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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은 지파(신명기10:1-11)
고영수 2021-05-15 추천 0 댓글 0 조회 665
[성경본문] 신명기10:1-11 개역개정

1.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궤 하나를 만

2.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쓴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너는 그것을 그 궤에 넣으라 하시기로

3. 내가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고 처음 것과 같은 돌판 둘을 다듬어 손에 들고 산에 오르매

4. 여호와께서 그 총회 날에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

5.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서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

6. (이스라엘 자손이 브에롯 브네야아간에서 길을 떠나 모세라에 이르러 아론이 거기서 죽어 장사되었고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그를 이어 제사장의 직임을 행하였으며

7. 또 거기를 떠나 굿고다에 이르고 굿고다를 떠나 욧바다에 이른즉 그 땅에는 시내가 많았으며

8. 그 때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 궤를 메게 하며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으니 그 일은 오늘까지 이르느니라

9. 그러므로 레위는 그의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

10. 내가 처음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렀고 그 때에도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 너를 참아 멸하지 아니하시고

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서 백성보다 먼저 길을 떠나라 내가 그들에게 주리라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에 그들이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하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은 지파(신명기10:1-11/2021.5.16.오전)


1. 지난 2월 24일, 충북 제천의 어느 마을 회관에서 67세 된 노인이 자살을 했습니다. 휴대폰에 남겨진 유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농사에 필요한 중고 트럭을 사기 위해서 중고 자동차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마침 원하는 차가 싼 값에 나온 것을 보고 담당자에게 연락을 한 뒤, 3백만 원을 들고 인천으로 갔습니다. 버스 터미널에서 만난 업자는 갑자기 그의 눈을 가리고 어디론가 끌고 갔고, 그곳에서 문신을 새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휴대폰과 면허증을 빼앗기고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여기 저기 알 수 없는 많은 서류에 싸인을 하게 했고, 가져간 3백만 원은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고, 결국 다 썩어 빠진 엉뚱한 차량을 7백만 원에 강매당해 돌아왔는데, 한 달 만에 자살을 한 것입니다. 친척이나 이웃 사람들은 일을 하기 위해서 자동차까지 사러간 사람이 갑자기 자살을 할 리가 없다고 했고 경찰이 수사를 한 결과, 이 사건에 연루된 26명의 조직 사기단을 체포했고, 같은 수법으로 이미 50여명에게 6억 원에 이르는 돈을 갈취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의 휴대폰에 남긴 유서를 보면, 많은 서류에 사인을 하게 한 것은, 아마 일수 돈을 쓴 것처럼 조작한 서류일 것이라 하면서, 이런 일로 인해 나는 죽음을 강요당했으니 조사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노인은 7남매 중에 2번째로 태어났지만, 몸이 허약한 형님 대신에 동생들을 돌보느라 어려운 살림에 장가도 못가고 집도 없이 마을회관에서 살았던 것이고, 마을을 위해서도 항상 앞장을 서서 헌신적으로 일하시던 분이라고 합니다. 작년에 일어난 양모에 의해 죽임을 당한 16개월 인생인 정인이 사건 이후로 분노를 조절하기가 어려운 범죄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온갖 더러운 탐욕을 가지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데, 이런 사람들을 내버려 둔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욕심에 끌려 하나님을 떠나 범죄한 이래로, 인간의 본질은 누구나 죄로 인해 더러워지고 죄로 오염된 사람들이 이 세상을, 고통을 더하는 장소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우리는 남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부패하고 더러운지 인정하고 하나님께 그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결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도 없으며, 하나님의 축복과는 전연 상관이 없는 성경이 말하는 회칠한 무덤과 같은 존재로 살다가 그 죗값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교회 나와서 죄에 대해서 설교하는 것을 듣기 싫어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 분의 위로를 받고 기쁨을 회복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세상에서 받은 상처가 많고, 많은 허물로 인해 망가졌기 때문에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 가까이에서 관심을 가져 주고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자 쉽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주님의 위로가 값지고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은 물론이고 누군가의 도움과 위로를 받기를 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왜 우리가 지금 이런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왜 내가 이렇게 상처를 입고, 왜 내가 고통 중에 빠져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 더 캄캄하고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그래서 이런 근본적인 인생의 문제가 무엇이며, 우리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모세가 십계명을 다시 받은 것과, 제사장 아론이 죽어 그 아들 엘르아살이 그 직분을 이어받고, 그리고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는 특별한 사명을 부여 받은 그런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12지파 가운데서 왜 레위 지파가 하나님께 택함을 입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3. 모세가 두 돌 판을 준비해서 호렙산에 올라가 두 번째로 계명을 받았는데, 왜 똑같은 계명을 반복해서 받아야만 했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가서 계명을 받고 있을 때, 백성들은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하면서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다 쓸어버리고, 너를 통해 큰 나라를 세우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불같은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출32:12) 하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진노를 멈추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이스라엘의 실상을 보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의 말씀 판을 집어 던져 깨트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받은 계명의 돌 판은 이스라엘의 범죄인 우상숭배로 인해 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돌 판을 준비해서 다시 계명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4. 이 때에, 모세는 백성들을 향해 말하기를,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출32:26) 고 하였고, 그 때 레위 자손이 다 모여 모세에게로 갔고, 모세는 그들에게 칼을 들고 온 진영을 왕래하면서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27)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거역하면서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은 그래서 그 날에 약 3천명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두고 성경은 레위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출32:29절에 보면,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하였습니다.

본문에는 그 당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없지만 출애굽기에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사실 이 부분은 해석하기가 매우 힘든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죄가 크다고 한들 어떻게 자기 형제와 이웃을 제 손으로 죽일 수 있겠습니까? 과연 세상 사람들이 이런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듣고 이미 용서하시기로 하였는데, 왜 모세는 이런 행동을 합니까?

그러나 이 말씀을 잘 살펴보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사로운 인정을 가지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잘못 해석하고 판단하여 2차적으로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는 우상숭배에 대한 죗값이 전 이스라엘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속히 책임이 있는 자들을 처단했습니다. 그 일을 하나님께 헌신된 레위지파를 통해 해결했습니다.


5. 사람들이 죄 짓는 일에 담대한 이유는 양심에 화인을 맞았기 때문이고,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도 죄를 짓고 나서 회개하면 하나님이 다 용서해 주신다고 쉽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출32장을 보면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안일하고 어리석은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있다고 모든 상황이 끝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출32:25절에 보면,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 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애굽의 송아지 신을 만들어 그것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신들의 주인으로 만들었으니, 이보다 더한 부끄러움과 수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수치를 씻기 위해서 모세는 거룩한 분노로 레위인의 칼로 범죄한 지도자를 처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레위인들은 그 범죄자가 자기 식구이든지 혈연이나 친구나 이웃이라도 용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모세가 진문에 섰다는 이 말의 의미는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정당한 재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가운데서 레위인의 칼날을 피하려고 저항한 흔적이 없다는 것은, 그들이 모세의 권위와 그 법적인 집행이 정당함을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6. 문제는 레위인들입니다. 비록 하나님 편에 서서 이스라엘에게 법적으로 정당한 처형을 집행한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제 식구는 물론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칼로 죽일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레위지파는 이 불가능한 일에 자원하였고, 그들은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없이 이 일을 집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충성이 사람이 아닌 거룩한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범죄한 사람들은 내버려 두면, 또 다시 백성들을 더 큰 잘못된 길로 유혹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불같을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이스라엘의 장래를 위해서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섭다고 하지만, 이 코로나는 육체를 망가뜨리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을 침해하는 우상숭배의 범죄는 우리 육신과 영혼을 다 함께 멸망으로 몰아넣는 영원한 죽음의 독약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 무섭고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매일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나는 어느 편에 설 것이며, 나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무엇을 먼저 선택할 것이며,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해 내 자신을 드려야 할 것인가? 바로 이것입니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가운데 만연한 죄를 끊어버리고, 우상숭배로 인한 영원한 부끄러움을 끊어버리기 위해 헌신되었고,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인간적인 감정에 끌리지 않고 온 이스라엘을 위해 죄를 단죄하는 결단을 내림으로, 그것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서, 본문 8절에 보니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특별한 사명을 받은 축복의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끔 보는데, 이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죄에 대하여 관대하며, 특히 자신의 악행에 대하여 너그럽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5:30) 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계명보다 더 강력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온 이스라엘을 살리기 위해서 그들 가운데 3천명을 찍어 던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가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는 그런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7. 다니엘은 미래 사회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12:4) 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흘러넘치는 지식과 정보 전달을 위해서 매일 대하고 있는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뉴스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해주고 있습니까? 

최신의 소식이나 가치 있는 정보입니까? 지성인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이 매일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은, 지금 이 세상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 우상숭배와 탐욕에 빠진 사람들에게 임하는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또한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지 그런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방송을 제작하는 사람들이나 신문을 편집하고 찍어내는 사람들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혜를 얻은 사람들만이 볼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어제의 내 잘못된 결단이 오늘의 내 삶을 고통하게 만들고, 오늘의 잘못된 선택이 내 미래를 영원히 망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을 위해 내 신앙을 조금 양보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의로움에 눈을 감아 버리고 마음에 원치 않는 죄를 선택한다면 이것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된 일에는 부모 형제 친구라도 거절할 줄 아는 용기가 있어야 이 험난한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용기를 낼 수 없다면, 그것은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8. 하나님은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의로운 일에 앞장서는 레위지파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그 사랑하는 제자들을 향해,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9) 고 하셨습니다. 

죄인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늘 똑같은 일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변화가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성경을 읽으면, 전에 읽었던 그 부분을 다시 읽으면, 더 큰 은혜를 받고 전에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는데,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때 마다 늘 새로움을 느끼는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전에 들었던 말이고 이미 듣고 다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혹에 걸리고 이단의 손아귀에 잘 빠지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 고집,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 그래서 늘 성령님과 싸워서 내가 이기는 삶을 살게 되면, 늘 좋은 것은 놓치고 항상 꼬리만 잡고 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히4:12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 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의 칼을 차고, 먼저 내 안에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더러운 우상이나 정욕이나 탐욕을 말씀의 칼로 찍어내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다면, 비록 우리에게는 땅이나 재물이나 명예나 지위가 없을지라도, 우리와 우리의 자녀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적 레위인으로서 영원히 하나님을 곁에서 섬기는 승리자가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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