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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마가복음15:33-39)
고영수 2021-03-27 추천 0 댓글 0 조회 34
[성경본문] 마가복음15:33-39 개역개정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죽음(마가복음15:33-39/2021.3.28.오전)


1. 여전도회에서 바자를 준비하는데, 유명 메이커의 가방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싸구려 모방품인 줄 알고 가격을 적당하게 쓰고 걸어 놓았는데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나중에 헌품하신 분이 그 가방은 정품이라고 해서 전문가에게 감정을 해 보니 진짜였습니다.

그래서 가방 가격이 일시에 10배나 올랐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시시한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스스로 힘이 없으니 신의 힘을 빌리려는 것이라 여기고 나약한 존재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들보다 못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며 그런 수준의 사람도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손수 우리를 창조해 주셨고, 한 번 죄 가운데 떨어져 저주 가운데 갇혀 있었던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셔서 십자가를 통해 죄를 용서받게 하시고, 자신의 영원한 상속자인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수준으로 평가하던지 상관이 없이, 우리는 천하보다 귀한 존재요 영생과 천국을 선물로 받은 축복의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면 그리스도인의 참된 가치가 온 천하에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참된 가치는 어떻게 드러나며, 그 가치를 언제 인정받게 됩니까?

그리스도인의 참된 가치는 역설적으로 죽음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영광을 얻으신 것처럼, 그를 따르는 우리도 잠시 잠깐 후에 찾아올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참된 가치가 드러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 이후에 찾아오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2. 세상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아무리 잘 나가는 인생이라도 죽음이 찾아오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각 시대 마다 위대한 영웅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자랑해도 죽음을 맞이하고 남은 것은 이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말하고 죽음을 기다리며 살며, 성경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많은 종교들도 죽음에 대해 말하지만 그 죽음을 자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말하고 그 분의 죽음을 자랑하며 우리도 그분과 함께 죽음에 임하는 그 날을 바라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크고 놀라운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죄 가운데서 나고, 죄 가운데서 성장하다 보니 그 삶은 끝없는 갈등과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문제는 인생이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고, 살면 살수록 문제가 쌓이는 그 이유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셔서 죄가 무엇이며, 죄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롬6: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 이라고 했고, 죄는 인생에게 파멸과 고생을 준다(롬3:16-17)고 했습니다.

 

3. 예수님은 죄가 무엇이고 죄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말씀하실 뿐 아니라, 인간을 파멸과 고통으로 몰아가는 그 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죗값을 치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인생의 근본적인 고통과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수님 한 사람의 희생이 어떻게 수많은 인류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겠느냐고 의심합니다. 그러나 요한12:24절에 분명한 답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한 알의 밀 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 자신을 죽음에 내어 주심으로, 그를 통해 우리 모두가 구원 받고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인생은 죄 문제를 해결해야만 모든 멍에를 벗을 수 있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이길 수 있으며 미래에 대한 소망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타락해 버렸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죗값을 대신 치루시고 죽으신 것을 믿을 때,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모든 죄의 세력은 물러가고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것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자랑하는 것입니다.


4. 두 번째는, 그 분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을 맞이하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죽음은 예외 없이 죄에 대한 심판으로서의 죽음입니다.

이러한 죽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종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생명을 연장하여 죽음을 피하고자 하지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죽음을 맛보기 이전의 상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부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롬8:18) 다고 하였고,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롬8:34), 하나님은 그를 죽음에서 일으켜,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엡1:22-23) 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왜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죽음 이후에 나타나는 부활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도 그가 받은 부활의 영광을 함께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다가 죽으면 죄에 대한 심판으로 영벌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들은 살아 있을 때가 천국이고 이 세상이 최고의 시간이지만,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에게는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루 속히 자신의 육체를 벗어나 주님과 더불어 거하는 것을 사모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죽음 뒤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고, 그 부활의 영광은 우리보다 먼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누리는, 우리가 받을 영원한 기업입니다.


5.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부러워할 이유도 없으며, 이 세상에서 잠시 당하는 환란과 핍박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롬6:8절에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는" 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우리의 믿음이 모든 두려움과 의심과 연약함을 물리치고 승리케 하는 줄 믿습니다.

도탄에 빠져 있는 내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것도 죽음 이후에 찾아오는 부활의 영광을 예고하는 한 알의 밀알의 이 신앙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요10:10에 보니,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 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미쳤다, 귀신들렸다고 공격했습니다. 자신들이 들어보니 말이 안되는 소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수준만큼 이해하고 수용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국가고 기업이고 이웃이고 상대를 가리지 않고 그들을 뜯어 먹는 사람들도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도둑놈을 도둑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역적질 하는 놈을 역적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사기꾼을 사기꾼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세상에 생명을 주고 새롭게 하는 능력이 무엇입니까? 부활 신앙이요, 한 알의 밀 신앙입니다.


6. 참으로 놀라운 것은 본문 마지막 부분에 보면, 로마 백부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보고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35절에 보니,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고통과 그 부르짖음을 듣고 오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일어나는 어리석음의 현상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그 분의 죽음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 엄숙해지고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고난의 십자가를 보고 죽음 이후에 오는 부활과 영생이 깨달아지면 축복 받은 사람이지만, 세상을 보고 그곳에 빠지고 세상 사람들을 부러워하면, 그 사람은 영원한 패배자가 될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은 먼저 죽음을 통과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알의 밀알 신앙도 썩음이라는 죽음을 거쳐야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것이나 내 가정의 복음화를 이루는 것이나, 이 믿음의 공동체를 살리고 다시 부흥케 하는 것은, 내가 먼저 죽음을 경험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보다 먼저 십자가에서 자신의 죽음을 보여 주셨고, 또한 자신이 얻으신 그 부활의 영광을 우리와 함께 나누시기 위해서 기다리게 계시는 줄 믿습니다.


7. 우리가 믿음이 없을 때에는 죽음이 감당이 안 되었지만,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서고 보니 죽음은 결코 두려움도 고통도 아닌 부활로 나아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 고 하셨습니다.    

이 죽음 이후에 찾아오는 부활의 신앙으로 남은 우리의 영적 싸움에서 늘 승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랑하는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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