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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고영수 2020-08-08 추천 1 댓글 0 조회 41
[성경본문] 레위기26:6-9 개역개정

6.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7. 너희의 원수들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8. 또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9.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를 번성하게 하고 너희를 창대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한 내 언약을 이행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레위기26:6-9/2020.8.9.오전)


1. 매년 8월이 되면 일본은 원폭을 당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떠 올리며, 자국민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향해 핵이 없는 세상과 전쟁이 없는 평화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원폭을 경험한 사람들이 고령과 질병으로 인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핵폭탄에 대한 참상의 증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수상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원폭 돔과 평화기념공원을 찾아 참배를 올렸습니다.
7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날을 기억하며 추모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문제는 이 지구촌에는 200여개 이상의 많은 국가들이 있는데 왜 하필 일본만 유일하게 그 무시무시한 원폭의 피해를 입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15분에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을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군대는 궤멸 상태였고, 그래서 정부가 시도한 것이 온 국민을 동원한 옥쇄작전이었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일반인들에게 칼, 죽창, 목검 같은 것을 쥐어주고는 미군으로부터 대일본제국을 지켜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방침을 방관하게 되면, 일본은 더 많은 대량 학살의 희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일본 국내 몇 몇 도시를 선정해서 그곳에 원폭을 투하함으로 그들의 결사항전의 사기를 꺾어 버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원폭 투하가 결정되자 미군은 항복을 권유했지만 일본은 이런 경고를 묵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본을 상대로 연합군이 전쟁을 계속한다면, 변변한 무기도 없이 인간 방패로 전쟁터에 끌려 나온 민간인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고, 끝까지 항거하는 일본인들의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판단에 결국 원폭은 히로시마에 투하되고 말았습니다.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기 전에 미리 삐라를 살포하여 일반인들을 시 외곽으로 피난해서 생명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알려 주기도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얼마든지 원폭의 피해 만큼은 피할 수 있었지만, 국민을 군국주의의 방패막이로 내세운 군부가 자초한 결과이며, 일반 국민은 여기에 이용만 당한 꼴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이 원폭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본이 할 일은 무엇이며, 이 일을 위해서 각 자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것을 실행해 나갈 때, 일본과 세계가 함께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2. 이 세상의 평화라는 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내 스스로가 그 평화를 지킬 힘이 없을 때에는 적에게 무참하게 짓밟힐 뿐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이 중국의 공산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경제성장을 이용했지만, 결과는 경제와 기술의 힘을 빌려 강대해진 중국이 오히려 전 세계를 삼키려고 달려들다가 지금 같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고 세계 질서는 힘 있는 강대국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런 현상에 반발하는 제3세력들의 테러와 전쟁으로 인하여 세계는 점점 고통 속에 빠져 들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간절히 원한다고, 입으로 평화를 외친다고 평화는 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참 평화는 어디서 오며, 이 평화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에서 살아갈 이스라엘에 대한 규례와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첫 번째 약속의 말씀이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평화라는 단어가 227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나라나 민족들의 인사말이 평안을 비는 내용입니다.
그만큼 현실은 평화롭지 못하고 삶은 평안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우리의 삶이 평안하지 못한 이유는 환경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법을 새로 만들고 많은 재물과 희생을 쏟아서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갑니다.
그러나 천재지변은 끝이 없고 환경 파괴는 물론이고, 전쟁과 테러는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촌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은 사람들을 더욱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3. 사도 바울은 이런 현상에 대하여 말하기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8:22)  하였습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인간이 고통하고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그것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 더 큰 고통입니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마지막에 인간을 지으시고, 그들을 에덴 동산에 두셨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의 동산이었습니다.
그곳에는 평화와 사랑, 축복과 넘치는 은혜, 아름다운 환경과 의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동산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그 안에 살고 있던 인간 스스로 욕심에 빠져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한 번 깨뜨린 이 평화와 언약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회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평화를 외치고 평안을 원하지만, 그 누구도 얻을 수 없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뿐입니다.
죄가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대동아공영이라는 구실로 전쟁을 일으켰지만 결과는 온 세상의 파멸과 고통 뿐이었습니다.
미국도 전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며 지금까지 평화로운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했지만, 결과는 더 깊어가는 갈등과 혼란과 전쟁의 참상만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나라와 민족과 개인에 차별 없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참 평화는 어디서 오며 어떻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본문 6절에 보니,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 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히브리어로 샬롬으로, 이것은 완전하고 안전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렵고 고통스럽고 날마다 긴장하는 그런 환경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원하시는 것은 평안이고 안전이며, 거룩함입니다.
문제는 사람이 노력한다고 이 샬롬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 지구촌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고통과 분쟁을 낳을 뿐입니다.

4.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6절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지켜 주시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이며, 7-8절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능력과 새 힘을 주셔서 대적을 이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9절에 보니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를 번성하게 하고 너희를 창대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한 내 언약을 이행하리라" 는 이 말씀입니다.
결국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 땅에서 그 어떤 평화도 없으며, 그 어떤 인생이라도 평안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며, 매일 매일의 삶에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제일 먼저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욕심에 끌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불순종의 시작이 재앙과 고통의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그 때부터 인생을 찾아오는 모든 것들이 우리를 고통 하게 만드는 것뿐이었습니다.
마귀가 방해하여 영육 간에 쉼을 얻지 못하고, 온갖 질병과 잘못된 감정들이 우리의 안과 밖을 고통하게 만들고, 그래서 인생은 살면 살수록 문제를 더하고 저주의 고통에 빠질 뿐입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 잘못된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습니까? 두 가지의 해결책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엡2:14-15에 보니,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 셨다고 했습니다.
불순종함으로 범죄한 우리의 죄의 대가를 예수님이 자기의 몸으로 다 치러 주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가 회복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가리켜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무셨다고 하였습니다.
평화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주님이 내 안에 있는 모든 두려움과 근심 걱정 고통과 저주를 몰아내심으로 참 평안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5. 둘째는 언약의 말씀을 따라 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만 가지의 질서가 있으며 이 질서를 거스르거나 파괴하면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땅에만 길이 있고 질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도 하늘에도 길이 있고 질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 멋대로 그 길에서 벗어나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의 세계에도 분명한 질서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천하 만물과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그 만물 가운데 있는 피조물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약속과 순종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보니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과 상급을 하나님은 수도 없이 반복하고 계시는 이유는, 죄로 말미암은 불순종은 세상의 모든 것을 바벨탑 처럼 무너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속에 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지켜야 할 법을 주셨는데, 그것이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때에는 순종을 통해 복을 받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의 순종만 요구하시고 지켜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12절에 보니,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 이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늘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며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따라 불순종 하게 되면, 21절에 기록된대로 "너희의 죄대로 너희에게 일곱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 이며 모든 것이 황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6. 아담과 하와는 어제까지만 해도 아름답고 풍성한 에덴동산이었는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니 그 땅에서 가시와 엉겅퀴가 올라와서 그들을 고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땅, 축복의 삶은 환경을 개발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부부의 관계가 신뢰를 잃고 무너지기 시작하면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 자체가 지옥입니다.
그래서 바른 관계가 중요합니다. 서로가 약속한 언약에 대한 신실한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관계가 깨어지지 아니하도록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은 이웃과 더불어 화목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은 나는 변화하지 않으면서 상대방만 변화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워본 부모님들은 잘 압니다.
내 배속에서 나온 자식이라도, 평생 그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데도 부모의 힘으로 그 자식 하나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을 변화 시키는 비결은 상대방을 변화 시키기 전에 내가 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12:18)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을 보면, 평화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잠자리에 누울 때에도 두려움이 없이 평안할 수 있는 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스라엘이 언제 스스로 강한 군대가 되었기에 대적을 물리친 것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전부 하나님이 앞서 가시면서 그들의 대적과 싸워 주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하기를, "주께서 나를 전쟁 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이 내게 굴복하게 하셨나이다"(시18:39) 고 고백하였습니다.
참된 평화와 영원한 승리는 주님이 내 안에 오실 때, 내가 그 분을 평화의 왕으로 내 인생의 목자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렇게 원하는 평화를 얻으며, 평안을 누리는 줄 믿습니다.

7.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어디로 가든지 반드시 번성하고 창대 하기를 원하십니다.
평화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오셔야 하고, 우리는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모든 약속이 성취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 하나님의 평화를 우리가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 무엇이 두려울 것이 있겠으며, 염려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켜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2:9) 이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표현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의 분명한 정체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성공과 평안, 영원한 승리는 지금 내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 땅의 평화도, 코로나로 인하여 무너진 세계의 질서와 경제도, 내 가정의 평안까지도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할 때 주어지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이 바른 관계는 전 세계를 두려움과 고통과 혼란에서 건져내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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