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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죽을 것이요(신명기5:22-33)
고영수 2021-02-06 추천 1 댓글 0 조회 33
[성경본문] 신명기5:22-33 개역개정

22.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에서 큰 음성으로 너희 총회에 이르신 후에 더 말씀하지

23. 산이 불에 타며 캄캄한 가운데에서 나오는 그 소리를 너희가 듣고 너희 지파의 수령과 장로들이 내게 나아와

24.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매 불 가운데에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오늘 우리가 보았나이다

25.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26. 육신을 가진 자로서 우리처럼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에서 발함을 듣고 생존한 자가 누구니이까

27.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28. 여호와께서 너희가 내게 말할 때에 너희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신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네게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

29.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30. 가서 그들에게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라 이르고

31. 너는 여기 내 곁에 서 있으라 내가 모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네게 이르리니 너는 그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서 내가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는 땅에서 그들에게 이것을 행하게 하라 하셨나니

32.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죽을 것이요(신명기5:22-33/2021.2.7.오전)


1. 하나님의 말씀인 계시된 성경은 전부 66권의 책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첫 번째 시작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그 분의 창조사역을 통해서 처음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약하고 지혜가 없는 인간은 그것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수가성에서 사마리아의 한 여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지만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한다고(요4:22) 하셨는데, 문제는 우리 가운데 누구도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본 적도 없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그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을 알고 싶은데,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어디를 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자들처럼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가까이서 얼굴과 얼굴을 서로 마주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우리의 신앙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을 보여 주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요구대로 당장 하나님을 보여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도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거짓말쟁이처럼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철학이나 신학으로, 혹은 도덕이나 신비한 사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절대 그런 것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으며,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속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할 때, 왜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없는지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가져야 합니다.

그기에 대한 정확한 답을 바로 오늘 본문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리와는 다르게 역사적으로 하나님과 생생하고도 특별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본 것은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리고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등을 잠깐 보았을 뿐이었습니다(출33:22-23).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 주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분의 손길에 의해 출애급의 구원을 체험 하였고, 시내산에서 그 분의 음성을 들었고,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자신들의 법으로 삼았으며, 그리고 그 분의 백성으로서 살았습니다.

그 당시의 이방인들에게는 각 개인은 물론이고 각 민족과 국가에는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이 존재하였고, 그들은 자신들의 신들을 우상으로 만들어 숭배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으로 형상화 하지도 않았고, 현대 신학자나 철학자들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늘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계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왜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백성들에게 나타내지 않으시며, 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까? 본문 25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3. 온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 시내산 기슭에 모였고, 그 시내산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크고 강렬한 불과 구름과 흑암으로 덮인 가운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반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정 반대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소원이고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경우는 그 분의 모습은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그 음성만 듣고도 말하기를, 또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우리가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중대한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연약한 인생이라면 하나님을 만나야 살고, 어리석은 인생이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지혜도 능력도 없는데,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 하였는데, 지금 그 백성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는 기뻐하기 보다는 두려움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두려움이 얼마나 컸으면 이 하나님의 불길이 우리를 삼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음성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연약한 인생이고 죄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생명을 걸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이 축복의 하나님이시고 나를 도우시는 분이라도, 그 분의 음성만 들어도 두렵고 떨리고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면 누가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겠습니까?


4. 이스라엘이 이런 딜레마에 빠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인간은 죄 가운데서 태어났고, 죄 가운데서 그 죄를 물마시듯 하며 죄를 짓다가 그 죄의 다가로 죽음을 당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거룩함과 의로움과 영광 앞에 설 수 없으며, 죄는 연약한 인생을 더욱 두려움과 고통과 저주를 만들어 내며, 죄는 우리 인생이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없도록 방해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고, 죽음의 위기를 느낀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피조물인 연약한 인생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지전능하시며, 그 분의 영광과 존귀와 위엄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교회를 아예 못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고, 교회 들어와도 예배를 드리면 안절부절 하는 사람들도 있고, 설교와 말씀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백하는 것을 절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는 잘 드리고 은혜도 받아서 돌아가면, 그 받은 은혜를 다 쏟아버리고 더 이상하게 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죄 때문입니다.

셋째는 내 안에 마귀의 세력이 강력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피하고 대적하고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현상은 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고 삶이 변화된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고, 하나님의 축복이며 평생의 감사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 보기를 원해도 끝까지 보여 주시지 않은 이유는, 출33:20절에 보니, 하나님이 모세에게,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자랑하는 인간의 의나 영광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권능 앞에 선 수천 년 묵은 찌꺼기나 때만도 못한 것입니다.

오히려 그 공로와 썩을 영광을 자랑하다가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5.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기뻐하고 그 분을 찬양해야 하는데, 이스라엘이 두려움과 고통과 생명의 위기를 느낀 것은, 인간의 죄와 연약함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께 요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27절에 보니, 모세가 우리를 대표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듣고, 그것을 우리에게 선포하고 가르쳐 주면 좋겠다는 것이고, 28절에 보니,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요구를 옳게 여기시고 모세를 중보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말씀을 선포하시고 명령하신 일에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어려운 형편을 잘 알고 계시고, 그것을 해결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모세와 같은 중보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죄와 연약함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그 분의 음성만 들어도 죽을 수 밖에 없는 그런 불쌍한 우리를 위해 예수님 중보자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요1:18)다고 하였고,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요12:45) 이라 하였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원래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받아야 하는데,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그 중간에 중보자로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한 번도 자신의 말을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셨고, 제 마음대로 행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 섬기는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난과 문제를 우리보다 더 잘 아시고 이해하시고, 죄 가운데서 고통하는 우리의 어려움을 불쌍히 여기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참 중보자가 되시며 영원한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6. 본문 29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은 정말로 이스라엘이 복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만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각 가정의 영적인 제사장이요 중보자가 되어서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자녀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서 천 대까지 복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모세를 중보자로 세우셨고, 오늘 우리에게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세우심으로 우리가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오도록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스라엘 보다 더 보잘 것 없는 연약하고 죄 많은 인생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음성만 들어도 두려움에 떨다가 죽을 인생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받아 멸망하지 않고, 복을 받아 은혜의 삶을 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기도할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하는 이유도, 이 세상 어떤 이름으로도 하나님께 기도를 올릴 수 없으며, 다른 이름으로 기도하면 저주를 받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할 때 마다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도록 그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우리를 모든 영적 대적자와 세상 유혹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승리자의 삶을 살도록 보증해 주시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감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악행을 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들은 복된 백성이 아니라 망할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망할 백성들의 특징은 죄를 짓고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악행을 해도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7. 인생을 살아보면 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 중에 하나가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감사를 너무 어렵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십계명을 다 지키면 복을 주고, 어기면 저주를 퍼 부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고 소망이 됨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면 두려움은 물러가고, 근심 고통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제일 먼저 느낀 것이 무엇입니까? 평안함이요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비록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위엄 앞에 감히 설 수도 없는 연약한 죄인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과 감사와 경배를 받으시는 것을 매우 기뻐하시는 것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음성만 들어도 죽을 것 같았지만, 우리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힘입어, 도리어 말씀에 아멘하고 새 힘을 얻으며, 받은 은혜에 감사 찬양을 올리는 줄 믿습니다.

신명기 전체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자기 백성된 이스라엘이 자자손손 하나님의 말씀에 힘입어 복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와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복 받는 비결이 본문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있는데, 다 같은 목소리로 본문 32-33절을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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