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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너를 부르신다(마가복음10:46-52)
고영수 2020-06-10 추천 0 댓글 0 조회 302
[성경본문] 마가복음10:46-52 개역개정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그가 너를 부르신다(마가복음10:46-52/2019.9.22.오전)


1. 구월에 들어서면서 많은 뉴스가 있었지만, 그 가운데 동경 메구로(東京目黒区)의 어린이 학대 사망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고, 5살의 어린아이가 남긴 메모는 많은 사람들을 눈물 짓게 만들었습니다.
후나또 유아(船戸優愛, 5)의 모친 유리(優里)는 가가와껜(香川県)에서 살다가 2015년에 남편과 이혼을 하고 그 이듬해 세 살 된 어린 딸을 데리고 직장 동료인 후나또 유우따이(船戸雄大-33)와 재혼을 합니다.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어린 유아에 대한 의붓아버지의 학대가 점점 심해졌고, 집을 나와 혼자 돌아다니는 유아를 목격한 이웃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아빠가 무섭고 집에 가기 싫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2016년 12월에 4살 먹은 어린아이의 몸과 얼굴에 여기 저기 멍이 들고 찢긴 상처로 인해 어린이 상담 센터는 2달 동안 데려다가 보호를 했고, 앞으로는 잘 대해 주겠다는 부친의 말을 듣고 집에 보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학대는 늘었습니다.
어린아이 학대에 대한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부친은 동경으로 이사를 했고, 2018년도부터 또 다시 폭행과 학대가 심해졌고,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았고, 유치원에도 보내지 않고 초등학교 입학식 준비 행사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조사해 보니 이미 아이의 상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져 있었습니다.
부친으로부터 목욕탕에서도 맞고, 화장실에서도 맞고, 나중에는 걸을 수도 음식을 먹을 수도 없는 상태였지만,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2018년 2월26일 부터 상태가 악화되어 3월2일에 폐렴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하고, 6월6일에는 아이에 대한 학대와 죽음의 책임을 물어 부부가 함께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모친 유리는 8년 징역형을 받았고, 부친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유아의 어머니는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려고 이혼하고 새로운 남자를 만났지만, 그것이 더 큰 고통과 비극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2. 뉴스를 보면, 유아는 예쁘고 똑똑하고 나이에 비해 지나치도록 영민했지만, 그래서 자신을 반성하고 부모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내일은 더 착한 어린이가 되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반성문을 쓰기도 했지만 문제는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나 의붓아버지로 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 형제와 주위 사람들로부터 늘 사랑을 받고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귀한 일이고 감사할 일이란 것을 깨닫지 못하고, 더 많은 사랑을 받을수록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 받는 것은 당연히 감사할 일이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사람들이 흉내도 낼 수 없는 귀하고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입었으니 마땅히 감사하며,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남다른 사랑을 입은 우리의 사명인 줄 믿습니다.

3. 오늘 본문을 보면 어떤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름은 바디매오이며 그의 부친은 디매오라고 하였는데, 특이한 것은 이 사람을 가리켜 맹인이고 거지라고 하였고, 그가 길 가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사람은 사람인데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48절에 보면, 눈은 보이지 않으니 소리를 질러 예수님을 찾았더니 사람들이 화가 났는지 그를 향해 조용히 하라고 꾸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관심 밖에 존재인데, 거기에다가 시끄럽고 귀찮게 행동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짜증이 날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바디매오 라는 이 사람을 주목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인생은 이 바디매오 처럼 누구나 맹인 같은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눈은 있어도 볼 수 없고, 앞을 볼 수 없으니 사람 모양을 해도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맹인이 앞을 볼 수 없고 사물을 구분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맹인이 볼 수 없다는 것은 그가 빛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빛이 없으면 아무리 눈이 건강하고 시력이 좋아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욥12:25절에 보면, 빛이 없으면 사람을 "캄캄한 데를 더듬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건강하고 지혜롭고 능력이 있는 사람도 빛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제일 먼저 만드신 것이 빛입니다(창1:3).

4. 그런데 사람이 눈을 가지고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빛 이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 하나는,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실상은 많은 것을 보면서도 대부분의 것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보는 것만이 아니라 듣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SNS에 들어가 보면, 사람들이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듣기 싫은 것은 마음의 귀를 닫아버리니, 그래서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며, 비뚤어진 생각과 한편으로 치우쳐진 그런 논리를 가지고 살면서 자기는 상식 있는 존재요, 대단히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눈이 있으면 당연히 볼 수 있어야 하고, 귀가 있으면 사방으로 경청하여 사물과 때와 흐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목구비(耳目口鼻)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빛을 잃은 인생은 방황할 수밖에 없으며 남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본문의 바디매오도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반대로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과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며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제일 먼저 그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47, 48절에 보면,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반복해서 부르짖었습니다.

5.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우리 인생에게는 많은 결점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 하나는 내 스스로는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혼자 살면서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지만,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보면 서로 비교하게 되고 남을 평가하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가 어떤지 드러나게 됩니다.
목사님들도 목회를 열심히 한다는 핑계로 모임에도 안 나가고 다른 목사님들 만나봐야 시험만 든다고 생각하고 혼자 주님만 붙들고 계시는 분들이 가끔 있지만, 우물 바깥의 세계,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생활 경험이 없이는 자칫 하면 독선이 되고, 아집에 빠지게 됩니다.
한 마디로 내 자신의 신앙이나 인격이나 목회 스타일을 판단할 수 없게 됩니다.
하물며 고난의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아가는 교인들이나 세상 사람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사람은 본 만큼 말하게 되고, 경험한 만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디매오는 길거리 앉아서 구걸이나 하는 보 잘 것 없는 인생이었지만, 예수님을 향해서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는 용기와 믿음이 있었습니다.
저도 젊은 날에는 신앙생활은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늘 독선과 아집에 빠져 있었습니다.
찬송하면서 박수치면 천박하게 여겼고, 통성기도 하면 이 사람들은 나하고 다른 귀먹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은혜받고 감사가 충만해지니 이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6.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어떤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까?
하나님이 거룩하니 나도 최대한 거룩한 모습으로 위선을 떨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받으려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15절에,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받는 비결은 바디매오 처럼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는 것 뿐입니다.
나이가 많은 장로라고 국가의 최고 자리에 앉은 대통령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무능한 인생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중에서 핵심적인 것 한 가지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에 예수님이 가던 길을 멈추시고 돌아보시면서 그를 내 곁으로 불러 오라는 것입니다.
46절에 보면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소경이며 거지로 길 가에 앉아 있는 바디매오를 지목하여 부르셨다는 사실이 놀랍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 예수" 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리고에 오신 예수님은 단순한 한 사람의 랍비, 즉 선생이 아니라 구원의 주가 되심을 알았습니다.

7. 신앙 생활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누구나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누구시며 어디서 와서 그가 무엇을 행하셨으며, 그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학습 과정이나 세례 과정을 거치면서 기초적인 것을 배우고, 성경 공부 반을 지나서 제자 훈련으로 나아가면서, 이 사람 속에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과 신앙의 경험이 쌓여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배우면 배우는 대로 알면 알아 가는 대로 믿음이 자라고 믿음으로 역사 하는 능력을 체험하면서 교회 안에서 큰 일꾼이 되고 축복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딤후3:14에,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고 하였고,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딛3:14) 고 하였습니다.
말씀 배우기를 힘쓰면 처음에는 불쌍히 여김을 받는 자였지만, 나중에는 예수님을 닮아 사람을 볼 때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놀라운 변화이며, 이것이야 말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8.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부터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왜 바디매오를 부르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첫째는, 51절에 기록된 대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는 이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부르짖는 자에 대한 응답이요 기도의 목적입니다.
바디매오 처럼 간절히 부르짖으면 살아 계신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렘33:3절에서,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 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들은 기도합니다.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에 도대체 누가 응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왕상18장에 보면, 엘리야 한 사람과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갈멜산에 올라가서 제단을 쌓고 자기들의 신에게 제사하면서 비를 내려 달라고 부르짖는 기도의 대결이 생각납니다. 그 때 엘리야가 한 말이 무엇입니까?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왕상18:24) 이라고 하였고 모두가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결과는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이 불과 비를 내리심으로 승리케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심을 감사드립니다.

9. 둘째는, 52절에 기록된 대로, "네 믿음이 너를 구원"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한 것이 많은 인생이라도, 과거에 어떤 실패와 고통이 있었던 지 상관없이 지금 우리에게 바디매오 만큼의 믿음이라도 있으면, 눈이 열려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고, 내 앞에 준비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이 사실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지금까지 볼 수 없었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까지 다 볼 수 있으며, 또한 바디매오 처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를 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 받기 위해서 태어난 생명이라도, 부모가 더 이상 사랑해 주지 않으니 5-6년의 인생을 학대와 굶주림 속에서 고통 당하다가 떠나는 후나또 유아 같은 인생도 있는데, 주님은 천에 하나 만에 한 사람인 우리를 불러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랑해 주셨습니다.
과연 우리만큼 주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인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며, 낙심 하지 말고 부르짖고, 나의 믿음으로 이제는 다른 사람들까지 불쌍히 여기며 구원하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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