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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행복한가?(고후11:24-33, 고전15:9-11)
고영수 2021-02-20 추천 0 댓글 0 조회 11
[성경본문] 고린도후서11:24-33 개역개정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인생이 행복한가?(고후11:24-33, 고전15:9-11/2021.2.21.제직분 헌신)


1. 죠지 베일런트(George E Vaillant)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교수로, 하버드대학교의 성인발달 연구(The Study of Adult Development)의 총책임자로 정신과 전문 의사입니다.

이 연구는 1937년에 시작되었고, 268명의 하버드 대학생들과 그들을 포함해서 814명의 남녀를 72년에 걸쳐 조사 했는데, 그 이유는 행복한 삶에도 수학처럼 공식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내용을 책으로 만들어 낸 것이 「행복의 조건」, 「성공적인 노화」 등입니다.

그런데 죠지 베일런트는 인간의 행복에 대하여 말하기를,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많으면 불행하고, 적으면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많은 고통 때문에 인간이 불행해 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서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면, 몸은 자동적으로 방어 태세로 전환해서 흐르는 피를 응고시켜 더 이상의 출혈을 막아 줍니다.

덕분에 과다 출혈로 인한 사망은 막을 수 있었지만, 나중에 이 응고된 피가 돌아다니다가 관상동맥을 막아 버리면 그 사람은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게 됩니다.

세상에는 처음에 좋았던 일이 나중에는 도리어 재앙이 되고 고통이 되는, 이런 일이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지금 좋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지금 나쁘다고 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생이 만나는 기쁨과 슬픔은 천 조각처럼 가로세로로 섬세하게 짜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팀이 연구 조사하는 과정에 드러난 한 가지 사실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남들보다 더 많은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이 연구팀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세계최고의 지성과 학문을 자랑하는 하버드 연구팀이 70여년을 연구해도 밝혀내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2. 오늘 이곳에 함께 모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정말 내 인생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내 인생을 돌아본다면 과연 어떤 인생이었습니까?

믿음의 조상 야곱은 그 아들 요셉을 따라 애급에 내려가서 바로 앞에 서서 하는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삽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조상에게도 고통의 세월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15: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구하는 인생의 행복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 그 분 안에서 인간의 행복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또 한 사람의 인생, 사도바울의 걸어온 삶을 보게 됩니다.

문제는 23절부터 33절까지 기록된 내용을 보면, 사도바울이 어떤 삶을 살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사인 인간의 행복을 가지고 이 본문을 대한다면, 과연 바울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까?

아마 세상 사람들이 보면, 이 인간은 저주받은 인생이요, 인생의 온갖 고통을 섭렵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23절 한 구절만 놓고 봐도, 사람이 수고를 넘치게 하면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지고, 그 삶은 엉망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여러 번 감옥에도 갔다 오고, 매 맞는 것은 이골이 난 상태요, 죽을 뻔한 일을 여러 번 당했으니 이게 어디 사람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도바울이 자기 인생을 고백한 내용을 보면, 그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는 인간입니다.


3. 교회를 핍박하던 청년 사울의 시대에는 그렇다고 해도, 예수 믿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복음을 전하면, 적어도 그 복음의 주인되신 예수님이 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과 교회를 핍박하는 바리새인의 껍질을 벗어 버리고 복음의 일꾼이 되자마자 당한 일이 무엇입니까?

33절에 보니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로 인해 창문에서 광주리를 타고 내려가 다메섹을 탈출했고, 행23:12-13절에 보면, 예루살렘에서는 40여명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사람들이 매복하자, 보병 2백 명과 기병 70명, 그리고 창병 2백 명이 그를 호위하여 가이사랴 까지 데리고 갈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냥 예수를 모르고 바리새인으로 살았으면, 종교적인 특권은 물론이고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로마 시민권에 가말리엘 문하생에, 부자 집 아들에 부족한 것이 없이 살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도 바울이 자랑하는 인생이란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나같이 연약하고 부족하고 부끄러운 죄인 중의 괴수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것입니다.

그는 인생의 장점이나 강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약하고 부끄럽고 실패하고 고난 받은 것을 자랑하고 있는 이유는, 인생이 만나는 고통이나 결핍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4. 죠지 베일런트는 행복의 조건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에 대해 경외감과 사랑과 자비의 마음, 그리고 용서하고 기쁨과 희망과 신뢰감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조선일보에 난 백영심 간호서(선교사)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간호대학에 입학해서 나는 왜 사는가? 왜 간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하고 방황하던 중, 여수의 애향원이라는 한국 최초의 나병원을 방문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손과 발이 문드러지고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그래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이런 사람들, 가장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중, 서울 어느 교회에서 케냐에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자원하여 들어갔고, 부유한 케냐를 떠나 가장 가난한 말라위로 옮긴 뒤로, 초기에 치료하면 회복될 간단한 질병도 기회를 놓쳐 중병이 되거나 목숨을 잃는 것을 보고, 내가 하나님 앞에 가진 것이라곤 이 몸뚱이 밖에 없는데 이 몸이라도 하나님께 드려야겠다고 결심하니, 1달러짜리 구호품 옷을 입고 하루에 바나나 한 개와 커피 한 잔으로 살아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인간의 행복은 바깥에서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께 무엇이라고 기도하셨습니까?

"내 아버지의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서 십자가가 없는 인생이라고 행복해지고, 십자가가 있는 인생이라고 불행해진다는 것이 아니라는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행복은 제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행복이고 기쁨이고 성공이었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고난을 당하던 욥과 그의 아내이었지만, 욥의 아내는 고난 앞에서 자기 남편을 향해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면서 도망갔지만, 욥은 내가 죽을 지언즉 마지막까지 하나님 앞에서 입술로 범죄 하지 않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똑같은 환경과 조건 속에서 똑같이 당하는 환란이었지만 욥의 부부의 생각과 태도는 달랐습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 욥의 아내의 인생이었고 그녀의 원래의 모습이었지만, 욥은 온갖 고통과 저주를 다 당해도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이곳에 그의 행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성경을 찾아보다가 시139편12절을 보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 이라는 말씀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는 내 뜻대로 되면 웃고 즐거워하고, 고통을 당하면 눈물을 흘리며 낙심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 양쪽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6. 사도바울이 고백한 것 중에 하나가,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환란 속에서도 매일처럼 당하는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그 뒤에 나타날 부활의 소망을 가슴속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죽는 사람처럼 살아도 나는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암 전문병원인 텍사스 주립대의 MD암센터의 김의신 박사는 신앙심이 암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특히 성가대원들의 면역세포는 일반인들에 비해서 천배나 많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남들보다 더 많이 감사로 찬양을 하며 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1분간 기뻐하고 감사하면, 24시간을 유지하는 면역체가 생기지만, 1분간 화를 내면 6시간 동안 이 면역체가 약화된다고 합니다.

1976년에 미국에 스탠리 텐은 사람이 사업에 큰 성공을 거둔 후, 척추암 3기를 진단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곧 죽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몇 달이 지난 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매일 하나님께 감사만 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병든 것도 감사하고 죽게 된 것도 감사하고 살려 주시면 더 감사하고, 하나님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고 하시면 살 것입니다. 무조건 감사합니다고 했더니 암세포가 점점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7. 여러분은 신앙생활이 정말 기쁜일입니까? 아니면 마지못해서 하는 일입니까?

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소유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아갈 때 참 행복을 느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해 나갈 때, 기쁨과 보람이 있고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5:11절에서 변함없이 이 복음을 전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작은 믿음의 공동체이지만, 사명 받은 성도들이 자원하여 기쁨으로 섬기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모습에서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은혜가 넘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몇 가지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말씀이 이끄는 예배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내 삶에 희생이 이끄는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목적이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그 분의 삶은 늘 감사로 넘쳤고, 십자가를 지시는 것도 본인이 스스로 원하셔서 하신 일이기 때문에, 천국에서 우리를 보실 때 마다 기쁨에 넘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도 남을 섬기면 그렇게 됩니다.

셋째, 기도가 이끄는 응답이 있어야 합니다.

허공을 맴돌다 그냥 사라져 버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좌절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응답이 있으면, 기쁨이 넘치고 또 다른 응답의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올려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를 두려워하는 순간, 우리는 성령 하나님이 아닌 코로나와 세상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그 어떤 고난도 우리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그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도 어떤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 믿음의 푯대를 향해 주저함 없이 달려 나간 것처럼, 우리도 복음을 위해서 그렇게 산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영광 받으시고, 우리는 영원히 복된 자의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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