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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사람(마태복음5:1-3)
고영수 2020-06-10 추천 0 댓글 0 조회 106
[성경본문] 마태복음5:1-3 개역개정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제공: 대한성서공회

심령이 가난한 사람(마태복음5:1-3/2019.4.7.오전)


1.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는 고통스러운 세월이 많았습니다.
가난해서 고통스러웠고, 그 가난함도 서러운데, 우리 부모님들 이상의 세대들은 일제 36년의 억압과 강탈을 당하며 살았고, 겨우 맞은 해방 속에서 또 다시 6.25의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으면서 민족과 국토가 분단 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선교사들의 모임의 강사로 오신 은퇴하신 목사님 한 분의 설교 중에, 일제 강점기에 자신이 당하신 경험을 잠깐 이야기 하셨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와서, 집안에 있는 곡식들을 전부 강탈해 가는데, 자기들이 원하는 만큼의 양이 나오지 않으면, 숨긴 곡식을 찾는다고, 방구들을 곡괭이로 구석구석 다 파헤치고, 화장실 밑에 숨겼는지 모른다고 화장실의 똥을 전부 다 퍼서 사방에 뿌리고, 아궁이까지 다 파헤치고, 가마솥까지 구멍을 다 뚫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집을 완전히 박살을 내 놓고야 돌아가는데, 만일 숨긴 곡식이 한 줌이라도 발견되면, 엄청 두들겨 맞고, 끌려가 옥살이야 고문까지 당했다고 합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지금까지 남겨진 문서나 사진들을 통해 드러난 그들의 만행이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풀을 써는 작두로 사람 목을 자르고, 초등학생들이 한국말을 사용하면, 군도를 찬 선생이 그 칼로 학생을 때리고, 공부는 오전에만 가르치고, 오후에는 사방으로 끌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강제 노역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해방 후에 당한 짐승 같은 공산당에게 당한 전쟁과 잔학상은 직접 당해보지 않은 우리 세대의 사람들도 몸서리 칠 정도의 그런 세월들이 우리에게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가난하고, 고통스러웠으면, 한 번 잘 살아보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의 열망이 강탈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대한민국을 다시 일어나게 했습니다.
 
2. 그 덕분에 모두 열심히 노력하여, 지금은 대한민국의 경제가 세계 10 위권 안에 까지 진입할 정도로 우리는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잘 살고 보니 여유가 생겼고, 그 경제적 여유 속에 있는 우리 자화상은 문제가 많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들이 너무 배불러 있습니다.
육신은 잘 먹고 잘 살다 보니 각종 성인병으로 고통 당하고 있고, 마음은 한없이 교만해졌고, 교양도 예의도 법도 질서도 없는 상놈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것이 사람의 교만한 마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에는 공의는 물론이고 자비가 없고, 은혜가 없습니다. 전부 자기 중심입니다.
신앙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하면, 그 결국은 우상숭배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며 바로 내 문제입니다.
그런데 8복이 기록된 오늘 본문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의 모습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이 선언하신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제일 먼저 가르치신 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극도로 궁핍하게 되면, 배는 고프고, 힘은 점점 없고, 가진 것도 없으니, 결국에는 드러누워 천장만 쳐다보게 됩니다.
본문의 가난함도 우리 마음이, 우리의 심령이 너무 궁핍하고 무능하고 연약해서 아무것도 소망 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한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영적 상태가 마치 아사 직전 상태에 이른 사람처럼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능, 자신의 부족함, 자신의 영적 가난을 철저하게 인식하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소망할 수도 없는 것을 깨달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을,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눅18:13절에서 눈물로 회개하는 세리 처럼, 자신의 죄가 너무 원통하고 분하지만 이 죄를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절망감 속에서 몸부림치던 나머지, 하나님 앞에서 울며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이 세리의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울부짖음은 단 한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4.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알고, 체면 불구하고 힘 있는 자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배가 고프면 적선이라도 할 수 있지만, 심령의 가난과 영혼의 굶주림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민한 사람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공허하고 연약한 것을 자꾸만 육신의 것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최근에 일어난 한국 가수들의 마약이며 성적인 범죄행위는 결국 그 시작이 영혼의 굶주림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하면, 육신의 쾌락으로는 우리의 심령이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갖 죄를 지으면서 방황하다가 결국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심령이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세리 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서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내 마음과 인격과 심령에 자리 잡고 주인 노릇하던 이 세상과 죄의 악한 세력들을 회개함으로 몰아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품은 채로는 평안함이 없고, 죄를 감추고는 자유를 누릴 수가 없으며, 죄는 찌르는 가시와 같은 고통을 주기 때문에 바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새로워지려면 제일 먼저 지은 죄를 슬퍼하고, 그 죄가 지금까지 내 삶과 인격을 지배해왔던 것에 대하여 분한 마음으로 애통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자기 중심의 욕심과 이기적인 욕망, 잘못된 고집과 생각들을 통회 함으로 몰아내야 합니다.
이 일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4절의「애통 하는 자」의 그 애통 하는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5.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도우시고 축복하십니까?
가난하다고 무조건 도우시는 것은 아닙니다. 힘이 없고 연약하다고 무조건 도우시는 것도 아닙니다.
다윗 왕을 저주한 시므이는 가난한 사람이었지만, 그 마음이 교만했습니다.
가롯유다도 가난한 사람이었지만 욕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세상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였고, 부족함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는 평생 동안 굶주림이 있었습니다.
이 영적인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심령의 가난함이 그를 위대한 능력의 사도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그의 복 주심을 입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심령이 하나님의 은혜에 굶주려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교회 나와서 은혜를 받아도 받은 은혜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수동적인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은혜 로운 분위기, 은혜 로운 말씀, 은혜 로운 성도의 교제를 통해 잠시 은혜의 세계에 머물렀지만, 교회 문을 열고 나가면 오래 전부터 나를 지배하고 다스렸던 죄의 세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부터는 달라져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내가 살 수 없다는 각오를 가지고 이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귀한 금 덩어리도 필요 없는 사람에게는 귀찮을 뿐입니다.
그러나 배고픈 사람에게는 빵 한 조각이 금보다 귀하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굶주린 사람이 빵 한 조각을 구하듯이, 내 심령의 모든 우상과 죄의 세력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할 때, 우리는 참으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며, 그 가난한 심령 위에 주님의 은혜가 넘치는 줄 믿습니다.

6. 그 후에 오는 주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천국이 저희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선언입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천국이라면 들어가는 것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천국에 들어가는 것 정도가 아니라, 그 천국의 주인이 우리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에 들어가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 천국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 과연 이런 표현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어디서 시작하고 있습니까?
먼저 내 안에서 시작된다고 하였으니 천국은 내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고, 그렇다면 천국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바로 지금 나의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천국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원한 보장, 즉 약속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마누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국에 가보면 살고 있는 집이 보통 10억 이상 가는 맨션입니다.
문제는 그런 천문학적인 숫자의 재물을 가지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천국을 만들고 있지만, 주님이 말씀하시는 심령의 천국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한국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약속하기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런 귀하고 복 된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2년이 지났는데 어떻습니까?
천국은커녕 지금의 삶이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천국이 저희 것" 이라는 이 말씀의 「저희」는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먼저 가난해지지 아니하고는 진정한 천국은 맛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물질을 따라가면 물질의 노예가 됩니다.
명예를 추구하면 명예의 노예가 될 뿐이고, 쾌락을 추구하면 영혼과 육신이 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그의 은혜를 따라가고, 그 분의 은혜로 내 심령에 채우고자 하는 사람은 주님의 약속하신 말씀대로 천국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7. 복음서를 읽어내려 가다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얼마나 감격적인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요17장에 보면,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을 위하여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여 달라고 하시면서, 또한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6절에 보면,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제자들을 향한 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늘 서로가 싸웠고, 욕심을 내었으며 예수님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그를 버리고 도망가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자들을 향한 진심 어린 예수님의 사랑이고 마음이었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자신을 향해 욕하고 저주하며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성난 군중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면서 용서를 구하시는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21세기의 공허하고 메마른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가난하다는 의미는 바로 예수님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을 성경에 기록한 것은 우리에게 그 분의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가난해지고, 심령이 가난해질 때, 하나님의 나라는 먼저 내 안에서 부터 시작되며, 이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받을 영원한 축복인 줄 믿습니다.

8.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속도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역사상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돈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권력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돈 앞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정치 지도자인 미국 대통령도 유대인 자본 앞에는 꼼짝 못합니다.
군사적 충돌에서 시작하여 정치적 충돌, 자본의 충돌, 과학기술의 충돌 등의 배후에는 전부 세계적 자본의 충돌이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까?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우리가 인간이 추구해야 할 마땅한 가치를 버리고 스스로 돈의 노예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고기 낚시를 가는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갑니까?
고기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를 가지고 갑니다.
마찬가지로 그래서 그들은 돈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과 조건 가운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중심의 믿음입니다. 돈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하루하루를 그 분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닮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9. 슥8장에 보면 완전히 망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슥8:15)고 하시면서, 16-17절에 가서는 이제 부터 라도 좋으니 제발 사람 답게 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열 명의 이방인들이 한 사람의 유다 사람의 옷자락을 잡으면서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23) 고 애원을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의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께로 나아가면, 점점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을 닮아가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고 치료하시기 위해 우리를 축복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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