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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로 새힘을 얻게하라(이사야40:28-31)
고영수 2022-04-30 추천 0 댓글 0 조회 678
[성경본문] 이사야40:28-31 개역개정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자녀로 새힘을 얻게하라(이사야40:28-31/2022.5.1.오전)

 

1.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인 1986년 4월 26일, 지금의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에서 4호기 원자력이 폭발했습니다. 그때 현장으로 달려간 소방대원들은 다량의 방사능에 피폭이 되었고, 그들은 짧은 시간에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갔습니다.

그야말로 전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현장으로 달려간 소방대원 중의 한 사람의 부인이, 죽어가는 그의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지막까지 곁에서 간호를 해 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병원 간호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는 이미 인간이 아니라 원자로와 같다. 당신도 함께 죽고 싶으냐, 라고 했다고 합니다.

소련은 그들을 매장할 때, 아연으로 된 관에 시신을 넣고, 납땜을 한 후에, 다시 콘크리트로 덮었습니다. 그 당시 소련은 이번 원자력 사고는 운전 실수로 일어난 일이라고 발표했지만, 실상은 설계과정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던 것을 소련 당국은 알고도 숨겼던 것입니다. 

그때 방사능 피폭으로 죽은 사람은 4천여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소방대원 아내의 증언에 의하면,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소련 당국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사실을 증언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벨라루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렉시예비치가 쓴 「체르노빌의 기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소련은 이런 끔찍한 재앙을 일으킨 것으로 만족을 하지 못했는지, 이번에는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제 뜻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으니, 서방세계가 계속해서 이 전쟁에 관여를 하면 이제는 핵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2. 이번에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보면서 어느 국가이든지 유사시에 자국을 지원해 주는 동맹국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에 따라 국가의 명암이 갈린다는 사실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나토 가맹국은 아니지만, 미국의 도움으로 나토 가맹국들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동맹국이 아닌데도 우크라이나가 많은 나라의 도움을 받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국민이 도망가거나 숨지 않고 대적으로부터 국가를 방위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먼저 목숨을 걸고 국가와 내 가정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자신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없는 나라와 민족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지구촌은 다방면으로 전환기에 들어서면서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변화가 긍정적인 면으로 새로워지는 것이라면 당연히 인내하면서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겠지만, 주어진 상황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밝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 가정의 달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처한 형편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며,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 그래서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이란 어떤 것이고, 그런 가정과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금 우리를 향해, 특히 우리의 자녀들을 향해서 밀려오고 있는 물결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초대형적인 규모의 환란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전쟁과 전염병, 환경의 변화, 극심한 빈부격차며 지진이나 종말에 일어나는 각종 재앙입니다. 

둘째는 도덕이나 사회질서나 법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유혹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성에 대한 존엄성의 상실과 성적인 타락, 문화 콘덴츠를 이용한 온갖 유혹과 인간성 파괴의 현상들입니다.

이런 것으로부터 우리 가정과 자녀들을 지켜내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3. 지난주에, 오사카의 수족관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영상에서 희귀한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바다표범 3마리가 물속에서 한꺼번에 붙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전문가의 해설은 이 짐승들이 현재 삼각관계라는 것입니다. 가운데 있는 수놈이 아래에 있는 암놈을 사랑하는데, 그 맨 위에는 새로운 암놈이 나타나서 절대 떨어지지 않고 그래서 한꺼번에 붙어 다닌다고 합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새를 연구하는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조류세계에도 인간들처럼 가족이나 새끼를 모른채 하고 바깥에 나가 바람이나 피우고 가족을 나 몰라라 하는 그런 나쁜 엄마 새, 나쁜 아빠 새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제 새끼를 위해 생명까지 희생하는 좋은 새들도 많이 있습니다.

동물들이 못된 짓을 하고 돌아다니고 새들이 가정을 돌보지 않아도 그것을 놓고 비판할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만물의 영장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하고 태어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도덕관이나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이 사람의 탈선을 막아줄 뿐 아니라, 사회에 나가면 그곳에는 법과 질서가 있어서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가정이 잘못되거나 그 가정에서 문제 있는 사람이 사회로 나오게 되면, 사회는 이런 사람들로 인해서 병들고 혼란스럽고 고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좋은 가정에서 양육받은 귀한 인격과 신앙을 가진 사람이 사회로 나오면, 세상은 그 사람으로 인해 치유되고 회복이 되고,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복된 세상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4.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그렇고 사람들이 보기에도 아름답고 좋은 가정을 원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이라는 것도 식구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이다 보니, 매일 매일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나 분쟁으로 인해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아름답고 복된 가정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28절을 보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 는 분이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전능자 하나님이시고,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내용을 묵상해 보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관심이 많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답이 29절에 나오는데, 인생은 삶에 지쳐 있으며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무능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문제라는 것이 돈이 많아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다른 용기나 힘으로나 지식이나 사람들의 도움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욕심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고 그 죄로 인해서 인간은 영원히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그 어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내가 도와주겠다는 것인데,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 해 주신다고 하였으니,

급변하고 험악해지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도무지 살아갈 수 없습니다.

 

4. 본문의 내용을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앗수르의 손에 멸망한 북왕국 이스라엘과 아직 남아 있는 유다왕국이 당하고 있는 참상을 다 목격하고 경험한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전 생애는 앗수르의 침략으로 어려운 시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예루살렘을 제외한 전 국토가 그들의 손에 멸망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온 백성들은 절망감과 무력감에 신앙의 정체성을 잃고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도, 이사야 선지자의 기도와 히스기야 왕에게 조언해줌으로 멸망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사야 36-37장을 보면, 앗수르의 산헤립이 온 유다를 다쳐서 멸하고 마지막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키려고 공격했지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하룻밤 사이에 185,000의 군대를 물리쳤고, 산헤립도 패배하여 돌아가자 그의 아들들 손에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사37:36-38,).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유다였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해 주셨고, 선지자와 왕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대신 싸워 승리를 얻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런 문제를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승리를 얻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못 하실 일이 없으시고 못 이루실 일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연약한 인생을 도와주시고 망해가는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도록 함께 하시기를 원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31절에 보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 라는 것입니다.

인생이 어려운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을 앙망하면 하나님이 승리의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앙망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와라고 하는데, 이것은 기대하거나 간절한 마음으로 도움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앙망하라, 나를 바라보고 도움을 구하며 구원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5. 그러나 고난에 빠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의 사랑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선민이라고 하면서 왜 하나님은 우리에 대하여 이토록 무능하신 분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우리는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7절에 보니,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조그만 어려운 일을 만나면 생각하기를 왜 나만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느냐, 왜 하나님은 내 사정을 알아주지 않느냐고 불평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6-8절을 보면, 인생은 너나 할 것 없이 들의 풀같고 이슬과 같아서 누구나 스러지고 누구나 무너지고, 이제는 다 망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럴 때, 우리가 누구에게 소망을 두며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 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너진 자리에서 소망 없는 고통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고 그곳을 벗어나려면, 히스기야 임금처럼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분에게 유일한 소망을 두고 부르짖으며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내 형편을 알아주지 못하고, 알 능력도 없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잘 알고 계시며, 어디에서 시작해야 우리 인생의 문제가 풀리는지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의 미래를 흔들림 없이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분의 능력과 주권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6.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치고 무능한 존재라고 해도 여호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나아간다면,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비결이 있다면 첫째는 가정에 대한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결정하고 내가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가장이 되시고 나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가정이 세상의 유혹과 죄의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위로부터 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31절에 보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것은 내 문제니 내가 해결하겠다고 하면, 처음에는 잘 달려가는 것처럼 보여도 도중에 반드시 다 힘을 잃고 다 넘어집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분을 앙망하는 자는 반드시 새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새 힘을 얻고, 새로운 길이 열리며 승리와 영광을 얻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고 하였고, 그래서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가서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시84:6-7) 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하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일을 만나고, 원하지 않는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그런데도 그 길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예비하신 남다른 은혜의 순간이고 새 역사를 만들어 가는 기회가 되는 줄 믿습니다.

 

7. 지금은 시대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보니 자녀를 양육하고 가정을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대부분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고 두렵게 만드는 것들 뿐입니다.

그래서 본문 30절의 내용처럼,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쓰러" 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곤비하다는 말은, 어려운 일을 만나다 보니 힘이 다 빠져서 게으름을 피우거나 마음이 방심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업이나 직장의 일도 그렇지만, 더더욱 가정의 일은 만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의 일이라는 것이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사람을 섬기고 사람을 양육하고 사람과 화목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힘이 다 빠질 때도 있고, 분노가 올라올 때도 있고,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방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힘으로는 우리가 원하고 계획하는 그런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 수 없습니다.

내 자녀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살게 하려면, 먼저 부모님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어려움과 고난 속에 있어도 기도해야 하고 그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이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다 피곤하고 곤비하고 넘어지고 망할지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과 그 자녀들은 날마다 새 힘을 얻어 믿음으로 승리하고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칭송받고 복을 받는 그런 자녀가 되고 가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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