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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서 건져낸 아이(출애굽기2:1-10)
고영수 2021-05-08 추천 1 댓글 0 조회 563
[성경본문] 출애굽기2:1-10 개역개정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물에서 건져낸 아이(출애굽기2:1-10/2021.5.9.오전)


1.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온 세상이 고통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일본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오사카가 가장 심각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고, 해외의 선교사님들 가운데서 코로나로 위기 상황 가운데 빠져 계신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특별히 복음의 최전선에서 수고하고 계시는 선교사님들과 그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를 통해서 보는 이 세상은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 중에 제가 염려하고 있는 것은, 첫째로, 4차 산업혁명이 코로나로 인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가속도를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하는 사물인터넷을 모르면 그야말로 문맹인이 되며, 21세기 문명 사회를 바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아마 한 세대 쯤 지나고 나면 중세 시대처럼 이 세상은 귀족과 노예만 남을 것입니다.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평생의 삶을 보장 받을 만한 그런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고용구조가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싱글로 평생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넘쳐 날 것입니다.

셋째는, 기독교 신앙의 위기입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신앙에 거품이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며 선도해 나가는 기독교가 아니라 이제는 제 자신도 지켜낼 수 없을 정도로 교회와 우리가 연약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성도들의 가정에서 제대로 된 신앙이 계승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가정의 위기입니다. 

이런 고통과 위기 속에서 나와 우리 자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입니다. 주님의 몸이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중심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고, 오늘은 어버이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가정이 먼저 바로 서야 주님의 몸 된 교회도 든든히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들의 가정은 어떻게 해야 믿음을 지킬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부모들이 믿음의 자녀를 제대로 키워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는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본문의 말씀은 모세의 이야기입니다. 모세를 이해하려면 먼저 애급이 역사에서 어떻게 히브리민족이 애급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왜 하나님은 그들을 애급에서 건져내셨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한 때, 애급에는 셈 계통의 아시아인들이 침략해서 힉소스 왕조를 건설하여 그들이 약 1세기 반에 걸쳐 애급을 통치하였고, 그 시기에 요셉은 애급에 노예로 팔려간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이 국무총리로 애급을 통치할 때, 야곱은 그 가족을 데리고 애급으로 이주하였는데, 그 때가 기원전 1876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1:8절에 보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급을 다스리더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하모세(Ahmose)가 셈계통의 힉소스 왕조를 몰아내고 제18왕조를 세우며 가장 강력한 국가를 만들었을 때의 이야기로, 야곱 집안을 우대했던 힉소스 왕조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제 19왕조가 시작되면서 약 1세기 동안 전성기를 이루었고, 그 때의 왕이 람세스(Ramses)로 그는 무려 66년간을 통치했습니다.

힉소스 왕조를 무너뜨린 아하모세의 손자인 투트모세(Thutmose) 1세가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기원전 1526년에 태어났고, 이스라엘의 출애급은 모세가 81살이던 기원전 1446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힉소스 왕조를 무너뜨린 아하모세 1세 때부터 애급 안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과 관계된 모든 기록을 없애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430년간의 애급의 역사를 찾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3. 문제는 역사나 기록이 아니라 모세가 애급에서 태어날 때 무슨 일이 있었으며, 하나님은 그 가운데 이스라엘을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에 애급은 두 번 다시 외세의 침략으로 자신들이 억압을 받고 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애급 안에 있는 이방 세력들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그 첫 번째로 번성하는 히브리인들을 억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노예로 삼아 강력한 방어력을 가진 국고성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이 힘들수록 히브리인들은 더욱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시도한 것이 히브리인들이 낳는 남자 아이는 무조건 죽이는 것입니다.

이 일을 산파를 통해서 시도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산파들이 오히려 아이들을 살렸고, 그래서 이제는 군대를 동원해서 갓난아이들을 잡아 강물에 던져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인 아므람과 요게벳(출6:20)은 아이를 석 달 동안 숨겨 키웠습니다.

왕명을 거부하고 아이를 몰래 키우는 것은 가족의 죽음은 물론이고 친척들에게도 위협이었습니다.

남들은 왕명이 두려워서 제 아이를 지켜낼 수 없었는데, 왜 그들은 이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까?

본문 2절에 보니 모세가 잘 생긴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잘 생긴 것은 좋은 일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잘 생겼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토브로 좋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매일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여기서 같은 토브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들은 모세를 믿음의 눈으로 보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신세 한탄을 하면서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강물에 버렸겠지만, 그들은 모세를 보고 하나님이 이 아이를 위해 예비하신 어떤 뜻이 있음을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석 달을 숨겨 키웠지만 아이의 울음소리에 한계를 느꼈고, 그래서 고민한 끝에 작은 상자를 만들어 아이를 나일 강의 갈대 사이에 띄워 놓기로 하고, 이 아이를 위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그것을 지켜보기로 하였습니다.


4. 히브리인이 애급에서 아들이 태어나면 제 자식이라도 반드시 죽여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법이고 이것이 애급에 사는 이스라엘의 운명이었고, 그들에게는 이것을 거부할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담겨진 작은 상자는 떠내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갈대 사이에 두었고 그것을 지켜보았다는 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상자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배가 아닙니다. 그저 물 위에 떠 있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노아의 방주와 같은 것입니다. 노아도 말이 배를 짓는 것이지 실제는 거대한 상자였습니다.

노아나 모세의 부모가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신들을 위해 스스로의 의지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구원과 그 분의 뜻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구원을 기다리는 자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당시 6살 쯤 되었는데, 멀리서 이 갈대상자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강가에 나타난 사람은 아멘호텝 1세의 무남독녀 공주인 핫셉투스(Hatshepsut) 였습니다.

그녀는 법적으로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1순위였지만, 투트모스 2세와 결혼하고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대결했던 왕은 아멘호텝 2세(재위기간 B.C 1448-1424)입니다.

공주 핫셉투스는 애급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일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딸 하나를 두었지만 얼마 살지 못해 어린아이로 죽었기 때문에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6절에서, 갈대 상자를 열어 본 순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모성애가 발동하였고, 그래서 히브리인임을 알면서도 자기 아들로 삼을 정도로 모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이런 상황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누이 미리암은 재빨리 공주에게 달려가서 젖먹이를 구하는지 물었고, 그녀는 허락을 받아 모친 요게벳을 유모로 불러왔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요게벳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제 자녀를 자기 품으로 되찾아 오면서, 그 아이를 젖 먹여 키우는데 왕궁으로부터 정당한 삯을 받으며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5. 모세는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비참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부모인 아므람과 요게벳의 마음을 먼저 감동 시켰고, 그 다음에는 왕의 공주를 만나게 하시고 그녀의 마음을 감동케 하여 왕궁의 왕자로 자랄 수 있게 만든 것은 전부 하나님의 예비하신 은혜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놀라운 사건이 레위 집안의 믿음을 가진 부모를 통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모세의 사건을 통해서, 사람이 그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부모를 통해서 그 자녀를 축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남들은 왕명에 의해서 자녀의 생명을 빼앗겼지만, 그들은 잃은 생명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예외 없이 히브리인으로 태어나면 반드시 노예의 신분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아들은 애급 왕궁의 왕자로 보내고 40년의 세월을 그곳에서 애급의 모든 학문을 터득하고 최고 권력인 통치자의 능력을 배양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계획이 아니라 믿음의 가정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부모가 제 자녀를 자신의 뜻대로 키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누구나 내 자녀는 아름답고 건강하고 지혜롭고 행복하고 성공하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출애급기와 신명기를 읽어보면, 자녀들이 받을 축복과 능력은 먼저 믿음의 부모를 통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하였고, 또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34:7) 고 하였습니다.


6. E.Q 감성지능이라는 책을 쓴 대니얼 골먼은 열차전복 사고로 인해 일가족이 강물 속에서 죽음의 사투를 벌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린 딸 안드레아는 뇌성마비에 걸려 흴체어에 의지해서 살던 중, 가족과 함께 사고를 만나 강물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는 강물에 빠진 딸을 살리려고 필사적으로 노력을 했고, 마침내 어린 딸은 구조되었지만, 그러나 그 부부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놓고 뇌성마비의 딸을 살린 것은 후손을 남기기 위한 인간의 동물적인 본능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폄하하거나, 건강한 사람이 살아나야지 왜 뇌성마비의 딸을 살렸느냐는 식으로 비판을 했다고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행하는 것은, 어떤 가치관이나 환경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하는 행동이 아니라, 자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뜨거운 마음, 그것 하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참 사랑은 가치나 이해를 따지지 않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하나님은 절대로 자기 품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보내시지 않았을 것이고, 십자가에 달려 고통하며 죽도록 내버려 두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때, 자신의 거룩함도 공의로움도 다 내려놓으시고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셨기에, 이 같이 죄인의 괴수가 된 우리가 믿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믿음과 그 사랑은 100%의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만들고, 생명을 건질 수 있는 것은,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7. 히11:23절에 보면, 모세의 부모인 아므람과 요게벳은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 다고 하였고, 이런 믿음의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 모세 또한 비록 왕궁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 고 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외에도 성경의 대부분의 사건은 인간의 상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당시의 믿음의 사람들이 만났던 위기 상황에 대해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롬4:18) 다고 하였고, 그래서 그런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환란과 박해 속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21세기의 문명에 빠져 세상이 주는 쾌락의 노예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무런 거부감이 없이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생명을 빼앗아가는 나일 강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믿음의 부모들조차 제 자녀들을 그곳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너나 할 것이 없이 다 중독이 되었고, 이제는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삶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4:4) 고 하였고,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1요2:15) 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세가 왕자의 직분을 버리고 왕궁에서 떠난 이유가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8. 결국 부모의 신앙이 우리 자녀들의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명도 환경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이 내 가정, 내 아이를 위해 예비하신 은혜가 있고 계획하신 뜻이 있다고 믿으면, 우리도 모세처럼 물에 빠진 아이라도 건져내어 축복의 자녀로 만들 수 있으며,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귀하게 쓰임 받는 축복의 주인공으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주님의 은혜 안에서 그런 가정, 그런 부모, 그런 자녀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가정과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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