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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축복하라(신명기33:1-7)
고영수 2024-02-03 추천 0 댓글 0 조회 117
[성경본문] 신명기33:1-7 개역개정

1.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2. 그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

3.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4.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령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5. 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수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 한 때에로다

6. 르우벤은 죽지 아니하고 살기를 원하며 그 사람 수가 적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7. 유다에 대한 축복은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의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 그의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가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자녀를 축복하라(신명기33:1-7/2024.2.4.오전)

 

1. 지난 28일에, 이라크의 서부에 있는 미군 공군기지를 이슬람 무장세력이 드론을 띄워 공격함으로 40여 명의 미군 사망자와 부상자가 생겨났습니다. 정보 및 방위망이 뚫린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마침 작전을 마치고 귀환하는 미군의 드론이 도착할 시간이었고, 당연히 아군의 드론인 줄 알고 경계를 늦추다 적의 공격에 당한 것이라고 합니다.

적의 입장에서 보면 절묘한 작전 성공이었고, 미군으로 보면 뼈아픈 치명타를 입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의 드론 공격 사건은 성도들의 영적 전쟁과 너무 흡사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귀는 성도들을 24시간 감시하고 조금만 틈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속이고 공격하고 신앙의 장벽을 무너뜨려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라"(21:36)고 하셨고, 사도 베드로도 말하기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벧전5:8) 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영적인 환경의 어려움만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인의 도시 생활이란 그야말로 과거의 노예보다 더 바쁘고 피곤한 생활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가정 문제나 특히 자녀들에게 관심을 베풀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부모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내가 아무리 개인적으로 성공하고 원하는 것을 성취한다고 해도, 내 자녀가 무너지고 고통당하는 것보다 더 아프고 괴로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The Week 이라는 잡지를 보니 젊은 층의 암이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204개국의 건강데이터의 최근 자료에 의하면, 15~39세의 연령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암발병률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잘못된 식사습관과 운동부족, 그리고 환경오염 등이 그 이유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몸에 잠재하고 있는 암의 발병률을 높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되면 면역력이 약해져서 온갖 질병에 취약해진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젊은 세대가 노인들보다 더 면역력이 떨어지고 지나친 스트레스에 자녀들의 건강이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온 세상의 젊은이들에게 미래가 없다고 탄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2.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지도자 모세의 임종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은 중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 이후로 이스라엘은 늘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과 불평을 늘어놓았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는 여러 번 이스라엘이라는 믿음의 공동체에 거듭된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그때 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해 위기를 넘겨왔는데, 34장에 기록된대로, 모세는 이제 이스라엘을 떠날 수밖에 없는 시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임종에 이르게 된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그들을 위해 마지막에 한 일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차례로 열거하면서 그들을 축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이스라엘의 미래를 위해서 축복하고 있는데, 이것은 창49장에서 야곱이 그의 12자녀를 불러 모으고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을 향해 축복기도를 하는 내용과 흡사합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우리의 자녀들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믿음의 조상들이 행한 것처럼 자녀들과 그 미래를 염려하고 그들을 위해 축복을 빌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가정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축복을 빌어야 합니까?

 

3. 원래 가정이라는 것이, 특히 믿음의 가정은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축복의 동산이라는 사실입니다.

더 솔직히 표현하면, 하나님의 구속사의 중심적 역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우리들의 가정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시작도 아담의 가정을 통해 시작되었고,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세우심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을 통해서 일어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도 다윗왕의 가정을 통해서 메시아 언약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서 가정을 통하지 않고는 그 어떤 역사도 일어날 수 없으며, 가정을 통하지 않으면, 믿음도 축복도 언약도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22:17-18절에 보면,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부모가 있는 그런 가정이 그의 후손이 어떤 축복을 받으며,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는지 잘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르우벤과 유다 지파에 대한 모세의 기도가 나오는데,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이스라엘의 장자인 유다와 같은 존재로 세우고 축복해야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다는 이스라엘의 머리가 되고 으뜸이 되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유다 지파가 유다 왕국의 중심에 서서 왕을 배출하고, 나라와 민족을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그런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4. 본문 3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뿐만 아니고, 아브라함처럼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아들 독자 이삭까지 제물로 바치는 그런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부모가 믿음을 가지고 그 자녀를 믿음으로 키울 때, 그의 자녀들은 반석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워보면, 자존감이 강한 자녀와 그렇지 못한 자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하면, 그들은 어떤 상황과 문제를 만나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 되시고, 나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요 그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게리 스멜리라는 상담 심리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어릴 때 매우 엄격한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했는데, 어느 날 늦게 집에 돌아오자 화가 난 할아버지에게 회초리를 맞았고, 이로 인해서 할아버지가 미워졌습니다.

저녁 식사 준비를 마친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식사하러 내려오시라고 보냈는데, 게리는 너무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층으로 할아버지를 부르러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충격적인 상황을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침대 기둥에 기대어서 울면서 기도하고 있었고, 그것도 손자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아프게 한 것이 후회되어 하나님께 그 아픈 마음을 쏟아내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상황을 목격한 그가 받은 충격과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부모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할수록 자녀는 망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모습만 자녀들에게 보여줘도 자녀들은 백마디의 충고보다 크게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5. 이스라엘이 과거 40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많은 고난을 만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특히 언약에 있어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한 소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으셨고, 마침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자신이 이루시고자 하셨던 모든 일을 다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아는 자는,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유다는 베냐민 지파를 데리고 남왕국 유다를 세웠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에 비하면 정치, 경제, 군사 등에서 절대적인 열세에 있었음에도,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원전 933년부터 기원전 586년에 이르는 350년 동안 20명의 왕을 배출하는데, 오직 다윗 왕가에서만 왕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북왕국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죽자 여로보암 1세는 기원전 922년에 이스라엘의 10지파를 거느리고 왕국을 세웠지만, 이후 200년 동안 19명의 왕이 9개의 각각 다른 왕조에서 배출되었습니다.

빈번한 쿠데타에 이어서 종교적으로는 금송아지나 바알 신을 숭배하면서 늘 정통성에 흔들렸고, 그래서 자존감이 매우 낮은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겉으로는 강하면서도 속으로는 늘 불안한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6. 명문가 자녀들의 교육을 보면, 그들은 식사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시간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돈보다는 인간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부할 때에는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들고, 존경받는 부자로 살아가도록 어려서부터 애국심을 키운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여수룬에 왕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수룬은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대로 이스라엘을 명예로운 존재로 생각해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의로운 행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받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허물도 많고 불순종에 하나님을 진노하게 했지만,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축복하는 뜻에서 주신 이름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의로운 자입니다. 그래서 성도(聖徒)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죄와 허물이 씻음을 받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2:10)이라 하였고, 또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려 하심"(고후5:21)이라 하였습니다.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로 의로운 자가 되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로운 자가 된 우리가 지금부터 할 일은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은 죄 많은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아들을 통해 구속하시고 의로운 자로 삼으셨습니까?

 

7. 모세는 12 아들을 위해 축복하는 야곱과는 다른 모습으로, 레위 지파를 제외하고는 축복할 때 좋은 것만 기억하고 마음껏 축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논쟁하는 마음을 버리고, 시기 질투하는 감정을 버리고, 서로 축복하고 함께 기뻐하면서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우리의 죄 된 것과 부끄러운 것과 허물 된 것은 자신의 피로 다 씻어 주시고 오직 좋은 것만 기억하시고, 또한 우리의 미래를 바라보시고 축복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상대방의 좋은 것만 보고, 미래의 더 아름답게 변화된 모습만 생각하고 가까이하고 축복한다면, 이 믿음의 공동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흔들리고 내가 확신없이 행동한다면, 우리 자녀들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6:6-7의 말씀대로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한"다면,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만을 위해 싸우는 여호와의 군대가 되며, 가장 강한 주님의 용사가 될 것이며, 자자손손 전무후무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하고 매일 축복하고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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