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신명기26:5-11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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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복을 주시는 하나님(신명기26:5-11/2020.11.8.오전)
1.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 정경화는 정명화, 정명훈 피아니스트와 형제로, 삼형제 전부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진 세계적인 음악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경화는 2005년,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을까 생각하며 고민할 때, 믿음의 어머니 이원숙 여사는 지금의 화가 나중에는 복이 된다고 하셨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기다렸더니 2010년에 기적적으로 손가락이 치료가 되었고, 다시 무대로 돌아와서 전 세계 사람들을 매료 시켰습니다. 음악가는, 특히 바이올린 연주자는 손가락이 생명입니다.
그래서 손가락을 보험에 들려고 했더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보험을 들면 되지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고 책망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믿는 사람의 첫째 조건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정트리오로 불리는 이 형제들의 어머니는,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우고, 세계적인 연주자로 키우기 위해서 냉면 장사를 하면서 뒷바라지를 했다고 합니다.
제가 오래 전에 로마에 갔을 때, 저희 일행을 마중 나오셨던 사람이 정명훈씨 였는데, 믿음의 사람 답게 피아노만 잘 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격과 품격이 훌륭한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사간에도 왜 내 인생이 이 모양이며,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생각하며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음 주일로 다가오는 추수감사절을 앞에 두고 우리 인생의 이런 고민을 해결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로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2. 사람들은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삶을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가져다주는 온갖 즐거움과 쾌락을 인생의 의미를 두고, 그렇게 살아가는데 이런 인생은 살면 살수록 허무와 고통을 더하는 저주 받은 인생일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믿고 감사함으로 나아가면,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불러오고, 우리의 감사는 내 안에서 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채울 수 있으며, 결국 넘치는 감사를 통해 우리의 인생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생을 축복과 새로움으로 채울 수 있는 길은, 우리를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해 주신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향한 넘치는 감사뿐입니다.
그러므로 불평하기 전에 먼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자랑 거리 중에 하나는 조상자랑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랑은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고통과 좌절감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돌아서면 더 심한 자괴감에 빠질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을 향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5)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방랑이라는 말은, 멸망하다, 굴복하다, 길을 잃고 헤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는 자기 조상들을 자랑하거나 미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상들에 대한 정체성을 예리하게 꿰뚫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길을 잃은 자였습니다. 그들은 잃어 버려진 자들이었습니다.
마치 야곱이 형을 피해서 도망 다니던 것처럼, 그래서 갈 곳이 없어 광야에서 돌 베개를 베고 노숙을 하던 것처럼, 삼촌 집에 얹혀살면서 제대로 대우도 받지 못했던 그런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3. 또한 애급에서 야곱의 자손들이 요셉 때문에 대접을 받은 것도 잠시 뿐 이었습니다.
6절에 보니,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 노동을 시켰" 다고 했는데, 그 앞 절을 보면, 애급에서 "소수로 거류하였" 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임시로 머물고 있는 상태를 말하며, 외국인으로서 많은 제약과 어려움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1910년에 조선이 일본에 강제합병을 당하기 전부터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건너와 살기 시작했고, 그 세월이 1백 몇 십 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미국 같으면 벌써 시장, 상원, 주지사도 나오고 대통령 후보도 나올 수 있는 그런 세월인데, 아직 까지 투표권조차도 얻지 못하고, 세금만 열심히 내고 있습니다. 하물며 3천5백여 년 전의 애급에서 그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나 고난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고, 그들의 자손이 번성하기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낀 애급 사람들은 히브리 민족을 노예로 삼아 부려 먹기 시작했습니다.
6절에서 학대라는 이 단어는, 부당하게 대우 받거나, 손해를 입거나, 심한 고통을 받는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말하고 있는 그들의 조상은, 한 마디로 별 볼일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조상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7절로 내려가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고통 중에 그들이 선택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조상,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인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사실입니다.
4. 그런데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제일 먼저 찾아가거나 손을 내미는 곳이 어디입니까?
친구, 이웃, 친척, 아는 사람들입니다. 나보다 힘이 있는 사람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이 애급에서 고통을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쉬게 해 달라고 했더니, 돌아온 결과가 무엇입니까?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에 쓸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이 가서 스스로 짚을 줍게 하라"(출5:7)는 것입니다.
도움을 호소했더니 도리어 돌아온 것은 더 큰 고통이고 재난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시146:3)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아래 구절을 보니, "그의 호홉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한" 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인생이고, 자기 스스로도 바로 세우거나 지키기 어려운 연약하고 불쌍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친척, 이웃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말고 도리어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애급에 사는 히브리인들이 마지막에 선택한 방법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움 당할 때, 여러 가지로 몸부림치다가 마지막에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항복하고, 그 분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라도 하나님께 엎드리면 사는 길이 열리는 것은, 그가 구원의 하나님이시오,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이 본문 7-8절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과 압제를 인하여 하나님께 호소했더니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그곳 고통의 자리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출 애급의 역사입니다.
5. 이스라엘이 애급에서 노예 신분으로 살았지만, 이방인들과 다른 아주 중요한 것 한 가지가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나라도 없고, 주권도 없고, 자신들의 소유는 물론이고, 언론의 자유도 없었지만, 애급 사람들이 소유하지 못한 것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들이 고통 중에 부르짖을 때, 그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는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방인들은 아무리 부르짖어도 그들이 섬기는 신은 사신 우상이기 때문에 들을 귀가 없지만, 우리 하나님은 자기 자녀, 자기 백성의 고통과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간구와 부르짖음에 가까이 오시고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8절에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셨"다고 했습니다.
애급인 에게는 비옥한 토지와 왕권의 위엄과 많은 군대와 물자가 흘러넘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의 강한 팔과 위엄과 능력에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남들이 소유한 것을 내가 가지지 못했다고 비관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우리를 죄와 고통 가운데서 구원하시고 끝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며, 오늘의 고난과 문제를 믿음으로 이기는 줄 믿습니다.
6.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대대로 끊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첫째는 그들이 애급에서 고통 중에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그들을 애급에서 구원하시고 불신앙의 세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야 40년의 세월을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셋째는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첫 수확을 얻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10절에 보니,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면서, 구원의 하나님께 축복의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첫 수확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와 감격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과거, 즉 자신들의 조상들이 별 볼일 없는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이렇게 축복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조상이 훌륭하고 유전인자가 뛰어나고, 환경이 좋다면 내 능력이나 내 가문을 자랑하지 하나님께 감사할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조상은 그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유목민으로, 그것도 남의 나라에 붙잡혀 노예 생활을 하던 조상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어려울 때에는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축복을 내려 주실 때에는 풍성한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애급에서의 구원과 광야 40년의 세월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능력의 하나님의 은혜였고, 사랑의 하나님이 베푸시는 축복이 전부였습니다.
7. 본문 11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첫 소산물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와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니, 그들의 감사는 자신들의 집안은 물론이고 기업이 없는 레위인들과 이스라엘 가운데 거류하는 이방인들에 이르기 까지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 경배를 통해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가 전도가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가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리의 삶을 기쁨으로 넘칠 것이고, 이 기쁨이 또한 이웃의 기쁨이 됨으로 전도의 길은 열리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핑계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이스라엘처럼 우리의 감사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기쁨으로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11절에 보니,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복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비교하는 그런 복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자기 몸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로 인해 많은 고통과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을 때,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3번씩이나 하나님께 간구했지만, 돌아온 대답이 무엇입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12:9) 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넘치도록 축복해 주시는 분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축복이라고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남들과 비교해서 기쁨보다는 불평이 나올 것이 아니라, 내게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도 행복이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삶의 현장에 넘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감사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참 자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감사의 예물을 들고 나아가서, 그 앞에서 기쁨과 찬양과 더 넘치는 축복으로 돌아오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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