 좋으면 그것이 법이고 정의처럼 생각하며, 온순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면서 현실은 우는 사자처럼 화내고 미워하고 질투하면서 사는 또 다른 나를 보면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이런 모습은 인간관계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응답이 되면 그 때는 좋으신 하나님이고, 내가 원하는대로 안될 때에는 하나님이 실수 하셨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원망 불평이 나오고 하나님의 사랑까지 의심하는 것입니다.

롬 7장을 보면, 사도바울은 많은 세월을 통해서 곤고한 인생을 경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의 성공을 행복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또한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몸부림과 인간적인 노력이 있었지만, 이것 또한 소용없는 짓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 사도바울이 깨달은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행하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7:22-23)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삶 자체가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2. 과연 인간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으며, 또한 행복을 누릴 수 없는 존재입니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롬7장 24절에 바울의 탄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로 이것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고는 인생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행복도 성공도 기쁨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과,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살면 살수록 죄가 주는 고통으로 인해 비참해질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죄로 말미암아 비참해진 인생에게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천사가 목동들에게 나타나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목동이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천한 신분이니 그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기쁨과 일반 사람들이나 특권을 누리는 귀족들이 생각하는 기쁨은 차원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렇지 않는 것을 10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대상이 목동처럼 천한 사람들을 대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이라고 하였으니, 여기서 말하는 온 백성은 헬라어로 「판타 토 라오」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왕궁에 있는 헤롯왕은 물론이고, 남녀노소를 불분하고, 사회적인 신분이나 소유를 불문하고 이스라엘 전체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어떤 사람은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불만이고 또 어떤 사람은 관심도 없는 그런 소식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기뻐할 만한 그런 소식을 전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는 여야당을 불문하고 국가의 크고 중요한 행사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이나 정당이 낙선하게 되면,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쁨의 좋은 소식이지만, 나에게는 아쉽고 슬프고 걱정이 되는 일입니다.

물건을 사고팔 때도 장사꾼이 이문을 많이 남기면 그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소비자는 속은 것 같아서 속이 상합니다. 그러므로 모두를 기쁘게 할만한 기쁨의 좋은 소식이란 실상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판타 토 라오」 라고 온 이스라엘이 기뻐할 좋은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3. 그런데 예외 없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기뻐할 만한 좋은 소식이라는 이 사실 한 가지만 해도 믿을 수 없는 일인데, 그다음에 나오는 말은 더 기가 막히는 내용입니다.

12절에 보니,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 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의 속국으로 도탄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에게 시골 한구석에서 그것도 갓난아기가 태어난 것이 무슨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 태어난 아기가 왕궁에서 왕자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반 가정의 안방에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하룻밤도 함께 지낼 수 없는 냄새나고 지저분한 마굿간에서 아기가 태어났고, 그것도 말이 사용하는 여물통에 어린 아기를 뉘어 놓았다고 했으니, 어찌 이것이 기쁨의 좋은 소식이며 어찌 이것이 하나님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신 표적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신분이나 환경이나 소유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 그들에게 주어진 상황이 어떤 것이든지 상관하지 않고, 그 상황을 항상 긍정적으로 보고, 그것을 항상 위로 올라가는 발판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회사에 말단으로 들어갔더니 선배나 상사들이 많은 일거리를 맡기면, 보통 생각하기를 못해먹겠다느니 회사를 때려치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이런 어려움을 일을 더 빨리 배우고 상사들에게 더 빨리 인정받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는 남들보다 더 빨리 달려가고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아기 예수 그리스도가 마구간에서 태어난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4. 사도바울은 여기에 대하여 자신의 분명한 확신을 고전1장에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1:22절 이하에 보니,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이나 헬라인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이 구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전도해보면, 하나님 살아계신 증거를 보이라고 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대하여 그런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소리라고 공격하는데, 놀랍게도 성경은 사람들이 어리석게 여기는 이 복음을 가리켜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눈높이에서 보는 하나님의 구원은 너무 어리석고 말도 안 되는 사건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이런 모양으로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지혜의 말로 설득시키서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지식으로 이해하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생명도 아끼지 아니하신 그리스도의 이 놀라운 사랑을 받아들임으로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사실을 가리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갈2:20)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생명은 유대인들처럼 표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헬라인들 처럼 지혜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하신 그분의 사랑을 우리의 심령에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세상의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도 없으며, 세상의 눈높이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는 사건입니다.    

     

5. 우리가 성탄절을 통해서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나를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내 죗값을 치루기 위해서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만에 부활 승천하셨고, 지금은 성령으로 오셔서 변함없이 날 사랑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나와 동행하시며 목자가 되어 주셨다는 이것입니다.

문제는 지금 내 안에 참된 기쁨, 곧 이 십자가 복음을 처음 들을 때처럼 아직도 큰 기쁨이 남아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기쁨을 잃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과 사귐이 없을 때나, 그분의 참사랑을 의심할 때 우리 안에는 기쁨 대신이 두려움과 실망과 낙심, 그리고 불평이 쌓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죄와 세상의 유혹은 우리 안에 있는 기쁨을 몰아내고 생명의 빛을 몰아내고 어두움과 고통과 근심을 안고 살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참 기쁨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돌려 하나님의 말씀으로 향하게 만들고, 유혹에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행복과 기쁨은 물질이나 육체의 즐거움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할 때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4:6-9절에 보면, 이전에는 행복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었고 지금은 복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이 단어는 「마카리스몬」 으로, 이것은 하나님이 복되다고 선포해 주시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의 조건이 내 힘과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 참된 행복이 시작되며, 영원한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나를 너는 행복한 사람이야! 라고 선언해 주실 때 인간은 참 행복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6. 사도바울은 참 행복자를 논하면서 두 사람을 증인으로 세웠는데,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자로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던 겁쟁이 인생이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불러 주셨고,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을 믿었고, 이 믿음을 보신 하나님은 그를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롬4:3).

다윗도 제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안 해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백전백승하는 전쟁에 능한 왕이었고, 그 덕분에 셀 수도 없을 정도의 많은 금은보화가 그의 궁궐에는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인생이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흉내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위대한 일을 이루고, 국가의 죄고 지존이 되어도 그런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니, 결국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행복은커녕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비참함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롬4:7절에,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은 사람들은 복이 있" 다고 했습니다.

임금 자리에 앉았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의 아내를 빼앗아도 행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범죄의 증거를 감추려고 살인을 저질러도 안심이 되거나 마음이 편할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두려웠고 고통스러웠고 불안했지만, 그러나 다윗이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실 때였습니다.


7.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나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원하시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인간이 고통당하는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도리어 죄로 말미암은 저주와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평생을 고생하다가, 심판 날에는 죗값으로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 가야합니다.

그러나 인생이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을 받으면, 이러한 사실을 내가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면, 그때 우리 인생은 영원한 행복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은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할 참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인간의 죄는 지금도 우리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이 모든 고통과 비참함에서 영원히 건지시는 줄 믿습니다.

성탄절에 선물을 나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천사가 목동들에게 전한 복음의 이 소식은 만민이 들어야 하는 가장 기쁜 소식이며, 일본에 살고 있는 1억2천 7백만의 모든 사람들을 영원히 살릴 수 있는 가장 큰 좋은 기쁨의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이 기쁜 소식을 우리 가정에 전하고, 우리 이웃에게 전하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이 땅에는 참 평화가 임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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