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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종 모세(신명기34:1-12)
고영수 2024-02-24 추천 0 댓글 0 조회 87
[성경본문] 신명기34:1-12 개역개정

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11.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여호와의 종 모세(신명기34:1-12/2024.2.25.오전)

 

1. 사람들은 모세의 인생을 세 단계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처음 40년은 애굽에서 태어나 애굽의 왕자로서 살았던 삶이 있었고, 그다음 40년은 도망자의 신세로 미디안 광야에 숨어 40년 동안 양치기로 살았던 삶이 있었고, 마지막 40년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끈 지도자의 삶으로, 오늘 본문이 그의 인생 120년을 마감하는 임종의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78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도, 한 사람도 예외가 없는 공통적인 현상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남들보다 앞서거나 조금 늦게 죽음을 맞이할 뿐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이미 결정된 죽음만큼은 우리가 준비하고 맞이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마지막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찾아오는 마지막이 중요한 이유는, 그동안 살아왔던 삶이 다 드러나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사람들은 죽음이 찾아올 때, 망설이거나 두려워하거나 그 죽음을 부정하고 거부하려고 하지만, 그 누구도 찾아오는 죽음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는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이 그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나타내는 5단계의 정신적인 변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다가오는 죽음을 애써 부정하다가, 그 다음에는 분노심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후에는 죽음에 대해 이런저런 타협을 하다가, 깊은 우울증에 빠진 후에 마침내 죽음을 수용한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육체적 장애를 만나게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2. 그렇다면, 내가 오늘 밤에라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나는 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가족과 주위 사람들은 죽은 나를 두고 어떻게 평가할 것이며, 과연 인간에게 영혼이 있으며, 있다면 나는 하나님의 나라에는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오늘 우리는 인생의 임종에 대한 많은 갈등과 고민과 의문점을 모세의 임종이 기록된 본문을 통해 이런 문제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합니다.

제일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요 선지자인 모세는 인생 120년을 살면서 무엇을 남기고 갔는가 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한 민족을 40년동안 이끌며 통치를 했으니 멋진 국가를 만들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국가도 민족도, 그 어떤 문명도 만들어 내지 않았습니다.

패권 국가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쏟아붓고, 전대미문의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육지같이 건너게 한 그런 능력의 지도자였는데,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가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묘비도 무덤도 없이, 그의 공적을 기념할 만한 기념비도 유품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을 꿈꾸다가 그 꿈을 성취해 보지도 못하고 도중에 눈으로만 보고 죽었으니 실패한 지도자요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그 땅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그 하나님께 거절당하고 말았으니,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으로 보고 판단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다음 세대를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귀한 사람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본문 9절을 보면, 모세는 여호수아를 남겼고, 이스라엘은 그 여호수아를 모세처럼 생각하고 따랐고 순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가정을 심방해 보면, 자녀들이 부모를 많이 닮았습니다. 생김새며 말투며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도 닮았습니다. 그래서 세월이 가면 자녀를 낳은 부모는 가고 없어도, 그 자녀를 보면 부모를 읽을 수 있습니다.

목회자 가정에서 자녀가 목회자가 되는 일은 귀한 일입니다. 의사나 교사나 판검사는 물론이고, 일본의 경우는 장인 정신을 가지고 물건을 만들어 내는 전통이 몇 대를 이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니세라고 불리는 몇 백년 전통을 가진 사업장도 많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주목하시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가 사람들을 대할 때, 그들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며, 그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으며, 그리고 그들을 어디로 인도하고 있는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을 키우고 그 사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고, 우리의 영적인 유산으로서 모세가 여호수아를 남기듯이 믿음의 사람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람을 세우고, 목회는 사람을 남기고, 우리는 예수님을 본 받아 그 믿음의 본을 남기는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지만, 그 능력이 나를 통해 움직이도록 해야 합니다.

6:10에 보면,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고 했는데, 여기서 하늘은 하나님이시라면, 땅은 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나를 통해서 내 삶과 육체를 통해 성취되도록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4. 우리는 모세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분에 의해 부름받은 종들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나를 부르신 하나님이시고, 나를 일꾼으로 부르시고 세워주신 주님입니다.

모세가 행한 일은 너무 놀라운 일이 많았고, 그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모세를 가리켜 여호와의 종 모세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우리를 부르시고 사명자로 세워주셨고 새롭게 하시며 능력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백하기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고전15:10) 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처음에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잡아 가두고 지나치게 괴롭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로, 박해하고 괴롭히던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드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어리석은 행위를 생각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했고, 온갖 고초를 다 겪었지만, 자신은 십자가 뒤에 감추고 내가 아니라 모든 것은 주님이 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 사도바울의 순교는, 기독교의 끝이 아니라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는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죽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문 7절에 보면, 모세의 죽음은 그가 노쇠해서 어쩔 수 없이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너는 여기까지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는 여기서 멈춘 것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로부터 받은 사명이 여기까지였기 때문에 그 사명을 완수하고 떠난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에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에 떠난 것입니다.

 

5.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것도 많고, 누리지 못한 것들도 많고, 아직 육체가 건강하니 더 오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욕심입니다.

정말 복된 인생은 남의 손발을 빌리지 않고 모세처럼 건강할 때 떠나야 합니다.

예수님도 33살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 이루었다"(19:30)는 이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이 세상에 와서 해야 할 일은 이 십자가로 다 끝났으니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은 모세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이스라엘 자손들의 몫이었습니다.

세상은 나 개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받은 사명이 끝났을 때, 내가 죽어야 이 죽음을 통해서 더 많은 생명이 잉태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는 내가 죽어야 다른 사람이 살고 내가 떠나야 더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모세의 위대함은 홍해를 가르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에 있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은 자기를 믿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6. 우리 인생도 극장의 무대처럼 막이 내려올 때, 지금까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살았다면, 슬퍼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상급이 기다리는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모세에게 능력을 주셨으며, 왜 하나님은 모세를 가나안으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까? 본문 11-12절을 보면,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애굽과 온 이스라엘 앞에서 하나님의 큰 권능과 위엄을 드러내도록, 여호와만 참 하나님이시며, 온 세상을 다스리는 전능자이심을 온 세상에 드러내도록 함이었습니다.

또한, 모세에게는 가나안 땅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약속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 기자는 증거하기를,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보"(11:24-26)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신앙과 비젼, 모세의 능력이 후계자 여호수아를 통해 이어짐으로 모세의 생명은 가고 없어도 그의 믿음과 능력은 여호수아와 그 믿음의 후손들을 통해 지금 여기까지 살아 역사하는 줄 믿습니다.

 

7. 신명기를 통해 우리가 믿고 따라가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잘 알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가나안은 이방 우상숭배와 이로 인한 온갖 부도덕함으로 넘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영원히 축복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들은 구차하게 땅의 영화를 누리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했습니다.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여호와의 종 모세처럼 우리를 일본 땅까지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사명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자기 백성을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내어 주시는 분임을 증거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방 땅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말씀에 순종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가나안 보다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줄(11:40)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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