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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는 의가 없습니다(신명기9:1-8)
고영수 2021-04-10 추천 0 댓글 0 조회 591
[성경본문] 신명기9:1-8 개역개정

1. 이스라엘아 들으라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2. 크고 많은 백성은 네가 아는 아낙 자손이라 그에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 하거니와

3. 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

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5.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7.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 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

8. 호렙 산에서 너희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 땅에는 의가 없습니다(신명기9:1-8/2021.4.11.)


1. 어느 날, 다윗 왕은 전쟁터에 나간 우리야 장군의 부인을 데리고 잠을 잤고, 그것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서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이 무서운 죄인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내셨고, 그는  다윗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 한 가지 예화를 사용했습니다.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은 부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해서 겨우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를 자식처럼 키우고 있는데, 어느 날 부자에게 찾아온 손님을 위해서 자기 양을 잡지 않고, 이 가난한 사람의 하나 밖에 없는 어린 양을 빼앗아 요리를 해서 손님을 접대했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윗 왕은 대노하면서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기를 그 사람은 마땅히 죽임을 당하리라고 하였더니, 선지자 입에서 나온 말이 마땅히 죽임을 당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여호와께서 너를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고, 왕이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악을 행하기를,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아내로 삼았느냐는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앞으로 다윗 집안에는 칼이 영영 떠나지 않는 재앙을 당할 것이라 했습니다(삼하12장).

다윗의 문제점은 남들이 다 알고 두려워하는 죄를 자신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자신이 범한 죄악을 깨달은 후에야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2.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국이나 북한이 문제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정권을 잡은 자들이 문제라고 말하고, 일본과의 관계가 불편해서 문제라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가 망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진짜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문제점은 너무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절망적이란 말입니까?

유대인들은 입만 열면 조상자랑을 했습니다. 자신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직계자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 나라의 침략으로 혼혈 화된 사마리아인을 이방인처럼 대하고 멸시했습니다.

왜 이 사람들은 병적일 정도로 조상을 강조하고 족보를 따지고 자랑했습니까?

이유는 딱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처한 형편이 지나치도록 비참할 정도였기 때문에 조상이라도 자랑해야 자존심이 지켜 질 수 있으며 정신적 승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한 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스스로 자랑할 만한 아무런 의가 없었기 때문에 조상 아브라함이라도 자랑했는데, 왜 우리는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자랑하지 않습니까?

나에게 아무런 의가 없다면 내가 의지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라도 자랑해야 하는데, 우리는 의도 공로도 없으면서 스스로 무엇이나 된 것처럼, 기회만 있으면 자기 자랑하고 치약의 마지막 부분을 쥐어짜듯이 그렇게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가 절망적이라는 것입니다.


3. 한국에 사회주의 노선을 걷는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때, 백성들을 향해 무엇이라고 약속했습니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불평등, 불공정, 불의로 가득찬 세상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가 이번 서울, 부산의 보궐선거를 통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정권을 잡은 본인들에게는 평등, 공정, 정의는 애초부터 눈곱만큼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하는 말이 백성을 위한다면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입만 열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외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면서, 우리의 삶은 그분의 사랑을 짓밟고, 그 분의 나라를 허물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이유는 한 가지,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가운데는 지금까지 공의로움이나, 의로움, 정직함이라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들은 목이 곧은 백성, 다시 말해서 교만과 고집이 하늘을 찌르는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의 의로움에 힘입어 살아온 인생이었습니다.


4. 이 세상에서 의는 없습니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공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넘쳐나는 것은 불의와 탐욕과 분쟁뿐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내가 하나님 앞에 의롭기 때문에 또는 내가 정직하고 공로가 있기 때문에 나를 축복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축복하시고 여기까지 함께 하시는 이유는 단 하나, 본문 5절에 기록된 것처럼,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시" 는 이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는 내가 의롭거나 공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그 분의 의를 보시고 우리를 축복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롬3: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절에는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 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19절에 보니,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의도 없다는 바로 이것이 이 시대를 절망 상태로 빠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 왕이 끔찍한 죄를 범하고도 망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은 죄로 말하면 다윗은 반드시 망하고 버림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지은 죄를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붙잡았기 때문에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사람들은 말하기를, 아낙 자손을 대항하여 이길 자가 없다고 했지만,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앞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성들과, 그 안에 살고 있는 거인 족속을 보기만 해도 두려움에 빠집니다.

나보다 강한 자 앞에서 이스라엘은 낙심하고, 나보다 뛰어난 자 앞에서 우리는 작아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해도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내 대신 싸워주시는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5. 민13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12정탐꾼을 보내 그곳을 탐지하게 하였고, 40일 후에 돌아온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32-33) 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은 애급에서 나온 것을 크게 후회하였고, 땅을 치며 통곡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도리어 담대함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고 하면서,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민14:9).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빠졌을 때, 어째서 이 두 사람은 담대함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두려움을 모르는 자는 그 안에 하나님의 의로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보고 듣는 것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제가 항상 교회 올 때에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항상 빠찡고 옆을 지나오는데, 그 길에는 항상 너저분한 사람들이 나와서 담배를 피우거나 큰 소리로 전화를 걸거나 멍청하게 앉아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왜 이 사람들은 자기 하고 똑같은 사람들이나 자기보다 못난 사람들 틈에 끼어 돈과 시간과 젊음을 허비하면서 이 귀한 인생을 낭비할까 하는 생각입니다.

늘 보고 듣고 만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니 앞으로의 인생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런 곳에 드나드는 것 자체가 제 자신을 학대하고 자학하고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내가 성장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나 보다 나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6. 문제는 우리가 세상을 이기고 모든 두려움을 넘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안에 하나님의 공의로 충만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의인으로 자처하거나 인정받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공의에 전연 맞지도 않으며 맞출 수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깨끗하고 정직하고 칭찬을 받아도 의로운 자의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이유는 내 안에 조상들이 범한 원죄와 스스로 지은 자범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죄가 우리 안에서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을 가져다주며, 삶에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처럼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제 휴대폰은 우리의 삶에서 24시간 떠날 수 없을 정도로 필수품인데도, 내가 만들 수 없습니다.

내가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돈을 주고 내 소유로 만들고 사용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몸부림을 쳐도 의인이 될 수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을 내 안에 영접함으로 그 분의 의가 내 안에 머물도록 하면 나는 저절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의가 아닌 그 분의 의를 힘입어 나는 의로운 자가 되고, 의로운 자의 삶을 살고, 의로운 일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믿는 믿음의 세계요,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요1:12) 다고 하였고, 사도바울은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 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행13:39) 이라 하였는데,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내 안에 자리 잡을 때, 그 분의 공의가 내 안에 살아 움직이니 온갖 두려움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7. 지금 우리가 온갖 죄를 범하고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도 심판을 받지 않고 은혜의 삶을 살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 그의 의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빠져 울고 있을 때에도, 그들에게 소망을 메시지를 주며, 그들의 연약한 마음에 믿음의 확신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나름대로의 의로움과 정직함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본문에서 반복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는 공의도 정직함도 없으며, 도리어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낙 자손을 보고, 거대한 성벽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던 것은 자신들이 약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상대가 지나치게 강하였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의로움 보다는 자신들의 의와 자신들의 공로를 더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이기고, 점령할 수 없는 성을 점령하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공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 은혜라는 것입니다.

메리 제임스는 73년의 생애를 살면서 지금까지 애창되고 있는 여러 찬송 가사를 지었는데, 494장의 내용을 보면, 「빈손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두와 주심 바라고, 생명샘에 나가니 나를 씻어 주소서」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빈 손이라는 의미는 아무런 공로도 의로움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빈손의 인생이라도 그 손으로 십자가를 붙들면 승리를 얻으며 영생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8. 이스라엘은 이미 40년 전에 아낙 자손을 보았고, 그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에 애급에서 나온 것을 후회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마음으로는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시고,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첫 걸음은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고, 그 십자가의 의가 내 안에 머물며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을 몰아낼 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육체의 정욕을 이겨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롬5:1)다고 하였으니, 오늘 우리 앞을 가로막는 아낙 자손과 그 성읍들이 있습니까? 오늘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의로운 왕이시니, 그 분을 내 안에 모심으로 그의 의의 능력으로 모든 두려움과 불신앙을 몰아냄으로 가나안의 영원한 승리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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