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 설교 자료 >
  • 주일예배 설교
종(로마서6:15-23)
고영수 2022-06-18 추천 0 댓글 0 조회 630
[성경본문] 로마서6:15-23 개역개정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종(로마서6:15-23/2022.6.19.오전)

 

1. 중국 송나라 때, 어느 부잣집의 담장이 장마비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는데, 그 집의 어린 아들이 무너진 담장을 보고 빨리 고치지 않으면 도둑이 들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웃집에 사는 노인도 이 무너진 담장을 보고 똑같은 소리를 했습니다.

문제는 그날 밤에 무너진 담장을 넘어 도둑이 들어와서 많은 재물을 훔쳐 갔습니다.

주인은 속이 상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린 아들의 말이 생각나서 내 아들이지만 선경지명이 있다고 칭찬을 하면서 아들의 충고를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웃 노인의 똑같은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 노인이 너무 수상해 보였다고 합니다.

각각 다른 사람이 나에게 똑같은 행동이나 말을 해도 어떤 사람의 말은 신뢰하고, 또 어떤 사람의 말은 의심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감이나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번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말투는 물론이고 눈빛이나 웃는 모습까지 수상하게 보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미운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신뢰가 가지 않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진리처럼 들리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사랑이 가슴에 뜨겁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아직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가리켜 인간(人間-사람인, 사이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일본에도 유학을 왔던 중국의 사상가요 혁명가로 알려진 노신(鲁迅,1881-19

36)은 이런 인간관계가 잘못된 사람을 가리켜 인간(人奸-사람인, 범할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본문에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단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종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두 종류의 부류의 종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는 죄의 종으로, 다른 하나는 의의 종, 즉 순종의 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 그렇다면, 종이란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말하는 종은 헬라어로 「둘로스」라고 하는데, 이것은 자유가 없이 그를 소유한 주인의 소유나 재산으로 취급되는 부류의 사람을 말합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인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소유주에게 완전히 예속된 사람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본문 17절에 보면,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과거는 자유인이 아니라 죄 아래 사로잡힌 죄의 종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을 그때에는 죄가 주장하고 이끄는 대로 살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의 종이란 무익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 가운데 있을 때는 즐겁고 신나는 세월을 보낼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돌아보면 고통이외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인생이 죄의 종이 된 자의 삶입니다.

이러한 죄가 인생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썩어질 육신을 위해 탐욕과 정욕의 지배 아래 놓이기 마련입니다. 이로 인해서 나타나는 비참함과 부끄러움을 그때에는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죄에 대한 자각이 없으므로 제 마음대로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성공이고 축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을 13절에 보면, 불의의 무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나를 위해 내 마음대로 사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죄와 불의에 종노릇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이라 하면 죽이고, 미워하라고 하면 미워하고 훔치고 빼앗으라고 죄가 명령하면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비참한 상태를 가리켜 사도바울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있는 죄가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다(롬7:20).

16절의 말씀처럼, 인간의 몸이란 내 안에 어떤 것이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와 용도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죄가 내 안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내 몸은 죄의 무기가 되어 죄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3.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렇게 살던 내 인생 가운데 주님이 찾아오셨고, 죄의 종노릇 하는 우리에게 먼저 구원의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내가 너의 모든 죗값을 대신 치렀으니, 이제부터는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분이 바뀐 후에 제일 먼저 찾아오는 현상이 무엇이겠습니까? 진리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만나고 보니, 우리 인생의 과거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너무 오랜 세월동안 우리가 죄를 위해서만 살다 보니, 의의 종으로 순종하며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17절에 보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 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든지 처음 행하는 것은 어렵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모범, 혹은 모델이라는 것입니다.

모범, 모델만 있으면 지식이 부족하고 행하는 것이 서툴러도 처음에는 무조건 따라서 하면 됩니다.

사도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고 말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범, 본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십자가 앞에서 마지막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것처럼, 따라서 행하면 됩니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죽음에서 부활로 나아가셨고, 이같은 순종을 통해서 거룩함과 영광을 얻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1: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교회 처음 찾아와서 신앙의 모델을 누구로 정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의 인격과 품위가 달라집니다.

 

4. 문제는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은 왜그렇습니까?

변화되는 사람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어 죄의 종이 아니라 순종함으로 의의 종이 되고 보니, 과거의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에 이 부끄러움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는 믿음의 의지가 있으므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가 쉽게 일어나지 않는 사람의 경우는 아직도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절에 보면, 너희 육신이 연약하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원어에는 이해력이 부족하거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죄는 우리에게 절대 요란하게 다가오지 않고, 은밀하게 소리도 없이, 교묘하게 찾아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만 방심하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옛사람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만들고, 그래서 또다시 죄의 종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기계처럼 정기점검이 필요한데, 말씀과 기도로 기름을 치고, 그리고 감사와 찬양으로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제가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몸의 질병은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통증을 통해 우리 몸에 이상 징후를 알려주는 것과 둘째는, 통증도 특별한 증상도 없이 소리 없이 진행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중증을 일으키는 질병이 있습니다.

통증이 있는 것은 당시에는 고통스러워도 빨리 대응해서 치료할 수 있는데, 통증도 증상도 없는 질병은 평안하게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 지내다가 예기치 못할 때, 갑자기 우리를 위기 상황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료가 어려운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정기점검이 필요한 것입니다.

 

5. 인간의 힘으로 죄의 종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받았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고 하면서, 여전히 죄에게 종된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죄가 우리를 찾아올 때는 죄에게 종노릇 함으로 우리를 영원히 멸망시키려고 찾아오지만, 주님은 그런 우리를 의의 종으로 삼아 거룩함에 이르는 영생의 열매를 맺도록 찾아오시는 줄 믿습니다.

같은 종이지만, 죄의 종이 되면 실컷 부림을 받다가 멸망의 지옥 속에 버림당하는 저주의 운명이지만, 의의 종은 22절에 보니, 그 마지막이 영생이라고 했습니다.

종이라도 차원이 다릅니다. 하는 일이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르고 마지막의 열매가 다릅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지중해 바다 위에 섬이 하나 있고 그곳에는 세이렌, 혹은 세이레네스라는 매우 아름다운 여신이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지나가는 선원들과 여행객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치명적일 정도로 청아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여기에 매혹된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는다고 합니다.

많은 영웅이 이 유혹을 이기려고 일부러 항해했지만 대부분 실패하였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성공했습니다. 이아손이라는 사람이 지혜자 켄타우로스 키론의 충고를 듣고 하프의 명연주자인 오르페우스를 데리고 그곳을 지나갈 때, 들려오는 세이레네스의 노랫소리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소리로 연주를 하게 함으로 그 배에 탄 모든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6. 이 세상은 우리 귀에 온갖 잡된 소리를 들려주어 유혹을 받게 만드는 곳입니다.

기독교를 능멸하는 반기독교 세력의 소리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잘못된 철학과 사상, 그리고 사람들의 영혼을 노략질하는 온갖 이단들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구원의 확신을 흔들어 자신들이 가는 사망의 길로 함께 끌고가려고 합니다. 이런 유혹과 잘못된 소리를 어떻게 막을 수 있습니까?

내 안에 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찬양과,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의 기쁨과 감격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을 힘차게 부르면, 내 안에 심령은 새 힘을 얻게 되고 잃은 감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의의 종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실상은 우리야말로 그분의 백성이요 그의 자녀인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아들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다 내어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종이 되어도 감사할 것이고, 그분의 자녀라면 더더욱 감사할 것이니,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백한 내용이 무었입니까?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롬14:7-8)이라는 이 고백처럼 살아갈 때, 우리는 복음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참 종이요, 생명으로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된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성경이 가르치는대로, 성령님이 인도하시는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종이 된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매일매일 십자가 복음의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기를 소원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선한 목자(요한복음10:14-15) 고영수 2022.07.02 0 586
다음글 이미 죽은 자요 또한 산자로다(로마서6:6-14) 고영수 2022.06.11 0 606

大阪中央教会 ⧧537-0023 大板市 東成區 玉淨 3-1-33 (06) 6973-5540, 6920-1569 www.chuo.co.kr / sirokita@gmail.com

Copyright © 오사카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9
  • Total60,054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