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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성(신명기21:10-21)
고영수 2023-05-06 추천 0 댓글 0 조회 228
[성경본문] 신명기21:10-21 개역개정

10.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손에 넘기시므로 네가 그들을 사로잡은 후에

11. 네가 만일 그 포로 중의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연하여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

12. 그를 네 집으로 데려갈 것이요 그는 그 머리를 밀고 손톱을 베고

13. 또 포로의 의복을 벗고 네 집에 살며 그 부모를 위하여 한 달 동안 애곡한 후에 네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의 남편이 되고 그는 네 아내가 될 것이요

14. 그 후에 네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마음대로 가게 하고 결코 돈을 받고 팔지 말지라 네가 그를 욕보였은즉 종으로 여기지 말지니라

15.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16.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인간의 존엄성(신명기21:10-21/2023.5.7.오전)

 

1. 어제 어린이날 오후에 노도한또(能登半島)를 중심으로 진도6강의 지진이 일어나, 일본전국이 긴장해 있었는데, 사망 1명의 인명 피해로 끝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건물들이 파손되면서 부상당 한 사람들이나 재산상의 피해가 속히 회복되고 복구가 되기를 바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그런데 지진이 날 때마다 반복된 교훈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평상시에는 모든 건물이 다 똑같아 보이지만, 지진을 통해서 부실건물이나 노후화된 건물의 강약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한 것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부서지지만, 강한 건물은 살아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는 다 경건하고 열심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도, 환란이나 핍박이 오면, 약한 믿음은 그렇게 무너지고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집이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6:49) 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도 지진이나 자연재해를 대비하듯이, 어려움이 찾아올 때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게 서 있을 수 있도록 말씀의 거울로 자신을 지키고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집에서 이승원 감독이 만든 세자매 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제 마음에 강렬하게 일어나는 감정은 정말 전도를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인공들이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아도 전부 상처를 안고 고통하며 외롭게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인간 내면의 세계에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겨우 이 정도라면 다른 것을 강조하기 전에 먼저 병든 심령을 치료하고 영혼을 구원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특히 세 자매의 둘째 딸은 대형교회의 성가대 지휘자로 겉으로는 모범적이고 헌신적인 신앙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도 다른 불신앙의 형제들처럼 분노를 삭이면서 속이 병들고 무너지고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세 자매가 이렇게 망가진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과거 어릴 때 받은 학대와 지금은 교회의 장로가 된 부친의 이중인격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대 성도들의 모습이 정말 이렇다면, 우리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2. 지금 대한민국은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향이 너무 잘못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모두가 불행해지고 그래서 대한민국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아귀들의 지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그런 우리 모습의 아주 제한적인 일부분만을 보여 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면서, 본문의 말씀이 우리 부모님들이 자신들은 물론이고,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위한 지침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준비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세우면서, 가정에서 부모나 자녀들이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살아야 정말 복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내용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바깥에서 전쟁을 치르다가 잡혀 온 여자 포로에 관한 내용입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전쟁 포로로 잡혀온 여자는 성적인 노리개나 노예로 부리는데, 이럴때는 포로에게 인격도 생명의 존엄성도 없습니다. 그냥 짐승처럼 취급받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포로가 주인의 사랑을 받게 되면 그의 아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재물이 많은 사람은 가난하거나 힘이 없는 사람을 멸시하고, 인기 있는 사람들은 제 아래에서 심부름하는 사람들을 비하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고향이 어디냐, 학교는 어디를 나왔느냐, 아이들도 어떤 동네 무슨 아파트에서 사느냐고 묻고, 결혼하려면 재산은 어느 정도 있느냐, 부모님의 신상까지 털어서 따지길 좋아합니다.

그런데 본문 전체의 내용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딱 한 가지뿐입니다. 사랑하느냐 이것입니다. 그래서 10-14절의 내용을 보면, 주인이 전쟁 포로 노예라도 사랑한다면 더 이상 신분이나 과거를 따지지 않습니다. 전쟁 포로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랑에 어울리는 대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 포로라도 그의 아내가 되었으면, 아내된 신분에 어울리는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3. 요즘 사람들은 외모를 치중하다보니,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러다보니 사기꾼도 만나고 실수하고 온갖 잘못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을 제대로 보고 판단하려면, 이 사람이 타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보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쟁 포로를 데려다가 아내로 삼았는데, 도중에 마음이 변해서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11절에 기록된 대로 처음에는 외모에 반해서 좋아했지만, 살아보니 외모만 가지고 사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 남자가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헤어지기로 했을 때, 그녀를 돈을 받고 노예로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14절에 보니, 그녀를 욕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녀에게 큰 피해를 줬기 때문에 그냥 아무 조건 없이 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포로라도 쓰다 버리는 물건처럼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전쟁 포로라도 사랑받을 수 있으며, 인간의 권리와 주장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야말로 전쟁 포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그런데 사도바울은 과거의 우리에 대한 모습을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2:1)라고 말하면서, "그때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2:2) 고 하였고, 그래서 우리는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 대상이라고 하였습니다.

도무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는 우리였는데,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십자가로 원수 사탄을 이기시고, 부활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심으로 마귀에게 노예처럼 끌려다니던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탄의 노예와 같은 삶을 살던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며, 구원받은 자의 감격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4. 두 번째로는 본문 15-17절의 말씀으로, 이것은 상속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재산이나 돈이 조금만 있어도 남자들이 첩을 두는 것이 자랑처럼 여기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가 죽게 될 때, 재산 상속 문제로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됩니다.

본처의 자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첩의 자식에, 밖에서 데려온 자식에, 친척들까지 재산싸움에 뛰어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법이 정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미움을 받는다고 제 마음대로 대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정하신 법은 어떤 것입니까?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난 아들이나 그렇지 않은 여자에게서 난 아들이나 하나님은 권리에 있어서 다 똑같으니 태어난 순서를 따라 장자를 정하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17절에 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 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대한민국 정부가 산아제한을 실시했습니다.

그래서 구호도 둘만 낳아서 잘 기르자는 것인데, 그때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이, 다 제 먹을 가지고 태어나는 법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시대와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낍니다.

장자는 아버지의 자랑이고 가문의 상징과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조금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이 정하신 법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야곱의 열두 명의 아들 중에 장자는 루우벤었지만,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다음 순서로는 유다가 장자가 되어야 하지만, 야곱은 가장 사랑하던 아내 라헬의 아들 요셉에게 장자의 명분을 주었고, 이것 때문에 자식들이 서로 싸우고 요셉을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유다에게 장자명분이 돌아가도록 하셨고, 예수님도 유다지파를 통해 다윗왕의 혈통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비록 첩의 아들이라도 먼저 태어났으면 장자의 명분대로 두 배로 상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따라야 하고, 세상의 법 또한 지켜 나갈 때,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의 복을 누리며, 세상에서도 의로운 자로 칭송을 받을 것입니다.

 

5. 세 번째는 18절 이하에 있는 말씀으로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패역한 자식에 대한 처벌입니다.

본문에서 패역 하다는 말은, 고집이 세고 불순종하는 것으로 국가로 치면 반역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런 자식의 문제를 부모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전체가 나서서 해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녀교육은 가정의 문제만이 아니라 각자가 속한 사회 전체의 문제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식에게 훈계하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다음에는 부모가 자식을 징계하는데, 그래도 듣지 않고 소용이 없을 때는, 자식을 장로들에게 끌고 가서 처벌을 받게 하는데, 심한 경우에는 성읍 사람 모두가 그를 향하여 돌을 던져 쳐 죽이게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런 악행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죄는 전염성이 강합니다. 그 사회에서 도려내지 않으면 전체가 망가지고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국 법정에서는 나쁜 짓을 일삼고 법을 어겨도 집행유예를 내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법의 심판이 솜방망이가 된 것입니다.

법을 무시하고 나라를 무너뜨리려고 작정을 하고 달려드는데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18:9절에 보면,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 보다 나으니라" 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라도 잘못할 때에는 엄하게 책망하고 잘못의 경중에 따라 벌을 내려야 자식이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교육할 때, 이런 자세와 정신을 가지고 하면, 그 자식도 살고 그렇게 교육받은 자식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도덕이나 지식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내 생명도 귀하고 남의 생명을 더 귀하고, 내 삶이 귀한 만큼 남의 삶도 소중하고, 믿음의 공동체도 이런 사람을 통해 큰 힘을 얻는 것입니다.

 

6. 박정희 대통령 때, 동네마다 매달 1일에는 반상회를 했습니다.

친목과 상부상조를 통해 지역이 발전하도록 하며, 또 우리 동네에 간첩이 없는지 수상하고 불량한 자가 없는지 살펴보는 일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정부의 선전이나 압력이 가해지다 보니 점점 모임이 약화하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좋은 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매달 한 번씩 동네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면서 지역을 위해 일하다 보니, 얼굴을 붉힐 만한 일이 생겨도 서로 아는 사이라 참고 모른 채 하다 보니, 그야말로 이웃사촌이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의 윗층 아래층은 서로 원수 사이게 되었고,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강력범죄를 예방할 수도 없고, 사건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고 협력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교회 집사님이 집 바깥에 화분을 내어놓았더니 누군가 쥐도 새도 모르게 가져갔습니다.

요즘은 이웃 사람이라도 인사하려고 쳐다보면 쳐다본다고 시비가 붙을 판입니다.

사람 속에는 영혼이 있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합니다.

인생이 답답하고 불행하다고 술에 취한다면, 본인은 만족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고 행복하다고 말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불쌍하게 봅니다.

 

7. 십자가의 복음은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존중을 받아야 하고,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통해서 행복을 누려야 마땅한 일입니다.

누구도 이 세상에 차별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사람을 괴롭힌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파괴하거나 그 은혜를 외면하지 않는 이상,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며,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녀를 바로 키우고 사람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 사랑으로 가능합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한, 자녀에게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심히 섬기고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찾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줄 믿습니다.

사람을 존귀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면 누구라도 존귀한 자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면 가장 불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이 우리 가정에 충만하고 자녀들 위에 풍성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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