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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로마서 2:17-24)
고영수 2022-01-15 추천 0 댓글 0 조회 703
[성경본문] 로마서2:17-24 개역개정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너 자신을 알라(로마서 2:17-24/2022.1.16.오전)

 

1. 바다에 떠 있는 빙산은 1/12 정도만 물 위로 드러나고 나머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그 빙산의 크기나 무게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매일 만나며 인사를 나누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여러분은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아무리 친해도 가족처럼 함께 살지 않는 이상은, 사람도 빙산처럼 겨우 1/12 정도만 그 실체를 알 뿐, 나머지 대부분은 우리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람들의 일부만 보고서 그 사람을 다 아는 것처럼 신뢰를 한다면, 자칫 잘못하다가는 사기를 당하거나 문제를 만나고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곳 쯔루하시 시장만 해도 사람을 믿었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면 그 관계가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런 인간관계가 도리어 내 인생의 걸림돌이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맞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인간의 본성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용을 보면 이 말씀은 분명 유대인을 향해서 그들의 문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말씀하고 있지만, 그런데도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의 모습에서 유대인과는 전연 상관이 없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말씀은 모든 인간들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축복을 누리면서,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2. 네 자신을 알라고 하는 이 말은, 지금으로부터 2천4-5백년 전의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한 말입니다. 그가 또 다른 말을 했는데,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지혜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네 자신을 알라는 이 말은, 결국 자신의 무능함과 어리석음을 먼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드러난 유대인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17절에 보니,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온 세상에 나라와 민족들이 많지만, 유대인은 여호와의 택하심과 그분의 언약 안에 있는 매우 특별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너희들하고는 존재 가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매우 월등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월등한 특권을 유지하고 자랑하기 위해서 그들이 지불한 대가는 무엇입니까?

율법의 말씀을 철저하게 준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스스로,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었"(20) 습니다.

유대인은 유아시절 때부터 율법을 배우고, 그 율법을 통달하는 것을 그들의 쉼과 위안으로 삼았던 사람들입니다.

율법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율법을 더욱 자랑스러워했고,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과 자신들을 늘 같은 위치에 두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이 아무리 고상하고,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아무리 뛰어나서, 이 세상을 천국처럼 만든다 해도, 결코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 즉 사람을 타락시키는 죄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정한 인간이나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육신을 입은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3. 그런데 그렇게 고상하고 잘난 유대인들, 창조주 하나님을 마치 자신들의 소유물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자랑하는 그 유대인들의 모습은 무엇이었습니까?

21절 이하에 보면, 그들은 도둑질은 죄가 된다고 남들에게 가르치는 그들이 도리어 도둑질에 간음에 우상제물까지 훔치는 파렴치한 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세상을 향해서 비난하고 정죄하는 그런 행동을 그들 스스로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읽을 때 무엇을 생각하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읽습니까?

성경 읽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남들보다 많이 빨리 읽어서 자랑하기 위합입니까?

적어도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바리새인 이야기가 나오면, 어! 이 이야기는 날 보고 하는 말씀이네!, 이런 생각으로 그 읽은 말씀을 내 생활에 적용시킬 줄 알아야 제대로 읽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중종임금 아래에서 형조참판을 하던 문근은, 혹시 자신의 잘못된 판결로 인해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늘 염려하는 가운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스스로 시험을 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집안의 닭장에서 아무도 모르게 계란 두 개를 훔쳤는데, 집안 사람들은 평소에 좀도둑질로 행실이 나쁜 계집 종을 잡아다 매질을 했고, 그녀는 무서움에 거짓 자백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보면서, 내가 10년 동안 이런 거짓 자백을 듣고 잘못 재판한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이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

이 사람들의 원한이 사무쳐서 나에게 자식이 없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판관 문근은 적어도 자신을 지혜의 눈으로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상 3장에 나오는 솔로몬의 재판에 관한 지혜는 누구나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지혜가 뛰어난 사람도 스스로에 대한 판결 능력이 없다보니, 결국에는 스스로를  죄에 빠뜨리고 나라는 분열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4. 오늘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정도면 내가 신앙생활은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면, 본문 23절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고 하는데, 내가 나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들여다 볼 수 없다면, 24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매일 나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방인으로부터 욕을 먹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자 그 목적으로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셨는데, 도리어 매일 우리는 하나님을 욕먹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13절에 보니,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죄상이 율법은 열심히 듣고 배우고 있었지만, 그 말씀을 자신들의 삶에 적용하는 일은 생각지도 못했던 바로 이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삶에 온갖 치장을 하면 그것이 믿음이요 의로운 일인 줄 착각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온갖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존감이 낮다는 것입니다. 그 낮은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명품으로 자신의 생활을 도배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인 율법을 특권이요 자랑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에 적용을 시키려 하니,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더라면 그 율법을 통해서 인간이 얼마나 무능하고 어리석고 연약한 것인지 깨닫고,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 분의 도우심을 구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는 것은 많고 행함의 능력은 없으니, 결국 그들은 위선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이중적인 삶은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5. 여러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만난 증거는 단 한가지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 즉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갈 때,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가 느낀 것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창28:16-17).

이것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출3:6).

이사야가 하나님을 뵈올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사6:5).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기에 자신을 돌아볼 줄 몰랐고, 두려움 없는 그런 삶이 속히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와 온갖 죄악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랑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특권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모든 것들이, 마침내 하나님을 욕되게 만들었고, 그리고 이스라엘은 스스로 자랑으로 여기던 그 하나님의 손에 의해 심판을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7:21절에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집 짓는 자의 비유를 들어 말씀을 듣고도 행함이 없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와 같아서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누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27) 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롬11장에서 유대인을 가리켜 참감람나무로 비유하고, 이방인을 가리켜 접붙임 당한 돌감람나무라고 하면서, 20절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21),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22) 고 하였습니다.

 

6. 인간은 죄 가운데서 나왔기 때문에 누구든지 부패하고 어리석고 연약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남을 판단하고 세상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곳에서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한 과거에 대한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사랑과 화평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불충한 삶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고, 무엇보다 연약하고 어리석은 자신을 깨닫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은혜를 먼저 구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나, 또한 죄에 대하여는 엄하게 심판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보고 판단하기 전에, 이웃을 정죄하기 전에 먼저 내 자신을 들여다 보면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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