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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전쟁이다(신명기20:10-20)
고영수 2023-04-15 추천 1 댓글 0 조회 225
[성경본문] 신명기20:10-20 개역개정

10.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11. 그 성읍이 만일 화평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들에게 네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12. 만일 너와 화평하기를 거부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넘기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안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14. 너는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가축들과 성읍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너를 위하여 탈취물로 삼을 것이며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적군에게서 빼앗은 것을 먹을지니라

15.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1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18.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19. 너희가 어떤 성읍을 오랫동안 에워싸고 그 성읍을 쳐서 점령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 곳의 나무를 찍어내지 말라 이는 너희가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들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20. 다만 과목이 아닌 수목은 찍어내어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쓸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인생은 전쟁이다(신명기20:10-20/2023.4.16.오전)

 

1. 일본에는 평화바보(平和ボケ)라는 말이 있습니다. 2차대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끝나고 8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이 사라지고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느냐는 안일함에 빠져 있고, 경제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별문제 없이 잘 살았는데 당장 이 나라의 경제가 무너지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내 나라와 내 가정은 내가 지킨다는 의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들이 일본의 미래를 많이 염려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웃나라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국가의 주적인 북한이나 중공에 대한 태도가 매우 굴종적입니다. 그들의 몰상식한 태도나 전쟁 도발이며 인권문제에는 말 한마디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에 대하여 철학자 세네카는 무엇이라고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전쟁은 나쁘지만, 전쟁을 두려워하는 것은 더 나쁘다는 것입니다.

제가 전쟁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보면 매일매일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입시전쟁에 빠져 고생하고, 젊은이들은 취업 전쟁에 휘둘리고 있고, 중년에 들어선 부모님들은 생존경쟁에 빠져 허덕이고, 노인들은 무너져가는 육체와 사회적인 위치를 지키려고 매일매일 전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통해 전쟁이 없었던 시대는 없습니다. 그런데 인류가 전쟁을 위해 치룬 비용을 기록한 내용을 보면,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을 위해 쏟아 부은 비용은 국가 예산의 28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차대전에서 적군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서 쓴 비용은 21,000불이고, 2차 대전의 경우는 20만 불인데, 만일에 3차대전이 일어난다면 한 사람의 적군을 죽이는데 드는 비용은 백만불이라고 합니다. 일본엔으로 환산하면 13천만엥입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인류가 열심히 노력해서 경제며 문명이며 교육을 쌓아 올려도 결국에는 전쟁에 다 소모하고 탕진하고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신명기 7장에서 이미 말씀드린 헤렘전쟁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대적의 씨를 말리는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가나안 지경을 벗어난 곳에 있는 족속을 대상으로 전쟁을 할 때, 그들이 화평을 거부하면 남자를 다 죽이라 하였고, 16절에 가서 가나안 지경 안에 있는 대적들의 경우는 호홉이 있는 자는 하나도 살려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양보해서 생각해 봐도 너무 끔찍한 전쟁이 아닐 수 없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런 전쟁을 명령하신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은 원래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한 곳이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 지경에 있는 부족들을 멸하시기로 작정하고, 그 도구로 이스라엘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사람들을 칠 때, 그들의 생명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소유한 모든 소유물까지 다 태워 없애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나안 사람들은 그들의 지나친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민족이었고, 그래서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도 다 가증하게 보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젖과 꿀이 흐르는 살기 좋은 땅이라고 하여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포함하여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일을 행하고 있어서, 그들을 살려두면 반드시 이스라엘이 그들의 행실과 잘못된 신앙심에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도 그들처럼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손길에 심판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7:25절에 보면,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고 하였고, 그 이유는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 이라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이 우려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한 후에 그곳 남은 사람들과 탈취한 소유물로 인해 가나안 사람들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손에 멸망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세상살이만 매일 전쟁이 아니라, 우리 영혼도 매일 영적 전쟁터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영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여전히 세상 사람들처럼 불안과 두려움과 근심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24시간 공격하면서 우리 인생에 치명타를 주고, 믿음을 파괴함으로 우리 영혼을 멸망시키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도 전쟁하는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영혼이 병들고 영혼이 병들면 육체와 삶도 병들고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부분에 실패하고 말았기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소유했지만, 그 이후로 사사기 시대의 암흑과 혼란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살려면, 상당한 용기와 각오가 필요합니다.

요즘 사람들의 특징은, 선악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좋으면 선이고 내게 나쁘면 그것이 무엇이든 악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악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짓지 못하면, 무엇을 행하던지 그것은 항상 악이 되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에덴동산의 하와입니다.

하와는 분명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를 보고 어떤 반응을 나타내었습니까?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3:6).

하와는 이 나무의 열매를 보는 순간, 그것이 마귀의 유혹인줄 모르고,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준에 따라 행동함으로 선악에 대한 판단이 무너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것을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으니 하와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4. 아담과 하와는 영적인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고 악에 사로잡힌 결과가 무엇입니까? 에덴동산이라는 육신의 환경까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한 번 패하고 나니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부끄러움만 남았습니다.

죄악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나안 족속은 평화의 교섭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헤렘 전쟁만이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전염성이 너무 강하고, 우상숭배는 반드시 택한 선민인 이스라엘이라도 망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본문 18절에 무엇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까?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죄는 전염성만 강할 뿐 아니라 한 번 빠지면 그곳에서 헤어나기도 어렵습니다.

지금 한국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마약에 중학교의 여학생들까지 중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검찰이 마약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온갖 제동을 걸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어려운 영적인 환경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죄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죄는 하나님이 심판하시지만,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는 우리가 자신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영적인 싸움을 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 싸움은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과 생명을 창조주 하나님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함을 지키고 우리가 말씀에 순종함으로 불의한 자들과 경건치 못한 자들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5. 미국의 존스 홉킨스 대학에 켈리라는 신앙심이 깊은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항상 옷깃에 장미를 꽂고 다녔고, 학생들도 교수님을 본받아 옷깃에 장미를 꽂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학생들의 장미는 하루만 지나도 시들어 버리는데, 켈리 교수의 장미는 일주일이 가도 시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장미가 꽂혀있는 옷깃을 뒤집어서 옷깃 뒤에 있는 작은 물병을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면 다 아름다운 장미지만, 그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꽃의 수명이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인격이나 생활습관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그 생명과 인생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만물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인생의 주인도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에 우리 인생의 뿌리를 내리면, 어떤 전쟁에서도 우리는 승리할 것이고, 그는 우리를 영원토록 축복하시고 아름답게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살기에 편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든 것들이 질서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서로 조화를 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속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안이 하나님 중심으로 영적인 질서를 회복하면, 외부에서 어떤 시련과 문제가 들어와도 흔림들이 없이 우리 자신을 든든히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40:31).

영적 싸움의 승리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영원토록 붙들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6. 계속해서 본문 19-20절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전쟁은 마치 싸우기도 전에 이긴 전쟁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구절에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전쟁은 항상 이길 것을 전제조건으로 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전쟁을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블레셋과 거인 골리앗과 싸울 때에,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7) 고 고백하였고, 그가 입술로 고백한 대로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블레셋을 이겼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전쟁하기 전에 먼저 할 일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20:5-8절에 기록된대로, 새집을 지은 사람, 약혼한 사람, 포도원을 짓고 그 과실을 아직 먹지 못한 자, 전쟁을 겁내는 자는 다 돌려 보내는 일을 했습니다.

이런 사람 저런 핑계로 다 빼버리면 전쟁에 나가서 싸울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세상살이에서 많은 고난과 어려운 문제 속에서 어디로 나가야 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알지 못할 때,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반드시 사는 길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7. 모세가 애굽 왕궁을 떠나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생각해 보면, 애굽 궁전에서 40년 동안 배우고 자란 모세가 광야에서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많이 배우고 대단한 것을 깨우치려면 애굽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하나님은 모세를 아무것도 없는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모세 자신의 인격과 성품에 변화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이 먼저 변해야 역사는 일어납니다. 내 안이 먼저 변화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그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난과 시험을 통해서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도움을 통해 바른 길로, 구원의 길로 나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은 평생에 걸쳐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 위에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매일 영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일단,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패배하면 생명은 물론이고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제일 먼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그래서 미디안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약한 사람에게는 환경이 매우 중요 하지만,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나의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그곳에서 말씀을 먹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때, 우리 인생은 매일 매일의 전쟁터에서 승리하며, 영적 전쟁에서 영원한 승리를 얻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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