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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없는 세상(마태복음28:5-10)
고영수 2025-04-19 추천 0 댓글 0 조회 3
[성경본문] 마태복음28:5-10 개역개정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두려움이 없는 세상(마태복음28:5-10/2025.4.20.오전)

 

1. 삼하 20장에 보면, 다윗 왕 때에 베냐민 지파의 세바가 반란을 일으켰고, 왕은 아마사를 군대장관으로 임명하고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때, 아마사의 사촌 형제인 또 다른 군대장관인 요압이 아마사를 보고 반가운 척 가까이 다가가서 인사하는데, 한 손으로는 아마사의 수염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품에 숨긴 칼로 그의 뱃속 깊은 곳까지 찔렀고, 방심하고 있던 아마사는 창자가 다 흘러나와 사방이 피바다를 이룬채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이 너무 처참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시체를 가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압은 아마사를 대신해서 세바의 반란을 진압했습니다.

요압 장군은 다윗 왕의 충성된 부하였지만, 왕은 이 일을 평생 잊지 않고 있다가, 임종에 이르러서 아들 솔로몬에게 요압을 그냥 두지 말고 반드시 죗값을 물도록 하라고 했습니다(왕상2:5-6).

솔로몬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성전 안에 숨어 있던 요압 장군을 끌어내어 죽이고 말았습니다.

요압은 다윗이 나라를 세우는데 일등 공신이었지만, 왕의 뜻을 거역하고 질투심에 자기 형제를 잔인하게 죽였고, 다윗은 이 일에 대해서 심판을 내렸던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배신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제자 12명이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갔고,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기기로 약속하고, 대적자들에게 예수님을 알리기 위해 배신의 키스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한 왕조가 무너지거나, 한 민족이 멸망하는 것도 대부분 이 배신의 행위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 바로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역사요 국가와 민족은 바람 앞의 등불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인간이 가진 악하고 더러운 욕망 때문입니다.

정치가들이 정당한 방법으로는 결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짐승의 마음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대속물로 죽으셨습니다.

 

2. 우리가 살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한마디로 평안이 없는 세상입니다.

모든 사람이 평안을 잃고 살아가는 것이 이 시대의 특징입니다.

돈 때문에 평안을 잃고,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고, 잘못된 인간관계가 밤낮으로 우리를 염려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는 난까이 대지진이 임박했다고 하고, 예측할 수 없는 미국 대통령이 좌충우돌하는 통치 방식에 전 세계가 전전긍긍하고, 물가도 끝없이 올라가다 보니 삶의 질이 점점 하락하는 가운데 있고, 대한민국은 중공의 속국이나 공산화의 위험이 있다고 하면서 사방이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현상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물질이나 환경이 우리를 고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미래나 잘못된 관계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우리의 죄가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고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고통이 어디서 왔으며, 왜 낙원에서 추방을 당해야 했습니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고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가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죄가 두려움과 염려와 질병과 실패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불순종이 인류를 두려움 가운데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3.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마리아와 여인들을 만나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평안하라" 는 말씀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16:21절에 보면,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하였습니다.

17:23절에도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고 하셨고, 이 말에 제자들은 근심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도 같은 말씀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20:18-19).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 보다는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말과 경험을 더 믿었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제자들은 "허탄한 말"(24:11) 로 들었고,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도무지 믿지 아니하"(16:11)였습니다. 문제는 불신이 그들을 두렵게 만들었고, 제자들을 염려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무서워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으스스한 무덤가에서 그것도 해가 떠오르지 않은 이른 새벽에 천사를 만났으니 여인들의 가슴이 놀랄 만도 하였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예수님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말을 걸고 있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4. 제자들은 예수님을 잃어버린 슬픔으로 인하여 염려에 빠졌고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더구나 새벽같이 찾아간 예수님의 무덤은 열려 있었고, 그 안에도 시신이 사라지고 없어졌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인사가 "평안하뇨" 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보면 인생의 보람과 기쁨과 소망은 잠시뿐이고, 더 많은 순간에 평안이 없고 근심과 고통에 빠져 사는 세월이 몇 배나 길고 힘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우리 인생이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것입니까? 죄가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 죄가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왔고, 이 죄가 인간에게 오는 온갖 좋은 것을 다 빼앗아 갔고, 이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리 갈라놓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죄로 오염된 이 세상은 당장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는 세상입니다.

어느 정도 성공했다 싶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욥처럼 우리에게도 고난이 옵니다.

그래서 피땀 흘려 번 재물도 하루아침에 빼앗아 가고, 건강했던 육신이 하루아침에 질병이나 사고로 무너지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도 내 품에 있는 자식까지도 빼앗아 가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늘 슬프고 고통스럽고 허무하고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5.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평안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참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14:27절에 보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침에 사람을 만나 안녕하십니까? 혹은 오하요 고자이마스 라고 인사하는 것은 평안을 비는 것이지 결코 우리가 상대방에게 평안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평안하기를 원하는 우리의 단순한 희망 사항일 뿐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이 여인들에게 평안을 선언하신 것은 이런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구하고 공급받는 그런 불완전한 평안이 아니라, 지금부터 영원토록 빼앗길 수도 없고 취소될 수도 없고,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평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평안은 성육신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부활의 영광을 얻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온전히 공급받을 수 있는 줄 믿습니다.

 

6.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기쁨과 평안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자식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연락도 없을 때 부모는 두렵고 불안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엄마 아빠를 부르며 "나왔어", 이럴 때 지금까지 부모님들이 가졌던 온갖 잘못된 생각과 감정들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안도감과 기쁨으로 충만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에 누리는 감정도 그랬을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예수님이 살아 자신들의 눈앞에 나타나셨으니,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에 있으며, 이보다 더 놀랄만한 기쁨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불신으로 가득찬 세상이 여인들로부터,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을 빼앗아 가버리고, 죽음이 그분을 감추고 말았지만, 예수님은 그 죽음을 이기시고 제자들에게 다시 그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활의 복음을 믿는 자가 받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기쁨과 평안이 넘쳤지만, 무덤을 지키고 있던 군사들과 종교지도자들은 부활 사건으로 인해 도리어 두려움과 근심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들여서 군사들을 매수하고 헛소문을 퍼뜨린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인생에 걸림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속이는 자요.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이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7. 믿으면 안심이 되고 믿으면 감사가 나오고 믿으면 평안이 임하는데, 문제는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를 얻었습니다.

첫째는 "그가 여기 계시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망이 무덤이 그 어떤 권세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일으켜 부활의 영광을 얻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믿는 자들 가운데서 살아 역사하시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둘째는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하신 말씀대로 역사하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의 길로 나아가면 예수님처럼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9절에 기록된 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도 의심하는 자들이 있을 정도로 믿기 어려운 일을 눈으로 목격하고 음성으로 듣고 예수님의 발까지 붙들고 경배할 정도로 그들은 확실한 증거를 얻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그 어떤 두려움이나 의심이나 슬픔도 그들을 사로잡을 수 없었습니다.

 

8. 우리는 죽음을 이길 수 없고, 우리는 세상이 주는 두려움과 슬픔을 물리칠 수 없지만,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이 모든 고통과 두려움과 슬픔을 이길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어떤 사람도 새롭게 하며, 그 어떤 저주 받은 환경이나 문제에서도 넉넉히 구원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고 선언하셨으니,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약속하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부활 신앙이 없다면 그 어떤 두려움도 물리칠 수 없으며, 세상이 주는 그 어떤 고통과 슬픔도 넘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어서고, 부활 신앙을 소유하면 그 어떤 슬픔과 두려움도 극복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두려움을 물리치고, 아무리 많은 것을 잃어도 잃은 것보다 더 귀한 것을 다시 얻을 수 있으며, 그 어떤 환경과 조건도 극복하고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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