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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말라(마태복음28:1-10)
고영수 2022-04-16 추천 0 댓글 0 조회 655
[성경본문] 마태복음28:1-10 개역개정

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두려워 말라(마태복음28:1-10/2022.4.17.오전)

 

1. 미국의 기독교 단체에서 발표한 내용으로, 2021년도에 기독교회에서 가장 많이 다룬 설교 주제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먼저 제일 많이 인용한 성경 구절을 살펴보면, 요3장16절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는 이 구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많이 다룬 설교 주제는 종말론과 부활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다음이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은혜에 관해서는 2020년에 비해서 무려 4배나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런 통계가 오늘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연약한 지상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어떤 것인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두려움과 근심에 빠져 있고,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목회자들이 종말론과 부활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지금처럼 이렇게 살고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평안도 없고 소망도 미래도 없는 세상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너나 할 것 없이 평안을 잃고 불안하게 살아가는 것이 이 시대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마음속에 공통된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그래 우리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 때문에, 돈 때문에 평안을 잃고, 미래가 너무 불투명해서 불안하고, 내 이웃 사람이 문제가 너무 많은 사람이라서 내 생활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내 인생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고, 잘못된 관계나 삶의 환경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믿음으로 살기보다는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그 죄가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그 허물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2. 연세대 명예교수인 김형석씨는 곧 102살의 생일을 맞이하며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도 나는 왜 태어났느냐고 자신에게 늘 묻는다고 했습니다.

14살에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가난과 몸에 가진 질병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지만, 교회 나가서 하나님,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건강해서 어른이 된다면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나는 예수님이 함께 계시니 버림받은 인생이 아니라는 확신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제의 식민지 시대에 신사참배 거부로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고, 태평양 전쟁에 끌려가서도, 북한의 공산 치하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믿음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분이 가슴속에 품고 있는 성경구절이 있는데,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려함"(요15:16) 이라는 이 구절이 자신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고백하기를 인생의 행복은 남을 섬기는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위해 희생을 하면 내가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고난 중에도 감사가 나오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가진 것이 없어도 그분의 은혜로 내가 행복할 수 있는데, 문제는 내가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팔이 짧아서 우리를 고난 가운데서 건져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와 불순종의 습관이, 내 고집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온갖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지만, 세상으로 인한 내 근심과 염려가 날 불안하게 만들고, 주님은 우리에게 기쁨과 감사를 주시지만, 내 고집과 교만한 마음, 그리고 욕심이 나를 고통케 하는 것입니다.

 

3. 오늘 본문의 내용을 앞에 있는 27장의 마지막 부분을 연결해서 읽어보면, 예수님을 거짓 증거로 몰아서 억지로 사형을 받게 만들고, 십자가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맛보게 했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되었음에도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에 대하여 예언하신 대로,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지만, 혹시 그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간후 부활했다는 소문을 낼까 그것이 두려웠던 것인데, 그 두려움이 현실에 일어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삼 일 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27장 15절을 보면, 그들은 돈으로 로마 병정들의 입막음을 시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신들 입맛대로 세상의 여론을 왜곡하고, 재판도 불법으로 하며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는 사람 생명까지 빼앗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일에 관한 관심보다는 예수님이 자신의 예언대로 부활하셨다는 것과 그 사실을 무덤까지 따라온 여인들이 증거하고 있다는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문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여인들을 향한 첫 인사가 너희가 "평안하냐" 는 이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미리 자신이 받으실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과 그리고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셨지만,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이 여인들도 예수님의 무덤 앞에 앉아 그분의 시신을 지키고는 있었지만, 그들도 부활에 대해서는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도리어 지금까지 믿고 의지했던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셨으니 불안하고 두려웠던 것입니다.

생전에 예수님을 뜨거운 마음으로 사모했지만, 그분의 말씀은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언약의 말씀을 붙들지 못하고 내게 하신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내 생각과 고집이 세상으로 향하는 정욕이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다윗이 가는 곳마다 승리를 얻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전쟁하지 않아도 이웃 나라들이 화친을 조건으로 많은 예물을 보내 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일로 인해 교만해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모든 승리와 축복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셨다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께 우선으로 드리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었(마6:21)기 때문입니다.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이 여인들의 믿음과 충성심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붙잡혀서 심문을 당하실 때, 모든 제자는 그분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고, 그분의 무덤에서도 떠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본문의 내용을 보면, 그런 그녀들도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상실감은 크고, 두려움도 컸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이 그녀들에게 하신 첫 말씀이 평안하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결혼하고 살다보면 간혹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심한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의심은 살인까지 불러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으면 안심할 수 있는데, 그 인간을 믿지 못하니 불안하고 두렵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집트 문명을 포함해서 로마문명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신을 숭배하였고, 인간의 내세를 자기들 나름대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섬기던 사람도 함께 묻었고, 내세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함께 매장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독교 신앙의 부활에 관해서는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들은 죽은 자에 대하여 온갖 정성과 수고를 다 하면서도 실상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생명이고 영원한 소망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죽음에서 다시 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가 미래에 누릴 영원한 영광과 영원한 생명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5. 기원 64년에 시작된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로부터 313년의 콘스탄틴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할 때까지 250여 년간 기독교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황제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기독교가 로마시대에 부정적인 존재가 아니었으며, 도리어 그들의 신앙이 신실하고 온갖 박해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킬 줄 아는 그들의 모습에 놀라며 은밀하게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신뢰할만 하고 존경받는 그런 기독교를 이렇게 핍박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참 신앙이고, 그래서 다른 신은 우상으로 여기고 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것이 거대한 로마를 하나로 묶는데 있어서 정지척으로 방해가 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자기의 생명을 초개같이 던지면서 믿음을 지킬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인데, 이것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요11:25-26)라는 부활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죄가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왔고, 이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오는 온갖 좋은 것을 다 빼앗아서 갔고, 이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기 때문에, 부활 신앙을 가지지 아니하고는 어느 누구도 세상이 주는 두려움과 염려 근심과 고통에서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 싶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욥처럼 우리에게 고난이 밀려오고, 피땀 흘려 번 재물도 하루아침에 날아가고, 육신의 건강도 질병이나 사고로 무너지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도 내 품에 있는 자식도 인정사정없이 빼앗아 가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늘 슬프고 고통스럽고 허무하고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6.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평안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주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에고 하셨습니다. 평안과 안식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인생에게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사람의 힘으로는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세상이 주는 두려움과 슬픔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처럼, 오늘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잃어버렸던 평안을 회복하며, 우리 인생을 괴롭히던 고통과 두려움과 슬픔을 부활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두려움을 이길 뿐 아니라, 그 어떤 사람도 새롭게 하며, 그 어떤 저주받은 환경이나 문제에서도 넉넉히 구원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늘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눅8:50)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두려움을 몰아내고, 믿음이 염려와 근심과 고통을 물리치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줄 믿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을 무덤에서 찾으려고 하였고, 죽은 시신이라도 가까이 가면 위안이 될까 해서 무덤까지 따라왔지만, 천사는 말하기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신대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망이나 무덤이나 그 어떤 권세라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일으켜 부활의 영광을 얻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이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주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살아 역사하시고, 사랑하는 자기 백성들을 두려움과 고통에서 건져주시고 영원토록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7. 오늘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며, 어떤 환란이나 시험이나 문제가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고난 속에서도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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