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 설교 자료 >
  • 주일예배 설교
내가 알지 못하는 죄(신명기21:1-9)
고영수 2023-04-22 추천 0 댓글 0 조회 239
[성경본문] 신명기21:1-9 개역개정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

2. 너희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은 나가서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3.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그 성읍에서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

4. 그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

5.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6.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7.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8.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9.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내가 알지 못하는 죄(신명기21:1-9/2023.4.23.오전)

 

1. 어느 날 아침, 대문을 열어보니 우리 집 앞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웬 시체가 놓여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충격의 여파로 밤잠을 잘 수 없고, 누가 집 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 소리만 나도 간이 다 떨릴 것입니다.

당분간 충격이 가라앉을 때까지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나 만나러 나가는 것도 두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공포와 충격은 그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고, 오랜 시간에 걸쳐 우울증이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경찰이 신고받고 와서 조사를 하고 살인사건으로 수사를 할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1986년부터 1991년 사이에 일어난 화성연쇄 살인 사건처럼 10여 명을 죽였는데도 범인을 잡지 못하다가 33년 만에 해결하는 경우처럼, 범인이 누구인지 모른채 미해결 사건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도, 인적 없는 곳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범인은 누구인지 모르고 잡히지도 않은 상태에서, 버려져 있는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이 살인 사건을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내용을 읽어보면, 살인 사건이라면 당연히 범인을 어떻게 특정하고 숨은 살인범을 잡아내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2. 불특정한 장소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목격자도 범인도 없는 상태에서 시체가 버려져 있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재판관들은 사건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을 찾아가서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멍에를 메지 않은 암송아지를 준비하고, 그것을 골짜기로 끌고 가서 목을 꺽고, 그 송아지 위에 성읍의 장로들이 손을 얹고 맹세를 하게 합니다.

자신들은 이 피 흘려 죽은 살인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이 사건을 목격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맹세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본문 8-9절의 말씀으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죄를 이 성읍 가운데 두지 말고 살인에 대한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찬찬히 읽어보면 앞뒤가 좀 맞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체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성읍 사람들은 이 살인죄와는 무관한데 왜 용서를 빌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9절에 보면,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을 하나님이 정직한 일로 보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라도 생각합니까?

제일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범인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해서 이 사건을 방치해 놓으면, 그 성읍 사람들에게 이 살인에 관련하여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범인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해서 살인 사건의 죄가 없어지거나 무시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살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을 죽이는 것이니, 이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9:6절에,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죄에 대한 속죄를 가장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대표로 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말씀입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 성읍의 장로들이 왜 총대를 메야 합니까?

더구나 장로들은 송아지를 끌고 가서 목을 꺾고 죽인 후에 이미 그 위에 손을 얹고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째서 죄는 우리가 짓고 그 죄의 값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져야 합니까? 이것보다 더 부조리한 일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함을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19장에 보면, 이스라엘 전체에게 큰 재앙이 임하는 사건 하나가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 사람이 첩을 얻었는데, 행음하여 행동이 문란했습니다.

아마 남편이 그녀의 부정한 행위에 대해 주의하라고 하였는지는 몰라도 기분이 나빠서 친정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4. 남편은 그녀를 데려오기 위해 처가를 찾았고, 장인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그 딸을 데리고 오는데, 베나민 족속들이 사는 기브아에 이르러 어느 노인이 그들을 집으로 들여 먹이고 재웠는데, 마침 그 동네의 불량배들이 몰려와서 레위 사람의 첩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를 끌어내어 밤새도록 희롱을 하다가 새벽에 놓아 주었는데, 노인이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어보니 그녀가 문턱에서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레위사람은 그녀의 시체를 싣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녀의 시체를 열두 조각을 낸 후, 각 이스라엘 지파에게 보내었고, 각 지파는 이런 악행을 행한 베냐민 지파에게 악행을 행한 불량배들을 심판하기 위해 그들을 내놓으라고 했지만, 그들을 감싸고 이스라엘의 요구를 거부한 결과, 베냐민 지파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해서 전쟁을 일으켰고, 광야로 도망간 600명을 제외한 베냐민 지파는 다 멸절하고 말았습니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이 생각해보니, 자신들의 행위가 지나쳤다는 것을 알고 베냐민 지파에게 평화를 선언하고 전쟁을 끝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의 한 지파가 완전히 망해버렸는데, 결국에는 각 지파들이 자신들의 딸들을 베냐민에게 내어주어서 그 지파를 살려내고 회복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흉악한 악행에 대하여 그 범죄자를 알면서도 그 죄에 대하여 처벌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찾아오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재판을 거부했고 그들은 참담한 결과를 맞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당사자인 베냐민 지파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에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 한국은 지금 좌우 진영으로 갈라서서 서로를 비난하고 물어뜯으면서 나라를 무너뜨리고 있는데, 과연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국이 기독교 국가가 맞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건 하나 일어나면 그것을 빌미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숨통을 끊어 놓으려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사건이 터지면 함께 애통하고 서로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도리어 그런 사건을 기회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있으니, 우리야말로 사사기 시대처럼 부정부패 거짓과 폭력이 난무하는 암흑 가운데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나라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범죄와 불법은 남을 공격하거나 어떤 이익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함께 회개하고 서로를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베냐민 지파처럼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한국 교회들도 다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의 문제점은, 사건이 일어나면 서로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관할이 아니면 신경도 쓰지 않을 정도로 이기주의로 가득하여 있습니다.

그래서 범죄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범죄자를 치리하는 것은 모두가 힘을 합해서 두 번 다시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범죄나 사건 사고를 통해 잘못된 이익을 추구하고 있으니 이것 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6. 10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질문을 했고, 예수님은 그 질문에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도중에 일어난 강도 사건을 말씀하셨습니다.

강도를 만나 소유를 다 빼앗기고 죽어가는 어느 유대인을 이름도 모르는 사마리아 사람 하나가 자비를 베풀어 그를 구해주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진정한 이웃이 어떤 사람들인지, 우리는 또한 이웃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자비를 들여서 강도 만난 사람을 구원하고 치료해준 이 사마리아 사람은, 원래 유대인으로부터 차별을 당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을 차별하는 유대인의 생명을 못 본 체하지 않고 구해준 것은, 단순한 선심이나 동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자세이며 윤리관에서 온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온갖 불법과 좌우로 갈라서서 싸우는 이 분쟁은, 서로가 정죄하고 공격하는 것을 멈추고 함께 회개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살다 보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들이 내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도 있고, 오히려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짐승이 올무에 걸리듯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너나없이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고 외면한다면, 국가와 민족은 물론이고 우리와 우리 자녀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선한 사마리아인에게 있어서 유대인의 위기와 고통은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도와주었습니다.

비로 이런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일 때, 우리 자녀들과 나라의 장래는 소망이 있고, 힘이 있는 것입니다.

 

7. 1:17절에 보면,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고 하였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19:17)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롭고 정직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며, 또한 선행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도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17:4)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우리에게 맡기셨고, 주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기에 우리도 그 사랑을 본받아 남을 용서하고, 위해서 중보기도를 올리는 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알지 못하는 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 나와 상관이 있으며, 특히 내 주변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죄와 허물은 우리에게 중보기도의 기회가 되고 용서의 마음을 펼칠 기회가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죄와 허물은 나와 전연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품고 있는 내 조국은 물론이고 내가 사는 이 땅을 새롭게 하는 축복과 은혜의 기회인 줄 믿습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인간의 존엄성(신명기21:10-21) 고영수 2023.05.06 0 231
다음글 인생은 전쟁이다(신명기20:10-20) 고영수 2023.04.15 1 238

大阪中央教会 ⧧537-0023 大板市 東成區 玉淨 3-1-33 (06) 6973-5540, 6920-1569 www.chuo.co.kr / sirokita@gmail.com

Copyright © 오사카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24
  • Total60,103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