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목회칼럼
나와 내 집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지난 10일 동안 식구들이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저는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정작 혼자서 생활을 해보니 모든 것이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제일 먼저 식사를 만들고, 그것을 차려 혼자 먹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매일 화초들을 찾아 다니면서 물을 주고, 빨래며, 청소며, 그리고 찾아오는 요금 징수원들이며, 아파트 단지의 쓰레기장 청소의 순번에서 부터 시작하여 여러가지 일에 신경을 쓰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늘 아내가 해 오던 일들을 이렇게 갑자기 혼자 떠맡고 보니, 새삼 아내의 역할의 중대함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한 것은 아이들(물론 다 성장해서 대학생들이지만)이 아내와 함께 여행하고 있었기에 적어도 아이들로 인해 신경 쓸 일은 없었습니다.
그동안 여러번 가족들을 내보내고 혼자 집을 지켰지만, 예전에는 혼자라는 해방감도 있어 좋았습니다마는, 지금은 그런 해방감도 사라지고, 하루하루가 피곤했고 그러다 보니 아내와 아이들이 돌아올 날만 기다렸습니다. 결국, 아내의 소중함을 다시 알게 되었고,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정만큼의 소중하고 가정만 한 귀한 선물을 우리에게 더 주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주신 은혜를 독점하던 아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적적함을 아신 하나님이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시고 그들로 가정을 이루게 하셨고, 그 가정을 기초로 하여 오늘날의 모든 사회구조가 형성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가정은 인간 삶의 가장 근본적인 기초요,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주님이 주신 창1:28절의 문화적 명령을 수행하는 가중 중심적인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른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옮겨가면서 생명공학이 모든 정신적, 윤리적, 도덕적인 가치관을 파괴하기에 이름으로 사람들은 가정이라는 단위보다는 개개인의 단위로 삶을 영위하고자 함으로 이 가정 파괴는 그 속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인류학자는 21세기의 현상으로 노인화, 여성화, 독신화를 들고 있습니다. 이 중에 여성화, 독신화는 지구촌의 가정이라는 미래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2010년 이후에는 여성의 50-70%가 직장생활 내지는 사회조직의 일원으로서 활동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다시는 농경시대나 산업 시대처럼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양육할 여성이 사라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독신화 문제의 배경에는 자녀를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기보다는 주어진 인생을 최대한 누리고자 하는 소위 육체 주의자들의 욕망이 이 시대에 팽배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 선교사들 8200여 명(평신도 선교사 포함)이 지구촌에 흩어져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데, 많은 사역자의 현장에 이미 자신들의 가정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의 교육 문제나 부부간의 직업상 문제, 그리고 질병이나 갈등, 그리고 싱글들의 사역 등이 사역지에서의 가정을 소유할 수 없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죤 하워드 패인은 Home Sweet Home을 작사하여 세계의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렸는데 정작 그는 갈곳도 의지할 곳도 없는 사람으로 그의 마지막도 길거리에 행려병자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가정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데 기초적인 단위로서 그 존재의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천되던지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께 그 생명적 기원을 두고,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제사장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가정에서 자라나는 경건한 자손들이 영육 간에 축복을 받아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병들고 무너져내리는 이 시대를 치료하는 영적인 의사들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도를 가르치고, 자녀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자녀들에게 존경과 흠모를 받는 부모가 있는 그런 가정, 지상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제일 아름다운 그런 스윗 홈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이 시대의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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