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예레미야24:5-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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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좋은 무화과(예레미야24:5-7/2026.2.15.선교헌신)
1. 부산의 세계로 교회 손현보 목사님이 정권의 탄압으로 억울하게 4~5개월 옥살이를 치르고 최근에 갑작스럽게 석방이 되었는데, 그가 출옥해서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교인들에게 믿음으로 고난을 이길 수 있다,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설교하면서, 정작 나 자신이 이런 고난을 겪으면서 불평이나 하고 원망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받은 고난을 통해 감사하게 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편하게 잘 쉬다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이런저런 글을 쓰고 미래를 계획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생명의 가치는 내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이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로 생각하면, 거기에 상응하는 가치가 내 삶을 통해 나타나고 따라오지만, 생명을 가볍게 여기면, 내 생각이나 삶의 모양도 가치 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창작물에는 타인이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만들든지 내 마음을 그곳에 쏟아부으면, 내 마음에서부터 감동이 일어나고 그것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명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믿음 생활에 온 마음을 쏟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몸과 마음과 물질을 드려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언어가 있고, 그 언어를 표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갓난아기는 울음으로 자기 의사를 표시합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힘이 약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사용하는 방법이 떼를 쓰는 것입니다.
젊은이는 가진 힘을 과시하고 돈 많은 부자는 물질로 표시합니다.
독재자는 권력의 힘으로 백성들을 찍어 눌러서 강제로 복종시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세상을 살면서 무엇을 사용하며 살았습니까?
지금도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고, 갓난아이처럼 울고 화를 내면서 살고, 세상 사람들처럼 돈이나 힘 자랑이나 하면서 살았다면, 오늘부터 바꿔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가진 지혜로 말을 하고 행동하며,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이 주신 선물인 믿음을 사용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믿음을 사용할 때, 환경과 조건은 상관없이 삶이 평안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3. 본문에는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나오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고대로부터 사용하던 포도와 올리브와 함께 삼대 농작물의 하나로, 중요한 식량자원이며 치료제였습니다.
또한 평화와 번영의 상징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2절에 보면, 극상품의 무화과 열매와 함께 상태가 너무 나빠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열매가 하나님 성전에 놓여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무화과는 이스라엘을 나타내는데, 그중에 좋은 무화과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고, 나쁜 무화과는 애굽으로 피난 간 사람들과, 유다 땅에 그냥 남아 있는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판단은 그 당시 유대 나라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메시지는 반역의 소리로 들렸고, 친애굽 정책을 앞세우던 왕과 백성들에게는 매국노적 발상이었습니다.
원래 선지자는 백성들이 듣고 싶어 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대언하였기 때문에, 그는 왕과 지도자들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에 권력과 백성들로부터 거부당하고 미움을 받았습니다.
선지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백성의 죄로 인해 너무 많은 좌절과 고통을 겪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런 환경과 조건에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레미야는 이런 고난을 통해 백성과 지도자에게 미움을 받았지만, 하나님과의 교제가 더욱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4. 지금은 시스템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믿음의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면, 위기를 만나게 되고, 그래서 잘못된 생각과 결정을 내림으로 돌이킬 수 없는 곳에 빠질 수 있습니다.
최근에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AI 시대가 도래했다고 구글 검색에서 시작해서 Chat GPT나 Jemini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인공지능(AI)에게 물어보면 되지 왜 머리 아프게 기억하느냐고 하면서, 그 결과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식 없는 정신은 근육이 없는 몸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 최초로 동계올림픽에서 17살의 최가온이 스노우 보드의 하프파이프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1, 2차 전부 경기 도중에 넘어져 크게 다쳐 전광판에는 경기 포기 사인이 나왔지만, 마지막에 마음을 바꿔 먹고 3차에 임해 최고 득점을 받아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고생하며 훈련으로 쌓아 올린 금메달을 향한 자신의 시스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5. 초등학생이 계산할 때, 8 곱하기 8은 640이라는 답이 나왔다면, 그것이 정답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것이 잘못된 답인지 어떻게 압니까?
어려서부터 반복된 학습을 통해 그것이 내 안에서 시스템화되어 있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안에 그런 기초적인 학습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것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모릅니다.
이것은 신앙의 세계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안에 여호와의 말씀이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지 못하면, 이단의 유혹에 넘어가도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기를 만나고 잘못된 상황에 빠져도 그것을 해결하거나 빠져나갈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과학이 발달하고 많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 사람들은 더 똑똑해지고 더 많은 정보를 통해 더 많고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착각입니다.
노르웨이의 어느 연구소에서 73만 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가 있는데, 20세기까지는 지역에 따라 사람들의 IQ가 3-5 정도 상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70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IQ가 성장을 멈추거나 퇴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전인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문제라고 합니다.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기계의 힘을 빌려 생활하다 보니 두뇌가 퇴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6. 결국 이 시대의 문명이라는 것은 사람을 기계에 의존하도록 만듭니다.
똑똑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AI는 사람들의 두뇌를 장악하고 있고, 인스타그램은 사람들의 도파민 중독에 빠지게 만들고, 틱톡은 집중력을 지배하고, Chat GPT나 Jemini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며,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가져오고 있기 때문에 생각은 퇴화하고 있으며, 집중력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남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을 내 안에 굳게 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굳센 믿음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펴고, 그 말씀을 내 양식으로 삼아 매일 읽고 묵상하면서 체계적인 학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7. 예레미야는 23년간(25:3) 왕을 포함한 지도자들과 백성들로부터 거부당하고 버림을 받았습니다.
아나돗에 있는 그의 친구들과 가족들로부터 배신당하고 공동체의 장애물처럼 취급당했습니다.
오죽하면 11:21절에 보면,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데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왜 악인들은 형통하고 의인들은 고난을 겪어야 하며, 23년간 눈물을 뿌리며 사역을 감당했지만 왜 유대 땅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도리어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만 고난과 멸시를 당할 뿐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며, 사람들이 볼 때도 선지자의 수고와 희생이 헛수고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되지도 않았지만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기도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은 그 기도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응답을 받는 기도는 주어진 상황을 바꾸지만,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는 기도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바꾸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기도를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8.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주인 의식을 가지고 섬기는 자리로 나아갈 때, 책임감을 느끼고 은혜를 체험하면서 내 자신이 먼저 변화됩니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성장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남들보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공략할 때 이스라엘에게 상식 밖의 명령을 내렸고, 기드온이 미디안 대군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때 항아리와 횃불로 전쟁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 어떻게 전쟁을 치를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다윗의 고백대로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7)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디 전쟁뿐이겠습니까? 인생은 다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삼상2:6-8).
이것은 예수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하였습니다.
좋은 무화과는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은 비극이고 고통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5절에서 포로된 그들을 내가 잘 보살피겠다는 말씀과, 6절에서 "내가 그들을 돌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 다는 이 언약의 말씀입니다.
이 부분을 더 쉽게 설명하면, 내 눈이 순종하는 그들을 좋게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9. 좋은 무화과는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그 길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유대 땅에 남아 마지막까지 항쟁으로 조국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이 애국자요 더 좋은 무화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포로로 끌려간 자들이 심판을 받은 사람들처럼 비참하게 보이지만, 실상 그들은 하나님께 회개하며 그분의 도우심과 은총을 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환란을 당하고 이방으로 포로가 되어도 미래가 있었고 희망이 있었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체험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생각과 고집을 꺾지 않고 말씀에 불순종하여 유대 땅에 남은 자들은 애국자처럼 보이고 지혜로운 결단을 내린 것 같아도, 그들은 스스로 재앙을 불러오며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교만한 마음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는, 둘 다 죄인이고 심판을 받아 마땅하지만, 고난의 때에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에 대해 믿고 소망을 가지느냐의 차이였습니다.
고난은 끝이 아닙니다.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다시 세우시고 심으시고 회복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뜻과 생각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하면,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승리가 되고, 바벨론의 수치가 변하여 예루살렘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사람이 좋은 무화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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