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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신앙(마가복음16:14-20)
고영수 2023-04-08 추천 0 댓글 0 조회 234
[성경본문] 마가복음16:14-20 개역개정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부활의 신앙(마가복음16:14-20/2023.4.9.부활절)

 

1. 빅톨 에미 프랑클(Viktor Emil Frankl)1905년 오스트리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정신과 의사로 일하다가 독일의 나치스에 의해 온 가족이 살해 당했고, 수용소에 혼자 남은 본인도 언제 가스실로 끌려 갈지 알지 못하는 그런 상황에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차례차례로 목숨을 잃었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낙관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언제 며칟날에 미군이 와서 구출해 줄 것이라고 소문이 돌면, 모두가 그날을 간절히 기다리다가 그날이 되어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실망한 나머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쓰러져 죽어 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수용소 안에서 자신의 작은 실수로 인해 문제가 생겨서 나치 장교에게 불려가서 있는 힘껏 뺨을 맞아 안경이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났을 때, 그는 그 파편을 주우면서 생각했다고 합니다.

만일 내가 여기서 살아나가서 책을 쓰게 된다면, 이 깨어진 안경을 표지로 삼아야 겠다고.

실제로 수용소를 나와 쓴 첫 번째 책 표지에는 그때 깨어진 안경을 그림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고열로 신음할 때에도, 의사인 본인이 누구보다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알았기 때문에, 내가 오늘 밤에 잠들면 내일 아침에는 시체가 되어 나갈 것이라는 생각에 밤잠을 자지 않으려고 자기 다리를 꼬집고 비틀면서, 머릿속에는 내가 미군에게 구출되면, 윈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정신의학자로서 수용소의 이 체험을 책으로 출판할 것을 궁리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은 세계적으로 베스트 셀러가 되었는데, 그 내용은 수용소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은 유대인으로서의 증오심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심리학자며 의사로서 인간의 정신상태를 진지하게 관찰하고 분석한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떤 환경이나 어떤 조건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내게 일어난 일들을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곳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고난 속에서 내일을 설계하고 준비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2. 고전15:17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 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오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는데, 그 십자가 후의 부활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이나 소망이 헛것이고 아무것도 아니며, 온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이고 사건입니다. 부활에 관한 현장은 남아 있고, 수많은 증인이 있고, 확실한 증거는 지금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구원받는 사람들을 통해서 계속 세상 가운데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본문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이 부활의 사건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들의 불신앙과 그들의 완악한 마음입니다.

그들이 이런 상황에 빠진 이유는 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것도 모르게 만들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도 없이 두려움에 갇혀 살도록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예수님의 제자들이 여러 증인들의 보고를 듣고도 그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평소에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이 하신 말씀을 들려 주어도 믿지 않았습니다.

실망한 발걸음으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3. 믿음 생활에서 확신이 없으면, 기쁨은 사라지고 그야말로 종교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종교생활의 특징은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확신도 없으니 당연히 감사가 사라지고 기쁨도 사라지고, 믿음이 가져다 주는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연약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신앙을 가리켜 성경은 죄가 가져다 주는 증상이라고 진단하고 있는데, 사도바울은 고후4:3-4절에서 말하기를,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의 행하신 일을 믿지 못하는 것은, 세상의 신, 즉 사탄이 사람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예수님은 부활하셨는데도, 이 사실을 믿지 못한 제자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이고, 부활하신 주님은 그들의 이런 모습을 보시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믿지 못하는 그들은 두려움과 근심으로 가득했고, 동산에서 열린 무덤 앞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마리아는 울고 있었습니다.

 

4. 지금 교회에 가득히 차고 넘치는 것은 성령충만이 아니라 불신앙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반복해서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통해서 확신을 가지고, 예배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간의 지식으로나 경험으로는 증명이 안 되기 때문에, 말씀과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믿음을 유지할 수 없고, 부활의 소망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다.

불신앙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성도들의 경우는 14절처럼 주님께 책망을 받습니다.

여기서 완악하다는 말은, 냉담한 것, 곧 관심을 두지 않거나 차가운 마음을 말합니다.

이런 마음을 주님이 꾸짖으셨는데, 이 단어는 책망이나 욕을 퍼붓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불신앙을 향해 달래거나 가볍게 꾸짖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마2112절 이하에서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그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둘러 엎으시면서 그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분노하신 그런 감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불신앙을 향한 주님의 감정과 행동은 성전을 정결하게 하실 때에 드러내신 것과 같은 의로운 분노였습니다.

성도들은 자신이 믿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다른 사람들과 사이에서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고, 집에 돌아가면 부지중에 가족에게도 교회를 비판하고 성도들을 비난하고 욕한다면, 자기 스스로가 전도의 문을 닫고, 가정복음화를 막아버리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앙은 내 스스로가 앞길을 막아버리는 불행한 일입니다.

 

5.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은 믿는 자들에게 무엇을 주십니까?

첫째는 15절에 보니, 부활신앙을 증거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만든 물건을 내가 쓰지 않고 다른 것을 사용한다면, 사람들은 내가 만든 물건을 불신할 것입니다. 유명한 선수나 배우들의 경우를 보면, 일류 브랜드명의 회사들이 자신들이 만든 물건을 무료로 제공하고 그것을 사용하며 자랑해 주길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일 그런 협찬을 받고서 입 다물고 있고, 물건도 숨겨 놓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십자가 복음을 믿고,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살면서 내 주위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자랑하지 않고 있으니, 우리야말로 불신앙의 사람들이요 가짜가 틀림이 없으며,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욕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고, 우리가 증거하는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며, 복음을 거부하는 자를 정죄하고 심판을 내리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내가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결국 내가 내 가족을 정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가정복음화는 믿는 자들에게 최대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6. 둘째는 증인들에게 많은 표적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책을 사주고, 운전하는 사람에게는 자동차를, 파일럿에게는 비행기를 제공하는데, 복음을 증거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10:8-10절에 보면,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 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권세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귀신이 쫓겨나가고 병든 자가 치료되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라도 가는 곳 마다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이런 사실을 믿고 세상에 나가서 부활의 증인이 되었을 때, 20절에 보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지금까지는 믿지 못해서 확신이 없었고, 그래서 전하지 못했는데, 믿고 확신이 들자 담대하게 나가서 복음을 전했더니, 주님이 약속하신 것들이 전도 현장에서 계속해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확실히 증언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본문 17-18절에서 말씀하신 역사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능력이며, 그분의 이름과 권능이 부활의 증인을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7.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셔야 했는지, 그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나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나는 왜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으며, 누가 여기까지 나를 인도해 주셨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바다에서 30년 동안 인명 구조원으로 활동하시던 분이 은퇴를 하셨는데, 친구들이 묻습니다.

지금까지 몇 명의 목숨을 구했느냐고 물었더니, 두 명이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너무 의아해하면서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했더니,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나는 사실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지만, 그 후에 고맙다고 인사한 사람은 단 두 명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두 사람만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짐승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이것이야말로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된 것은 더 큰 면류관과 영광이 있기 때문에 또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도 감사할 일이지만, 그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그의 죽음은 헛것이고, 우리의 믿음도 부끄러운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소망을 주셨고, 부활의 영광을 누리면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은 영원한 미래를 확신하게 하며,

부활의 신앙은 지금의 그 어떤 고난도 이기고 영원한 승리를 바라보게 하며,

부활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 하는 축복입니다.

제자들이 믿지 못해서 책망받는 자리에 있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서 증인의 삶을 산 것처럼, 우리도 오늘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되고, 그와 함께 누릴 영원한 부활의 영광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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