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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두려워하는가?(신명기3:1-22)
고영수 2020-11-06 추천 2 댓글 0 조회 580
[성경본문] 신명기1:1-22 개역개정

1. 이는 모세가 요단 저쪽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2.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3. 마흔째 해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나

4. 그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주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주하는 바산 왕 옥을 쳐죽인 후라

5. 모세가 요단 저쪽 모압 땅에서 이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6.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주한 지 오래니

7. 방향을 돌려 행진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방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네겝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

8.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

9. 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는 홀로 너희의 짐을 질 수 없도다

10.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하게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 같이 많거니와

11.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12. 그런즉 나 홀로 어찌 능히 너희의 괴로운 일과 너희의 힘겨운 일과 너희의 다투는 일을 담당할 수 있으랴

13. 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 받는 자들을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수령을 삼으리라 한즉

14. 너희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당신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좋다 하기에

15. 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 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

16. 내가 그 때에 너희의 재판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너희의 형제 중에서 송사를 들을 때에 쌍방간에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 그들 중에 있는 타국인에게도 그리 할 것이라

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18. 내가 너희의 행할 모든 일을 그 때에 너희에게 다 명령하였느니라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을 떠나 너희가 보았던 그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아모리 족속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너희가 이르렀나니

21.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22.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제공: 대한성서공회

왜 두려워하는가?(신명기3:1-22/2020.11.1.오전)

 

1. 사도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아보지 못함으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말하는데,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2:8)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사도 요한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요1:9-11) 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그 당시 뿐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시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누구시며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오셨으며, 그 분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또한 그가 행하신 일에 관해서는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미쳤거나 사기꾼이거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로 여겼기 때문에 성난 군중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고 따라야 하는데,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실 정도의 능력을 가졌다면 당연히 그 능력으로 모든 사람들을 불러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하는데, 왜 그는 모든 시대에 걸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아야만 했습니까?

고전 2장을 계속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고 믿는 것은, 사람의 지식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인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그 누구도 그를 알 수 없으며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하심"(고전2:12)고 하면서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한다(2:13)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놀라는 것은,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나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2천여 년 동안에 이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웬일인지 하나님을 아는 일과 영적인 일에 대한 것에는 전연 변화도 없으며 관심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2. 그러나 이런 세상에 대한 관심은 잠시 접어두고, 우리 자신들을 한 번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 분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난 변화는 무엇이며,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죄에 대하여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사후에 일어나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죄 사함 받은 자의 은혜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과 내세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에 대해서는 거듭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을 수 있었고, 또한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심으로 우리는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 없이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미래에 대한 그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와서 수많은 만남을 경험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 만남이야말로 우리 인생에서 기적 중의 기적이고, 은혜 중의 은혜이며, 축복 중의 축복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대하면서 또 다른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서는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런데 두려움이라는 이것은 과거 이스라엘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 사람들의 문제이며 동시에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우리 안에 뿌리 깊은 이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합니다.

3. 본문은 처음과 마지막 부분에서 똑같은 말씀을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두려워하는 이 감정은 어디서 부터 나오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의 경우는 전쟁의 두려움과 대적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인을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쏟아 부으신 하나님의 그 손길이, 홍해 가운데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받아 누린 축복과 은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바산 왕 옥과의 전쟁을 앞두고 또다시 이스라엘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 특히 출 애굽 과정에서 함께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동행하심과 축복하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애굽에서 한 발자국도 나올 수 없는 족속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도움도 없이 온 애급 군대가 빠져 죽은 그 홍해에서 이스라엘만 온전히 구원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요, 언약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런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갖 은혜와 도우심과 축복을 받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불신앙의 대가로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사람 모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4.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매일 두려움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근심, 걱정, 염려, 불안, 낙심이 떠나지 않고 있으며,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염려로 가득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순간, 우리를 떠나는 것은 평안한 마음이고, 우리를 찾아오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감사와 기쁨과 찬양이 사라지고 한숨과 눈물이 쌓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모든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모리 족속의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에게도 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3:2).

무엇보다도 22절에 보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팀의 경기를 보면서 손에 땀을 쥐고 흥분하며, 한편으로는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켜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승리를 얻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경기의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모든 만사가 아무리 장담하고 약속을 수백 번 해도 결과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야고보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 그 분의 신실하심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까? 이삭을 바쳤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롬4:18절에 보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것은,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4:21-22)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과, 약속한 것은 반드시 성취하심을 믿는 이것입니다.

 

5. 전쟁의 기본이 무엇입니까? 무기도 있어야 하고, 훈련도 필요하고, 작전이나 군수물자가 필요하지만, 기본 중의 기본은 대적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무조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를 본문에서 제시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다시 반복해서 말씀드리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2절에 너희의 손에 다 넘겼다는 것과,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내가 바산 왕 옥에게 행할 것을 약속하심과, 20절에서 안식을 주시는 것과, 21절에서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목격하고 경험한 것처럼, 앞으로도 이와 같이 행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며, 반드시 성취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신앙의 결과에 대해서 남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내일에 대해서, 우리 인생의 문제에 대하여 두려움으로 반응하는 이유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어떤 문제라도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내가 키우는 개가 이웃 사람을 물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내 가게의 간판이 떨어져 사람을 다치게 했다면 변상해야 합니다. 내가 말이든 서류이든 약속을 하면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을 내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고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베푸셨고, 믿음으로 우리를 자기 자녀로 낳으셨습니다.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오심으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6. 남의 자동차를 타면, 일단 운전자에게 모든 것을 맡깁니다. 전차도 버스도 비행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할 때에게 내어오는 음식을 의심하지 않고 안전하다고 믿고 먹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을 주인 되신 주님께 맡기면 안심할 수 있습니다.   

요셉처럼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급에 노예로 팔려가도, 보디발 장군이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인 줄 믿었기 때문에 요셉은 남의 나라에 가서도 성공할 수 있었고, 이스라엘의 미래를 위해 계획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맡기지 못했다면, 어떻게 4-5절에 기록된 것 같은 이런 성읍들을 쳐서 점령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모든 성읍들을 다 쳐서 점령하고, 가나안인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22절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서 친히 싸우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나아갔더니, 더 이상 이스라엘을 두렵게 하는 세력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우리를 두려움과 근심으로, 고통을 주면서 위협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대적들과 싸우시고 보호해 주시며,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7. 요즘 자녀들 때문에 고민하시는 성도님들이 계신데, 여러분들의 고민을 하나님은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어떻게 해야 자녀들을 훌륭하게 잘 키우고,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할 수 있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두려움은 우리 인생을 망치고 파괴할 뿐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치료하심과 회복케 하심을 경험하게 하는 줄 믿습니다.

두려움은 불신앙에서 나오며, 근심, 걱정, 염려, 불안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그 분의 사랑과 은혜 안에 머물면,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신 주님이 우리와 자녀들의 미래까지 다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전쟁의 승리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16:3) 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당장 우리를 괴롭히던 두려움은 물러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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