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 설교 자료 >
  • 주일예배 설교
부끄러워 하지 말라(로마서10:11-12)
고영수 2022-11-05 추천 0 댓글 0 조회 619
[성경본문] 로마서10:11-12 개역개정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부끄러워 하지 말라(로마서10:11-12/2022.11.6.오전)

 

1. 히라오 세이지(平尾誠二)는 고오베 제철회사(神戸製鉄)의 럭비팀 감독으로, 1997년에는 일본 대표팀 감독을 지냈고, 1991년의 현역시절에는 일본 럭비팀 역사상, 월드컵에서 첫 번째 승리를 안겨준 인물입니다.

어릴 때부터 럭비를 좋아해서 후시미공업고등학교(伏見工業高等学校)의 럭비팀에 들어가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이 팀은 전국대회에는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는 약한 팀이었지만, 야마구찌 감독의 훈련은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몇 달 만에 몸과 마음이 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서, 감독에게 상담했더니, 그럼 쉬어보라고 해서 팀을 이탈해서 쉬었습니다.

그러나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내가 왜 이곳에 왔으며,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며칠 후, 팀으로 복귀하자 성적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팀도 함께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년 만에 전국대회에서 8강에 들어갔고, 그다음 해에는 주장이 되어 전국대회에 나가서 우승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성장과 함께 팀에게 이런 결과를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야마구찌 감독의 힘이 컸다고 합니다.

야마구찌 감독은 선수들에게 사람의 힘에 대해서 자주 말했다고 합니다.

팀이 최강자가 되었을 때, 시합을 하다 보면, 전반전에 이미 상대 팀보다 40~50점을 앞서가다 보니, 방심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게 되자, 하프타임인 쉬는 시간에 감독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지금 장난질하고 있느냐고 하면서, 인간의 힘이란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더 이상 그 힘이 성장하지 않지만, 남김이 없이 힘을 다 쓰게 되면 더 많은 힘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러나 힘을 아끼고 남기면 반대로 사람의 힘은 점점 줄어들고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평생 감독의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럭비공을 붙잡고 젖먹던 힘을 다해 앞을 향해 달려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6, 53세의 나이에 암과 투병 중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 럭비선수로 뛰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2. 이러한 인간의 힘에 관한 이야기는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도, 우리가 그 믿음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신앙도 나태하고 연약해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패배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 앞에 놓인 인생의 많은 장애물을 천사를 보내어 치워 주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 믿음을 사용해서 그 장애물을 넘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서두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제일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있는데 그것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하는 것이고, 부끄러움은 거부당하는 것, 내어 쫓김을 받을 때 일어납니다.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을 남들이 무시하고 짓밟아 버릴 때 부끄러움과 분노는 동시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부끄러움에 관한 내용을 묵상하면서 느낀 것은, 남들이 나를 짓밟아 뭉개버리고 무시하는 것보다 더 큰 부끄러움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아 누리는 구원받은 자의 은총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온갖 은혜를 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알게 모르게 스스로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이것입니다.

 

3. 사소한 행위같이 보이지만, 우리가 레스토랑에서나 대중들 앞에서 기도를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은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남들에게 나의 신앙을 감추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들어날까 두려워하고 그래서 감추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남들에게 경원시 당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손해를 당할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영적으로 엄청난 특권이고 능력이며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자랑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감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막8:38절에,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는 것입니다.

내가 내 신앙, 내 영적인 신분, 나의 믿음에 근거한 모든 행위들을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면, 예수님도 그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나는 이 사람 누군지 모릅니다, 이렇게 부인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세상에 만연하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로마서 서두에서 자신의 태도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바로 이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에 관해서는 전연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 자체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4. 그런데도, 우리가 가진 믿음과 놀라운 영적 은사와 능력들을 특권이 아니라 인생의 부담이나, 님들에게 이상한 존재로 비칠까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6:14절에 보면,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는 사실을,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다는 말은, 우리의 신분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바뀌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도 우리의 신분에 맞춰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 아래에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만일에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이, 자신의 신분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이 누리는 많은 것들을 부끄러워하고 그것을 감추려고 한다면 그 가문과 회사 경영을 상속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자랑할 줄 모르고, 누리는 풍성한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게 생각하고 십자가의 복음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비겁하게 산다면, 이런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의 기업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도리어 세상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면서 비겁하고 부끄럽게 산다면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서 누리고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25장에 보면, 주인으로부터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것을 부끄럽게 여긴 나머지 가지고 있는 한 달란트를 땅에 묻었고,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은 그를 어떻게 대우하였습니까?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고 하였습니다.

고전5:9-13절에 보면, 고린도교회 안에는 신앙생활 하면서 음행하는 자, 우상숭배자, 사기꾼, 도적놈, 술 취하는 자, 등등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어떤 태도를 취하였습니까? 10,11절에 보니 그들을 너희 가운데서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

그들과는 함께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악한 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보다, 세상 사람들과 그들이 즐기는 것들을 더 귀하게 여겼고, 하나님의 은혜를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5.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비록 연약하고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의 기도가 하늘 문을 열수 있는데 왜 부끄러워합니까?

9:31에 보면,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신" 다고 하였습니다.

왕상18장에 보면, 바알 신을 숭배하는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몸을 칼로 상해하면서 자신들의 신에게 불로 응답해 달라고 기도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는 하늘에서 불도 내리고 3년 반 동안 가물었던 이스라엘의 전 국토에 큰 비를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가장 가까이에서 귀를 기울이시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좋은 시간에 응답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끌려 다니고 그들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응답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귀한 것도 주셨습니다.

세상에 잘난 사람도 많고 크고 위대한 일도 많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 전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다른 일도 많은데 왜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을 그것도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에게 맡기셨습니까?

한 생명을 구하는 일이 천하보다 더 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6.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라면 이런 귀한 일을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

가장 사랑하는 자녀에게 맡기는 것이 너무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것은 하나님 자녀된 자의 특권이고 축복입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기드온이 미디안 연합 대군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모집한 군대의 숫자가 32,0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숫자가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300명만 남았습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전쟁 때에는 군대의 숫자가 당연히 많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숫자는 300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아무나 부르거나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충성된 일꾼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삼상14장에 보면, 요나단과 그의 병기를 잡은 자와 함께, 단 두 사람이, 사울 왕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도 해결하지 못하는 블레셋 군대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원했습니다.

온 이스라엘 군대도 하지 못한 일을 이 두 사람이 해결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그것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의 뜻을 따르려는 강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의심하는 자는 하나님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7. 복음의 핵심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의 여정을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의 고백대로 나의 나된 것은 전부 하나님의 은혜(고전15:10)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내가 소유하고 누리는 이 은혜와 축복을, 받은 사명을 부끄러워한다면, 주님도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모른다고 하실 때, 그때 우리는 어디를 가며 누구를 찾고 무엇을 따라가렵니까?

오늘 본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놀라운 약속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믿음으로 살면 절대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는 이 말씀입니다.

이것은 믿는 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시고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해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도 내가 가진 이 십자가의 복음과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이 축복과 영광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을 등지고 오직 십자가만 붙들고 나아가는 영광스러운 천국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8. 그런데 그런 우리가, 이 세상에 아부하고 그들에게 양보하고 끌려가면서, 내가 가진 믿음의 보배로운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세상천지가 다 없어져도 눈 하나 깜짝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왜나햐면 말씀 한마디로 온 천하 만물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 생명, 한 영혼이 죄 가운데 빠져서 방황하고 저주 가운데서 고통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 주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는데, 이것 위에 이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더 바란다고 부끄러운 삶을 살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짓밟는 행위를 여기서 멈추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고 구원받은 이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마음도 여기서 멈추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2:25절에,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영원한 나라 천국의 상속자가 되는 줄 믿습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생각하며 살자(빌립보서4:6-9) 고영수 2022.11.12 0 475
다음글 신앙고백(로마서10:5-10) 고영수 2022.10.29 0 461

大阪中央教会 ⧧537-0023 大板市 東成區 玉淨 3-1-33 (06) 6973-5540, 6920-1569 www.chuo.co.kr / sirokita@gmail.com

Copyright © 오사카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11
  • Total60,008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