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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며 살자(빌립보서4:6-9)
고영수 2022-11-12 추천 0 댓글 0 조회 471
[성경본문] 빌립보서4:6-9 개역개정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생각하며 살자(빌립보서4:6-9/2022.11.13.오전)

 

1. 일 년 내내 얼음으로 뒤덮인 남북극을 탐험할 때에는 사람이나 물건을 옮기기 위해서 썰매를 끄는 수십 마리의 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문제는 탐험을 끝내고 돌아올 때, 영국 사람들은 그 개들을 남김없이 총살하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그 개들을 얼음 위에 그대로 남겨놓고 제발 살아 있으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떠난다고 합니다. 몇 달 동안 함께 동거하면서 사람들을 도와주며 정들었던 그 개들을 차마 제 손으로 죽일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본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국 사람들은 매우 잔인하고 비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 사람들이 보는 일본 사람들이야말로 더 잔인하고 비정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본 사람들이 남기고 떠난 개들은 어제까지만 해도 친구처럼 가족처럼 함께 지내던 개들이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잡아먹다가 최후의 한 마리도 비참한 죽음을 맛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가 설교 서두에서 이런 실화를 가지고 나온 이유는, 인간의 삶에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항상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라는 물음표가 따라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를 살더라도 좀더 깊이 생각하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 오늘 우리들의 존재 이유가 되고 삶의 척도가 되며, 내게서 어떤 대답이 나오느냐에 따라서 나 자신의 인격과 지성과 삶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나는 왜 이런 것을 좋아하는가? 혹은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왜 쫓겨 다니면서, 또는 차별당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가?

사고가 일어났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는가? 왜 이 문제는 해결이 안되는가?

 

2. 인간의 일상생활을 돌아보면 자신을 향한 질문 투성이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통해서 사람은 지식과 경험을 쌓아가면서 성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없이 행동하고 말하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도 어느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질문하기를, 나는 누구며 인생은 무엇이냐,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 가는가, 이런 질문에 톨스토이는 답하기를,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인간 개개인의 변화와 부활의 능력에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이성을 가진 인간의 행복은 많은 물질을 소유하거나, 남들이 올라갈 수 없는 정점을 정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때 행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택한 빌립보서에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믿음을 말하면서 수도 없이 생각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사전을 보면, 성경 전체를 통해서 생각한다는 단어가 무려 240번 정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짧은 빌립보서는 직접 확인해 보니 생각이라는 단어가 11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생각이라는 단어와 관련된 마음이라든가 또 다른 단어까지 확인한다면 엄청난 숫자에 이를 것입니다. 그만큼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좀 생각하며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뿐이지만, 실상은 생각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3.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습관이나 생각하는 훈련을 거치지 않고는 결코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습관적인 신앙생활처럼 진부하고 고통스러운 종교생활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곳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이 세상을 보고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 어떤 성도가 얼마 전에 당한 그 어려운 일을 최근에 또다시 반복하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때 생각을 조금 더 깊이 했더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면밀하게 들여다보았더라면 결코 지금의 고통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잘못된 결정도 내리지 않았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 유혹을 이기고 대적을 이기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서 은혜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8절에 "이것들을 생각하라" 는 이 생각은, 여기다, 추정하다, 계산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 생명의 말씀을 깨닫고 그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 그것이 내 인생에 힘이 되려면 더 많이, 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각은 그 마음과 인격을 하나님께로 집중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4. 그래서 사도바울은 히3:1절에서,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자, 즉 완벽한 구원을 이미 얻은 자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깊이 묵상하고 또 생각하고 의지적으로 그의 뜻을 받들지 않으면, 그분과의 온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니엘기도회의 간증자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인생에 감당하기 어려운 광야 시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인생의 문제 속에서 방황하다가 주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교회를 핍박하는 사울을 만나시고 그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26:14) 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지 대적하는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사울에게 남다른 열심은 있었지만, 그의 생각이 너무 짧고 단순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외면하고 자기 생각에 갇혀서 살다 보니, 열심을 내면 낼수록 마치 짐승을 길들이기 위해 주인이 사용하는 쇠로되 가시가 달린 채찍을 제 발로 차면서 자신을 상처 내는 것처럼 그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신앙생활 하면서 기쁨도 감사도 없이 연기만 피우는 부지깽이처럼 되는 것입니다.

 

5. 그런데 우리는 늘 내가 믿음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여기에 대해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고 조금만 묵상한다면, 나와 내가 처한 현실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불신앙 속에 빠져 있고, 그래서 내 인생은 매우 작은 일에도 흔들리고,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혼란 가운데 빠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근심과 염려와 불안의 옷을 입고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낙심과 한숨으로 보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을 통해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결코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서두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어떻게 인사하고 있습니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살으셨습니까? 산상수훈에서도 염려하지 말라(6:25-28) 고 하였는데 말씀대로 염려 없이 감사하면서 찬송하면서 기쁨으로 살았습니까?

7절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감정의 색깔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6. 문제에 빠져 불신앙으로 흔들리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친저라고 지혜로운 말로 권면을 해도, 한 번 잘못된 생각에 빠진 사람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6절에 보니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는 이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도 해보았지만 다 소용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배 전에 찬양에 열심을 내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경배와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머문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알고 느끼기 위함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가 올리는 기도와 간구는 생각의 벽을 뚫고 잘못된 감정을 넘어서 하나님 보좌를 향해 거침없이 올라가는 줄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할 수 없는 환경과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의문이나 불평이나 분노의 감정을 버리고 찬양과 감사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내가 얻고자 하고 원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 예수 그리스도는 날 위해 대신 죽으셨구나, 그래서 나같이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구나, 그래서 지금 내가 나아가는 길은 영원한 영생과 영광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생각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절망에 몸부림친다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 형편이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하나님이 내 분풀이로 응답하신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이런 것은 세상 사람들이나 우상숭배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요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면,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현실에 빠졌다면, 제일 먼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며, 그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체험할 때, 우리는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7. 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라고 합니까?

눈만 뜨면 인생의 문제들이 줄을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왜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까?

7절에 보니,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문제 속에서도 안심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고 의심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생각과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고 분노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말씀을 펴고 그 속에서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한다면, 우리는 그 어떤 환란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고, 기쁨의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부터 우리가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 행동에 대해서도, 내 신앙심에 대해서도, 내 삶의 주어진 환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지금 내가 내려야 하는 어던 결단을 놓고 좀더 기도하고 좀더 말씀을 묵상한 후에 결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잘못된 생각과 잘못된 행동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오고 좋지 않은 결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윗을 통해서 그런 사실에 대하여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고후10:5절에 보면,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인간의 모든 생각을 하나님이 다 무너뜨리실 뿐 아니라, 생각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막고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8. 최근에 나도는 말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 사람은 깊이 생각하고 난 후에 달려가고, 중국인은 일단 뛰고 나서 생각하고,

미국 사람은 생각하면서 뛰지만, 한국 사람은 뛰어가다가 다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네 편 내 편만 있고, 찬성과 반대만 있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아이큐와 판단력은 물고기의 수준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관리하는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시고, 그 가운데서 우리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깊은 생각이 없이는 복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고 생각의 깊이를 더해간다면, 우리의 신앙과 삶은 그 누구도 흔들 수 없으며, 그래서 우리는 환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향해 감사가 있고, 기쁨의 찬양으로 우리 삶을 채울 수 있습니다.

예수를 깊이 묵상하고,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의 삶에서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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