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 설교 자료 >
  • 주일예배 설교
괴롭히지 말고, 싸우지도 말라(신명기2:1-25)
고영수 2020-10-17 추천 1 댓글 0 조회 28
[성경본문] 신명기2:1-25 개역개정

1. 우리가 방향을 돌려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두루 다녔더니

2.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 너희가 이 산을 두루 다닌 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4. 너는 또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주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이 사는 지역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스스로 깊이 삼가고

5.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6. 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고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8. 우리가 세일 산에 거주하는 우리 동족 에서의 자손을 떠나서 아라바를 지나며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으로 지나 행진하고 돌이켜 모압 광야 길로 지날 때에

9.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10. (이전에는 에밈 사람이 거기 거주하였는데 아낙 족속 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크므로

11. 그들을 아낙 족속과 같이 르바임이라 불렀으나 모압 사람은 그들을 에밈이라 불렀으며

12. 호리 사람도 세일에 거주하였는데 에서의 자손이 그들을 멸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으니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의 땅에서 행한 것과 같았느니라)

13. 이제 너희는 일어나서 세렛 시내를 건너가라 하시기로 우리가 세렛 시내를 건넜으니

14.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15.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영 중에서 멸하신 고로 마침내는 다 멸망되었느니라

16. 모든 군인이 사망하여 백성 중에서 멸망한 후에

17.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8. 네가 오늘 모압 변경 아르를 지나리니

19.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20. (이곳도 르바임의 땅이라 하였나니 전에 르바임이 거기 거주하였음이요 암몬 족속은 그들을 삼숨밈이라 일컬었으며

21. 그 백성은 아낙 족속과 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컸으나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 앞에서 그들을 멸하셨으므로 암몬 족속이 대신하여 그 땅에 거주하였으니

22. 마치 세일에 거주한 에서 자손 앞에 호리 사람을 멸하심과 같으니 그들이 호리 사람을 쫓아내고 대신하여 오늘까지 거기에 거주하였으며

23. 또 갑돌에서 나온 갑돌 사람이 가사까지 각 촌에 거주하는 아위 사람을 멸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거기에 거주하였느니라)

24. 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25.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괴롭히지 말고, 싸우지도 말라(신명기2:1-25/2020.10.18.오전)

 

1. 중국에서 4대 미인하면, 당나라 현종의 양귀비(楊貴妃), 오나라를 멸망 시킨 서시(西施), 기녀 출신인 초선(貂蟬), 그리고 한나라의 궁녀 출신인 양소군(王昭君)이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 양소군은 기원전 1세기 쯤에, 한나라가 흉노족의 잦은 침입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에, 흉노의 우두머리인 호한야를 회유하기 위해서 장안에 불러들여 크게 대접을 하면서, 소원을 물었더니 한나라 여인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제는 궁녀 가운데 제일 못 생긴 왕소군을 그에게 주었는데, 당시 궁녀들 사이에는 왕의 총애를 받을 기회를 얻기 위해, 본래 얼굴보다 더 예쁘게 초상화를 그리려고 화공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 관례였는데, 왕소군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이 실물보다 훨씬 못 생기게 그렸기 때문에 한 번도 왕의 총애를 받지 못하고 있다가, 흉노의 호한야에게 시집을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양소군의 실물을 본 호한야는 천하 미색인 것을 알고 크게 기뻐했고, 원제는 이런 미인을 미리 알아보지 못한 원통함을 감출 수가 없어서, 왕소군을 추녀로 그린 자를 잡아다가 눈앞에서 참살하고, 그 시체를 장터에 걸어 두었다고 합니다.

요즘 SNS에 나도는 젊은 남녀의 사진이 대부분 포토샵으로 가공해서 올리다 보니, 실물과는 영 다른 인물들이 올라오는데, 한나라 시대 같았으면 능지처참의 대상이 되었을 것인데, 요즘은 서로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우리 주변에 자신의 신앙이나 영성에 관한 것을 과대 포장해서, 자신을 선전하며 자랑하고 있는데, 사람은 속일 수 있고, 일시적으로는 거짓말과 잘못된 행동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결과는 반드시 본인이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뉴스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 힘없는 노인들이 살고 있는 집의 화장실에 고장 난 수도를 고치는데 수 십만 엔을 갈취 당하는 사례들이 있는데, 과연 그런 범죄행위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제는 한 나라의 대통령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백성을 속이고 협박하는 그런 세상이고 보니

일반 백성들의 소소한 죄와 허물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런 일에 대하여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는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들과 다투지 말라, 괴롭히지 말고 싸우지도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웃과 다툼이 없이 서로 양보하고 용서하면서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는 것은 누구나가 원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 그렇게 살아가기가 너무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내가 아무리 잘하고 인내하고 양보를 해도 일단 상대를 잘못 만나면 앞길이 캄캄한 재앙이고 고통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경우는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 누구는 눈감아주고, 누구는 철저히 죽이고 몰아내는 차별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살려 두고, 화친하면 언제까지고 이스라엘을 찌르는 가시가 되고 원수가 되고, 유혹하는 우상숭배로 인해 재앙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이스라엘에게,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신7:2) 이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기 위한 절대적인 명령이고 조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일에 살고 있는 에서의 후손과, 롯의 자손들인 모압과 암몬 족속에 대해서는 괴롭히지 말고 싸우지도 말라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와, 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오는 이스라엘의 축복이 무엇인지 깨달아, 우리도 그런 은혜와 축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3. 본문 5절을 보면, 하나님이 에서의 자손들과 롯의 자손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이스라엘이 정복할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미 오래 전에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그들의 조상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 이미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충실하신 분입니다. 

한 번 약속한 것은 자신에게 해로운 것이라 하여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훔쳐 먹었을 때, 그때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약속하신 언약이 무엇입니까?

창3:15절의 말씀으로, 여기서 여인의 후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며, 그 증거로 21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 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록 연약하고 죄와 허물 가운데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과 맺은 언약이라도 한 번 맺으신 언약은 취소하시지 않습니다.

환경이 바뀌고 세월이 흘렀다고 외면하거나 무효를 선언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래서 민18:19절에서 하나님의 이 언약을 가리켜 "영원한 소금 언약" 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에서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 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에서의 자손들과 롯의 자손들은 늘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나라였습니다. 말이 먼 친척이고 이웃이지 조금도 도움이 안 되는 족속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잘못된 행위나 주어진 상황보다도, 그들의 조상과 맺은 언약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싸우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지금도 얼마나 많은 것으로, 얼마나 좋은 것으로 준비해 놓으셨겠습니까? 

그 분의 언약을 믿으며,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믿는다면 의심과 두려움과 근심은 물러갈 것입니다.

 

4.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보면, 어느 나라나 민족이든지 전쟁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고, 전쟁을 통해서 국력과 영토가 확대하면서 다방면의 성장을 이루어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보면 하나님의 싸우지 말라는 이 명령은 이율배반적인 명령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실상은 그 핵심이 7절에 있습니다. 그곳에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습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바로 이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왜 같은 나라에 살면서 같은 민족끼리, 심지어 이웃과 형제들끼리도 싸우고 속이고 미워합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단 하나 뿐입니다.

내 인생에 부족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풍족하고 모든 좋은 것들이 흘러넘치면 속이고 미워하고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광야라고 하는, 사람이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절대적인 어려운 환경에서 40년 동안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까?

7절에 기록된 대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 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통과하면서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며,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이 얼마나 큰 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구하는 것은, 비옥한 땅입니다. 이웃과의 평화로운 삶입니다.

위로와 기쁨이 넘치며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풍성함을 누리는 만족입니다. 

이런 것을 얻기 위해서 지금까지 남을 속이고 빼앗고 죽이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살 필요도 이유도 없었습니다. 

 

5. 그들은 언약 안에 있는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어떤 곳에 머물던지 환경이나 조건이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밤낮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삶 속에서 동행하였던 다윗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23편), 바로 이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다윗은 400여 년 전의 출애굽 당시의 자기 조상들의 광야생활을 마치 자신도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그 때의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살았던 애급은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풍요로운 애급이 고통과 어두움의 땅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7절의 말씀과 같은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통 중에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셔서 고통 중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몇 번의 인생의 광야를 만나게 됩니다.

죽고 싶은 생각 뿐이고, 세상을 원망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가고, 한없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광야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특별하신 돌보심과 그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둘도 없는 인생의 전환점이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6. 본문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부족함이 없다고 하였고, 다윗의 고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하셨으니, 전기 요금이나 가스 요금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매일 일용 할 양식인 만나와 마실 물을 공급해 주시니 수도세며, 주식비나 부식비가 들지 않습니다.

의복과 신발이 닳지 않으니 돈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고기 먹고 싶을 때에는 메추라기 떼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근심 걱정 두려움은 누가 합니까?

25절에 보니,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들, 곧 하나님의 언약과는 상관이 없는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이름만 들어도 떨며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만큼 강력한 군대였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축복하시는 사람들이고, 사방의 대적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을 통해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에서의 자손과 롯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땅에는 크고 강력한 민족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싸우지 말라고 하십니까?

24절에 보니, 이스라엘이 싸워야 할 대적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전투하는 참 목적은 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가나안인들의 죄악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쓰임 받도록 우리 자신을 드린다면, 사람들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이며, 그 분의 손길에 사로잡혀 쓰임 받는 우리를 존경하고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7.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6절에 보면, 에서와 롯의 자손들이 살고 있는 땅을 통과할 때, 그들의 것을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고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택자 은총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이웃에게서 공짜로 먹고 마시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만큼 이스라엘의 자존감을 높이시기 위함이며, 또한 이스라엘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이라도 친해지면 공짜로 먹고 대접 받는 것을 좋아하는데,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베풀고 나누어주고 제 것으로 이웃을 섬기는 것을 기뻐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좋은 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창14장에 보면, 소돔성에 살던 조카 롯이 그돌라오멜과 연합한 왕들의 손에 사로잡혀 갔을 때, 조카를 구하기 위해서 집에서 훈련시킨 318명을 거느리고 쳐 들어가서 롯과 모든 포로들과 재산을 되찾아 왔을 때, 소돔 왕이 고마운 마음에 당연히 사례를 하려고 하자, 너에게 속한 실 한 오라기도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아브라함이 부자가 된 것은 다 소돔 왕 덕분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아브라함이 너무 까다롭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능력으로 살았다는 것을 그들에게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창23장에서도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죽자, 그 지역에 사는 헷 족속이 묘실과 밭머리를 그냥 주겠다고 했을 때에도, 억지로 은 400세겔을 달아서 땅값을 치렀던 것은, 만에 하나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게 하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늘 자신의 삶에 풍성함으로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나타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이 이와 같으니 어찌 하나님이 그의 삶을 축복하지 않겠습니까?

 

8. 우리에게 광야와 같은 시간이 왔다고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로 맺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언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위해 아들까지 희생하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은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남들을 괴롭히고 싸우고 빼앗지 않아도, 늘 변함없이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빼앗거나 욕심 부리지 않아도, 다윗의 고백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늘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사람의 성품과 그 마음(신명기2:26-37) 고영수 2020.10.24 0 8
다음글 이스라엘의 통곡(신명기1:34-46) 고영수 2020.10.10 0 21

大阪中央教会 ⧧537-0023 大板市 東成區 玉淨 3-1-33 (06) 6973-5540, 6920-1569 www.chuo.co.kr / sirokita@gmail.com

Copyright © 오사카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25
  • Total3,979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