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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자는 내 아들이 되리니(요한계시록 21:6-8)
고영수 2020-05-19 추천 1 댓글 0 조회 772
[성경본문] 요한계시록21:6-8 개역개정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기는 자는 내 아들이 되리니(요한계시록 21:6-8/2016.10.30.오전)

1. 많은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믿는 자가 죽어서 들어가는 영생극락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이룰 수 없었던 꿈과 소원들을 그곳에서 다 이루며, 세상에서 누리지 못했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는 그런 곳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1장에 묘사되고 있는 천국에 대한 것도, 한 마디로 말해서 전부 이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바라보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살 때에는 가난하게 살고 그래서 불편하게 살았지만, 천국에서는 부자로 살 수 있으며, 세상에서는 힘이 없고 재주가 없다보니 눌리고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고 살았지만, 천국에 들어가면 왕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세상 보다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하늘나라를 사모하고 그곳에서 누리는 영생에 대하여 소망을 가지는 것은 귀한 일이지만, 문제는 과연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천국이 내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냐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잉태된 욕망이나 탐욕을 이루고 성취하는 세상이라면, 우리가 들어갈 천국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영광과 존귀와 기쁨을 영원히 누리면서 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천국을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묘사하는데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는 것 보다는, 예수님의 재림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나는 세상 종말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예비하셨으며, 우리는 또한 그 날들을 위해서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어진 본문에서 보면 처음에는 이기는 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나중에는 둘째 사망에 참여할 자들을 비교하면서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2. 본문 첫 부분에 보면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고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내가 생명수 생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 라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누구에게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7절에 보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고 하였는데, 여기서 이기는 자들이란  그 뒤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자들을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들된 자들 곧 하나님의 상속자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이것들이란 21장 서두에 기록된 새 예루살렘을 말하고 있으며, 또한 4절에 보니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를, 다시 말해서 사망이나 애통이나 곡하는 것이나 눈물이나 아픈 것이 없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또한 6절의 생명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생각나는 구절이 마6:33절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모든 것”이란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이 육신 때문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것을 말씀하고 있으며, 그것들을 공급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값없이 받아 누리는 이것들은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의 육체의 필요를 채워주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하늘로서 내려오는 새 하늘과 새 땅, 곧 새 예루살렘은 본질적으로 지금의 이 세상과는 전연 다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3. 그리고 8절에 가면, 둘째 사망에 참여하는 자들의 목록이 나오는데, 그것은 “두려워 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 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 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는 내용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첫째가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말씀입니다.
내세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하여 누가 무엇을 주장해도, 우리에게는 성령께서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모든 만물에는 시작이 있으면 종말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친히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 곧 알파와 오메가(헬라어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라 하심으로,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 만물에 대한 자신의 영원성과 더불어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이 되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만드심으로 존재하게 되었고, 때가되면 당신의 뜻대로 그 존재를 다 소멸하시는데, 그 가운데는 우리의 육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전연 다른 새로운 창조의 세계에서 이전 것과는 전연 다른 새로운 존재로서 영생하는 줄 믿습니다.
셋째는 요한계시록은 축복의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1: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고 하였고, 22:7절에도,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4. 인생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는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영생불사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육신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영혼은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20:12절과 22:12절에 기록된대로 인간은 누구든지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이 필요하고 천국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살아서 선을 행하던 자들은 육신의 죽음 이후에 생명의 부활을 받는데, 19:8절에 보니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살아서 악을 행하던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다시 사는데, 그것이 8절 마지막에 나오는 둘째 사망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보혈로 죄를 씻고 은혜로 구원을 받아보니, 나같은 죄인이 용서받고 구원받은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 막히고 고난 중에라도 감사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감사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죄인들이 백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 그리스도의 신부들은 옳은 행실에 대하여 상을 받게 되는데, 잘 모를 때에는 할 수 없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와 그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모든 것을 깨닫고 다 알게 되니 감사가 넘치는 감격이 되고, 그 감격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원한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우며, 우리가 받을 영광과 그 영원함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모릅니다.

5. 그러나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악을 행하던 자들은 어떻습니까?
그들도 모든 것을 깨닫고 보니 지금까지 하나님 없이 살아온 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고 잘못된 것인지, 왜 내가 진작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까 하면서 원통해서 땅을 치면서 통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알면 알수록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들은 불 못 가운데서 믿는 자들이 영광중에 받을 축복을 생각하며, 불꽃의 괴롬 중에 이 일로 인하여 더 많은 고통을 맛보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나 믿는 자들이나 이 때에는 다 소원이 성취되고 말았습니다.
신부된 그리스도인들은 신랑을 만나 영원히 복된 삶을 사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새 예루살렘 성에서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평소에 하나님 없는 삶을 원했고,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 제 마음대로 살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들의 소원대로 하나님과 단절된 존재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지옥 불에서 자신들의 소원대로 영원히 그 괴로움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완성된 새로운 세상에서 우리는 영원한 위로와 사랑을 입는 존재가 되었지만, 그들은 고통으로 완성된 심판의 세계에서 행한 대로의 값을 치루고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당하는 지금의 고통은 맛보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지금은 너무 고통스러울 때 자진하면 잠시 고통을 피해 갈 수 있지만, 그 때에는 죽음조차도 저들을 피해 갈 것입니다.
잠시 잠깐 침 삼킬 동안에도 그들은 죄의 삯을 치루는 영원한 고통에서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이 지옥에 떨어진 부자의 탄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타오르는 불꽃의 고통을 단 일초만이라도 면하고자 나사로에게 단 한 방울의 물을 구했지만 아브라함은 그것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운명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재수가 좋거나 나빠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오직 자기 자신이 믿고 행한 대로의 값을 치루는 것뿐입니다.  

6. 이 지상에서 주님의 몸 된 교회라는 존재는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나타난 분명한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란 언약과 구속의 역사 현장에서 늘 선두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해 나가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계시록에 기록된 이 모든 일들이 반드시 성취되며, 그 때가 가깝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대한민국의 대통령 머리 위에 올라앉은 여자가 국정을 농단(壟斷) 한 사건으로 나라가 혼란스럽고, 국헌을 가진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자존심이 땅바닥에 떨어졌는데, 이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사람을 믿다가 망한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인생에 대하여 말하기를 “주께서 낯을 숨기신 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홉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시104:29) 고 하였고, 그래서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시146:3-4) 고 했습니다.
백성이나 그들이 이 말씀을 깨달았더라면 이런 수치는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을 입고 지상에서 두 다리로 버티면서 살고 있는 동안에는 얼마든지 우리 인생을 돌이키거나 새롭게 할 기회가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인생의 개인적인 종말이나 주님의 재림이 임하면 아무도 돌이킬 수 없고, 삶의 현장에서 있는 그대로 그 분 앞에 나아가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7. 교회가 사람들의 눈에는 지상에서 매우 연약한 존재로 보여도 주님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교회는 자신의 피 값을 주고 산 신부와 같은 존재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그곳에 역사는 시작되고, 복음이 전파되는 그곳에 생명의 능력이 있으며, 교회가 문을 닫으면 인류의 역사도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습니다.
1517년 독일에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당시 종교타락의 극치를 이루던 천주교 교황을 향하여 95개조 달하는 반박문을 성전 문 앞에 달면서 오늘날의 형태의 개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때까지만 해도 성경은 일반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으며 열람조차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물결이 성경번역의 물살을 타면서 전 유럽으로 번져가면서 빛을 잃고 어둠에 갇혀 고통하고 있던 중세시대는 새로운 빛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문예부흥이 일어났고 억압 받던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자유가 주어졌고, 모든 사람들이 원하기만 하면 스스로 성경을 구해서 읽고 깨닫고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부 종교지도자들의 권력에 눌려 있던 중세 암흑의 시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연 결정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롬1:17절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는 바로 이 말씀을 루터가 깨닫게 됨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각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서 종교적 특권층의 사람들이 아닌  일반 사람들의 손에 들려짐으로 광명의 세계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이 선교사들을 통해 온 세계에 전파됨으로 인류는 모든 면에서 전무후무한 부흥의 역사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8. 사도요한이 살던 세상은 영지주의자들이 득세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영지주의란 지식을 가진 자라는 뜻으로 저들은 많은 영역에서 뛰어난 지식을 소유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이 아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것, 즉 지식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도 않았으며,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거나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관심을 가진 부분에 관하여서는 많은 말들을 주고받으면서 많은 글을 썼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잡담거리 정도로 여겼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발람과 이세벨, 그리고 니골라당에 대한 언급은 바로 이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본문 7절에서 이기는 자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종교개혁자 루터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빛을 잃고 방황하고 고통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생명을 주어서 많은 사람들을 둘째 사망에서 벗어나도록 하려는 사람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주님은 이곳에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사방에서 불러 모아 복음의 사명자로 삼으신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된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바로 이것은 세상의 유혹에서 자기의 믿음을 지켜 승리하는 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가 일본 땅에서 32년을 견디면서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생명수 때문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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