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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축복의 사람인가(창세기37:18-28)
고영수 2021-02-13 추천 1 댓글 0 조회 1477
[성경본문] 창세기37:18-28 개역개정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요셉은 축복의 사람인가(창세기37:18-28/2021.2.14.오후)


1. 국제문제 연구가인 후지이 겐키가 쓴「90%가 하류로 전락한다」는 책에 보면, 사람이 하류로 한 번 떨어지면 다시는 상승할 수 없는 참담한 양극화 현상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겨우 중간층을 유지하던 사람들 대부분이 시간이 갈수록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는 하류층으로 곤두박질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온 세상이 극심한 계급사회로 가고 있는 가운데, 저자가 특별히 강조하는 내용은, 하류의 사고방식을 따라 행동하면 하류로 전락한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결정이 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원리는 세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가는 믿음의 길에도, 영적인 세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모든 인생은 예외 없이 누구나 환경과 조건이 가져다주는 도전과 시련을 겪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시련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공에 이르는 축복의 길을 열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좌절로 끝나는 비극의 안내자가 되기도 합니다.


2. 오늘 우리는 요셉이 불과 17세의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10명의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당하며, 왜 노예로 팔려가서 온갖 억울한 일을 다 만나야 했는지 본문을 보면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당연히 주위 사람의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 마땅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 가지 위기를 만나면, 그것이 다 해결되기도 전에 더 큰 시련과 난관이 그의 인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과연 요셉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야곱의 참 아들인지, 그리고 그가 만난 위기와 고통은 무엇이며, 마침내 그가 위기를 통해 건진 놀라운 축복이 무엇인지 살펴서 오늘의 고난을 좌절과 실패로 끝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기회로 삼는 이 시대의 성공자 요셉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셉의 인생에서 처음의 걸림돌이며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하는 상황은 10명의 형들을 통해서왔습니다.

그들은 사사건건 요셉을 질투하며 시비를 걸었고,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야곱이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이고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그곳에서 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사랑해서 결혼을 했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신부가 바뀌었습니다.

이유는 삼촌 라반의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라헬을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7년의 세월을 또 인내해야 했지만, 비극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두 부인이 서로 질투하면서 자기들의 여종까지 동원해서 낳은 자식이 무려 12명이 되었습니다.


3. 배다른 형제들은 아버지의 지나친 사랑을 받는 요셉이 싫었습니다.

더구나 2절에 보면, 형들 중에서 빌하와 실바의 아들인 단, 납달리, 갓, 아셀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일러 바쳤기 때문에 상황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더구나 아버지의 품 안에서 절대적인 사랑을 입은 모습은 그들에게 눈에 가시와 같았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자주 꿈을 꾸고 나서 그 꿈을 형들에게 자랑하는데, 들어보면 10명의 형들이 11번 째 아들 요셉의 종처럼 그를 섬기는 모습으로 이야기 하니 화가 났습니다.

이런 환경은 형제들의 미움과 질투를 증폭시켰고, 그런 갈등은 가정에 큰 비극을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양을 치는 형들을 찾아 나섰다가, 형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할 위기였습니다.

20절에 보니,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볼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평소에 요셉이 말하는 꿈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고 했지만, 실제는 그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막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언니 레아의 아들들인 르우벤과 유다의 도움으로 요셉은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졌고, 마침 지나가는 상인들의 손에 팔리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정말 요셉은 형들을 잘못 만났습니다.

자신이 형들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하는 것은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형들을 감시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원망과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4.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형들의 미움에 생명의 위기를 만나고, 아무리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아도 그 사랑이 요셉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애급으로 팔려가는 길은, 배신의 길이요 생이별의 길이요 노예로 전락하는 비참한 길이요, 어린 나이에 가족을 떠나는 외롭고 슬픈 길이지만, 그 길은 도리어 애급의 총리에 오르는 길이었고, 아버지의 사랑과 재산이 아니라, 애급의 전 재산을 소유하는 절대 권력자에 이르는 길이 되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망하게 하려했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승리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원망이나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과 미래를 육체의 안목이나 세상적인 판단으로만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럴 때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

지금이 어렵다고 어려운 상황에서 모든 것을 가늠해 본다고 하면 미래는 없습니다.

어려운 만큼 말씀에 힘을 얻어서 더 큰 꿈을 키우고, 힘든 만큼 기도하면서 더 인내한다면 하나님은 요셉을 인도하신 것처럼, 이 시대에도 더 복되고 좋은 길을 우리에게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미래를 내다볼 때 믿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의인도 고난을 당하고, 죄가 없어도 억울한 일을 당하고, 기도해도 그 기도가 꽉 막힌 것처럼 응답이 없는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5. 문제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왜 성공하고, 어떻게 큰 축복을 누릴 수 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였기 때문입니다.

39:2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상황이 이해가 안되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는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이라 하였는데 왜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맛보셔야 했습니까? 그곳에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고, 그것은 아들의 구속사역을 통해서 영광 받으시려는 계획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성자 마더 테레사는, 우리가 당하는 이 고통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또한 그리스도의 입맞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해하게 되고, 그 고통 속에 내가 참여할 수 있으며, 십자가의 고통이 없이는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가리켜 「꿈꾸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형들은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듣기 싫어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미웠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은 본인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20절의 말씀대로 그를 죽여서 구덩이에 던져 넣고 악한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자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며 더 좋은 세계로 나아가게 하실 때, 평탄하고 좋은 길, 내 마음에 꼭 맞는 좋은 길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배신이며, 슬픔이며, 고통을 주시기도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상황과 삶을 강요당할 때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의 품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지만, 하나님은 아버지의 품 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축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잠시잠간의 고난을 통과하게 하신 후, 늘 꿈에 계시로 보여주신 그 뜻을 요셉의 삶에서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과 세계의 역사를 육안으로 보지 말고 믿음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좋은 곳이 있으면 계속 그곳에서 안주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창19:26절에 보면, 롯이 소돔성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머뭇거렸고, 그의 아내는 도망하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보면 이 세상에는 좋은 곳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전부 우리를 괴롭히고 슬프게 만드는 것뿐이고,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서운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 고 하셨습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인 줄 아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 한 가운데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 그들과 함께 하심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요셉을 형들의 미움만 받는 것이 아니라, 더 무서운 세상인 애급으로 보내신 것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7. 요셉이 이런 고난을 이긴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비전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7절에 보면,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고 하였는데, 42:6절에 보니 마침내 그 꿈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억울함과 고난 속에 빠졌지만, 시편23편의 고백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모든 대적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최고의 임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인내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언약을 이루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둘째는 구원받은 자로서의 신분에 대한 확신입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고 죽임의 위기 가운데 떨어졌지만, 형들을 상대로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도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39:9절에 보니,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까" 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왜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사람과의 관계나 자신의 즐거움이나 유익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크게 여겼습니다.

요셉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변호했더라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성공과 축복에 이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이 나라가 망해서 강제로 끌려간 바벨론은 고통의 장소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던 축복의 장소였던 것처럼, 요셉의 감옥 생활은 도리어 국가최고의 권력에 이르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출세의 길이었고, 하나님과 동행을 확신하는 축복의 장소였습니다.

요셉의 인생은 사람들의 사랑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더 복된 결과를 가져다준 것처럼, 오늘 우리도 요셉처럼 고난 속에서 인내하고,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확신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축복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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