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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예수님(마가복음14:43-52)
고영수 2020-06-27 추천 2 댓글 0 조회 472
[성경본문] 마가복음14:43-52 개역개정

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버림받은 예수님(마가복음14:43-52/2020.6.28.오전)

 

1. 지난 2010년 4월부터, 일본에서는 모성애를 주제로 하는「마더」라는 드라마가 니혼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아 여러 나라에 수출이 되면서, 각국에서 리메이크로 제작이 되었고, 2018년에 한국에서도 리메이크 되었습니다.

한국판 「마더」 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조류 연구가 강수진이 연구실의 폐쇄로 인해 근처의 초등학교의 임시 교사로 출근하면서, 자기 반 1학년 학생 김혜나가 학교에서는 이지매를 당하고, 집에서는 친모와 그녀의 동거 남인 이설악으로부터 학대를 받던 중에, 어느 추운 겨울날, 쓰레기 봉투에 싸여 집 밖에 버려진 이 아이를 발견하고, 그 날로 아이를 데리고 사라집니다.

이 드라마에는 많은 어머니들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등장합니다. 자식을 학대하고 방치하는 김혜나의 어머니로부터 시작해서, 다섯 살 된 주인공 강수진을 버린 친모, 그런데 강수진을 데려다가 키운 영화배우 차영신의 경우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이를 자기 배로 낳아야만 한다는 그런 사회적 고정관념을 깨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차영신은 한 번도 아이를 낳은 경험이 없지만, 3명의 여자 아이를 입양하고 그들이 성인이 되어서 사회로 진출하고 결혼하기 까지,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모습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머니이며,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 어떤 어머니도 따라올 수 없는 아름답고 위대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강수진이 김혜나를 데리고 사라지면서 경찰은 어린아이 유괴범으로 그녀를 추적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추적을 피해 도피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고난을 통과하는 강수진은 김혜나의 진짜 엄마가 되고, 김혜나는 강수진의 진짜 딸이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김혜나와 38살의 미혼 선생님 강수진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었지만, 함께 손을 잡고 수많은 난관을 넘어가면서 피보다 진한 모성애와 가족 사랑을 만들어 가는 그런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과 눈물을 선사했던 그런 드라마였습니다.

 

2.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소속된 교회가 이런 저런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당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이런 꼴 저런 꼴 보기 싫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교회와 함께 그 험한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다 보면, 그들은 마침내 참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거룩한 성도가 되어가는 그런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한다면, 교회로 말미암아 고난과 아픔이 있더라도 처음에 잡았던 그 손을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고난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는 그리스도의 참 사랑이 열매를 맺으며, 십자가로 인한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며, 그런 고난 속에서도 놓치지 않는 그 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의 심장에 흘러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예수님 무작정 따라 다닐 때에는 진정한 제자로서의 모습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에서 시작해서 십자가의 죽음을 거쳐 가는 고난의 과정과, 부활과 승천을 목격한 후에, 마침내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후에는 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참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자신들의 삶과 영혼 속에 채워가면서 기독교 2천 년의 역사를 통해 참된 예수님의 제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3.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했던 세월을 3년 정도였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1:18에 보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고, 1:20절에 보면,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갔" 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인생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과의 첫 만남은 굉장히 감동적이고 순수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들에게 보여주신 수많은 사역, 특히 귀신을 내어 쫓고 수많은 병자들을 치료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거라사 광인을 치료하시고, 회당장 야이로의 이미 죽은 딸을 다시 살려 내시고, 혈루증 여인을 깨끗하게 치료하시고, 물 위로 걸어오시고, 바람과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며, 벳세다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 가득 남기신 기적은 제자들에게 감동과 충격을 주고도 남았습니다.

6:2절에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고 경탄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엘리야가 살아 돌아왔다고 하였고, 또는 목 베임을 당해 죽은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가르치시고 보여 주시며 수도 없는 능력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셨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런 가르침과 능력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서로 다투고 시기 경쟁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그런 모습으로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4.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겟세마네 동산까지는 예수님과 함께 동행 했지만,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시작된 예수님의 고난이 시작되면서 남은 제자들도 가롯 유다처럼 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버리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그날 마지막 만찬에서 함께 식사를 나눌 때 까지만 해도,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지키며 따르겠다고 맹세까지 한 사람들이, 불과 몇 시간 후에는 아무도 예수님 곁에 남은 사람이 없이, 다 그 분과 잡았던 손을 놓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3년 동안 그들을 가르치며 모범을 보여 주셨지만, 고난의 현장에서는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본문 51-52절을 보면, 예수님이 잡히시고 심문을 당하시는 그 과정이 얼마나 두렵고 급박했으면, 제자 중의 한 사람은 벗은 몸으로 도망갈 정도였습니다.

이 때 그 사람이 베 홑이불을 둘렀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당시에 이런 물건은 부요한 사람들이나 사용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벌거벗은 채로 도망간 이 사람은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에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주기를 원하는데, 예수님의 경우는 그 분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곁에 있어 줄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많은 수욕과 아픔을 겪었지만 그 분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유는 기적과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예수님이라면 손을 잡고 함께 하는 것이 영광이고 축복이지만, 가장 연약한 상태에서 온갖 모욕과 고통을 당하는 그런 예수님이라면, 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5. 그런데 마26:53절에 보면 예수님이 체포 당하시는 과정에서 칼을 휘두르며 저항하던 베드로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고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내가 힘이 없어서 이런 수모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줄 아느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마26:54) 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이 연약해서 어쩔 수 없이 가시는 길이 아니라, 이 일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이었고, 이 길만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을 다시 살리고, 그들을 예수님의 참 제자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에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세상은 살면 살수록 살기 어렵고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폭력과 권력에 의존하고, 자신의 소유나 능력에 의지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선택도 방법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도 없이 온갖 모욕과 수치와 고통 속에서도 잠잠히 계셨던 것입니다.

 

6. 핍박을 받을 지라도 미워하지 말며, 조롱과 멸시를 당해도 되 갚으려 하지 말고, 도리어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고난의 십자가를 질 때, 우리는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 당할수록 기도하고, 어려운 일을 만날수록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본문 49절 끝에서도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 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성경을 이룬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구약에 예언 되어진 말씀들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 전체를 말씀의 도구로서 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불의 한 죄인으로 취급 당하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본문 48절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올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어느 정도로 예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며 대적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에 대한 반란이라도 일으키는 괴수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총독 빌라도가 유대인들 향해 명절에 행하는 사면 석방을 이야기 하면서, 강도 바라바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비교하면서 누구를 석방해 줄까 하였고, 군중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버리고 살인강도 바라바를 택하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흔들리지 않으셨고, 잠잠히 계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7. 목적이 있는 사람, 그 목적이 숭고한 가치를 지닐수록 그 뜻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은커녕, 랍비로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그런 그들의 태도에도 전연 신경 쓰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악인들은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온갖 수모와 고통을 감내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도, 우리는 순간 순간 어려울 때 마다 제자들처럼 잡았던 손을 놓고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고 숨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사람들이라면, 고난의 십자가의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믿었던 사람들이 내가 잡은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고, 생각지도 못했던 고난 속에 빠져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국에서 인도 선교사로 파송 받은 윌리엄 케리는 오랜 세월에 걸쳐 성경을 번역해서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 1812년 3월 12일, 그 지역에 큰 화재가 발생해서 자신의 번역 원고와 사전, 문법 책이며 인도 성경, 각종 성경 사전과 타자기까지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절망에 빠졌을 때, 그의 생각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이 사건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이 일로 인해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얼마 후에 영국 정부와 교회들이 이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렇게 해외 선교를 반대했던 사람들이 회개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잠자던 영국 교회에 각성 운동이 일어나면서, 윌리엄 케리는 고국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아 그가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열매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8. 예수님은 그렇게 사랑하시던 제자들로부터 버림을 당하셨지만, 예수님은 결코 그들을 버리지도 않으셨고, 잊지도 않으시고, 성령의 강림을 통해서 그들이 진정한 제자로서 거듭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또한 그들이 고난의 십자가를 통해서 두 번 다시 예수님의 손을 놓치지 않고 굳게 잡음으로 예수님 처럼 되고, 예수님 처럼 살며, 예수님이 주신 복음의 사명을 땅 끝까지 가서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은혜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손을 잡고 복음을 위해 교회 중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요15장은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에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 다고 하였고, 7절에 가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의 손을 잡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고난 속에서 잡은 주님과의 이 손을 놓지 않을 때, 십자가는 고난을 뛰어넘어 주님과 우리가 영원토록 하나가 되어가는 사랑의 역사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거나 때때로 주님과 잡은 손을 뿌리치고 내 마음대로 달아나도,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은혜의 자리로 불러 주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은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를 다 같이 부르며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암흑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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