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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공의만을 따르라(신명기16:18-22)
고영수 2021-09-11 추천 0 댓글 0 조회 732
[성경본문] 신명기16:18-22 개역개정

1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

19.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20.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21.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든지 아세라 상을 세우지 말며

22.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너는 공의만을 따르라(신명기16:18-22/2021.9.12.오전)

 

1. 영국 귀족 출신인 백만장자 피츠제럴드에게는 자식이라곤 어린 아들 하나 뿐이라 금지옥엽(金枝玉葉),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아이가 10살 때,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아들도 시름시름 앓다가 20살이 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피츠제럴드의 재산은 계속해서 불어났고, 그는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재산을 유명한 예술품을 구입하는데 쏟아부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피츠제럴드도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예술작품을 남김없이 경매에 부치라고 하였고, 온 세상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첫 경매 작품은 어느 무명화가가 그린 피츠제럴드의 아들의 초상화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입찰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림이 너무 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노인이 이 그림을 사겠다고 나섰고, 이 그림은 단돈 1파운드에 팔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경매인은 입찰을 중단하고 피츠제럴드의 유언장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든지 내 아들의 초상화를 사는 사람이 이 모든 예술품은 물론이고 내 전 재산을 다 소유할 것이라고 하였고, 경매는 그렇게 끝났지만, 그 아들의 초상화 그림을 산 사람은 그 아들이 살아 있을 때, 지극 정성으로 그 아들을 돌보며 사랑했던 하인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설명하는데 아주 적절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누구든지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는 이 말씀처럼, 늙은 하인은 이미 죽은 주인의 아들 초상화만 가졌는데, 그 주인의 전 재산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도 살아 계시며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영접하면, 지금부터 영원토록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2.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셨고, 우리가 이 사실을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과 영생을 얻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도 그런 믿음이 우리 삶의 현실에서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물론이고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필요하고 그때 가서야 만나는 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삶은 항상 내가 계획하고 내가 실행하고 내가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서 잘하면 인생이 내가 원하는대로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우리의 이런 생각이, 이와 같은 유사한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속죄의 은총과 함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1:8) 주셨으며, 또한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1:18-19) 라고 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이 세상의 것은 물론이고 하늘의 있는 영광과 능력으로 우리를 도우시고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며, 이 일을 위해 구체적으로 우리를 어떻게 도우시고 축복하시는지 본문의 말씀을 통해 깨닫기를 원합니다.

 

3. 본문의 내용을 보면, 두 가지 명령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첫 번째 내용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것으로 공의를 행하고 공의를 따르라는 말씀이고, 둘째는 매우 조심해야 할 것으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을 섬기지 말고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시는 역사는 항상 두 가지 사실에 근거를 두고 계십니다.

그것은 사랑과 공의입니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죄 때문에 영원한 죽음에 이른 인생을 살리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동시에 이 일을 아들의 죽음으로 대속케 하는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사랑과 공의 그 자체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삶도, 우리 인생의 목적도 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기초할 때, 우리 인생은 성공하는 인생이요 복 받은 삶이요, 하나님 자녀된 자의 행복을 누리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예외없이 유혹에 약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돈, 명예, 권세의 유혹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님이 시험 산에서 기도하실 때,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유혹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이 모든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의 계시된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을 보면 이 세 가지에 더하여 이성의 유혹이 아니라 스스로 이성에 대한 탐욕까지 더하여, 자신은 물론이고 어린 자녀들과 온 세상을 다 망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이런 것을 가까이하고, 이런 유혹에 빠지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본문을 살펴보면, 모든 백성에게 해당하는 말씀이지만 특히 지도자들을 향한 내용입니다.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하면, 1절에 보니 공의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면서 외쳤던 슬로건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2017년 5월 10일에 문재인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게」를 외쳤지만, 지금 온 세상은 불평등과 불공정과 불의로 가득 차고 말았습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까? 

정권을 잡은 자들의 탐욕이 지나쳤고, 그들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지도자들에게 백성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 자신이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자랐고 불의를 배우며 불공평하게 대우 받으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보고 배운대로 행동하기 마련인데, 그 부모들의 시대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환경에서 살았다 해도, 그들이 늘 사람들 앞에서 외치는 것처럼 공의를 원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지금쯤 세상은 지금보다 공의롭고 공평한 모습이 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의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이익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내 삶과 인권이 소중한 만큼 남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19절에 보면 지도자들에게 재판을 굽게 하지 말라고 하면서, 재판이 잘못될 수 있는 원인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사람을 외모로 본다는 것이고, 둘째가 뇌물이라는 것입니다.

 

5. 사람을 외모로 본다는 이 말은, 상대방이 권력자이거나 나와 친밀한 관계이거나 이익을 함께 공유하는 같은 집단의 사람임을 알고 판결을 잘못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뇌물을 받아 판결을 잘못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9절에서 굽게 한다는 이 말의 의미를 보면, 늘이다, 펴다, 기울이다 구부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요즘 법원에서 하는 행동들이 이 단어에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살다보면 선물을 주고 받을 수 있는데, 재판관이 받는 선물과 뇌물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지금 하고 있는 재판에 영향을 주게 된다면 그것은 뇌물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20절에 보니,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고 하였는데, 여기서 네가 살겠고라는 이 말은 재판관이 공의로 재판을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그에게 임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와 민족 가운데서도 재판관을 향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고 계신다는 것을 지도자들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신1:16-17절에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재판은 쌍방간에 공정해야 하며, 결코 외모나 지위나 권력이나 재물에 끌려가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스스로가 공의로우신 분이고 진리의 말씀으로 정의를 세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공의를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의 자녀라면 당연히 불의를 미워하고 공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고 사랑한다면, 우리는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능력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6. 사람이 살면서 매우 조심해야 할 것은 두 번째로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원인은 사람의 욕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욕심이 많을수록 사람은 우상을 따르게 되는데 처음에는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갈수록 우상을 따라 가다보면, 길을 잃게 되고 무력함과 절망감이 갈수록 커지고 그래서 마지막에는 그 우상과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정년으로 회사를 은퇴하는 건축사가 있었습니다. 사장은 그의 공로를 칭찬하면서 마지막으로 집을 하나 지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겉으로는 즐겁게 수락했지만 속으로는 마지막까지 부려먹는 사장 때문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불평불만 하면서 대강 집을 지었는데, 사장은 말하기를 이 집은 당신을 위해서 주는 선물이라고 하면서 집 열쇄를 그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 되도록 믿음으로 살고, 의로움으로 살아야 합니다.

특히 지도자라면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서 모든 백성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면서,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잘못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 40년을 거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그들의 생존능력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군사력이었습니까? 경제력이었습니까? 아니면 외교력에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법을 지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의를 행할 때, 백성들은 편안하고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든든히 서갈 수 있었습니다.

우상은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지옥에 던져지도록 만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영원한 축복의 반석 위에 세우는 줄 믿습니다.

 

7. 사도바울도 오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말씀 뒤에 보니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 (롬12:1)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촌의 21세기는 인류 역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이미 공의가 사라지고 살아계시며 지금도 역사하시는 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이것이 이 시대의 문제이며 고통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은 그 어떤 죄인이라도 용서받고 생명을 얻는 구원의 진리를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함으로 우리 안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주일의 이 예배를 중심으로 사는 것이 제대로 된 신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참 예배는 오늘 이 시간이 끝나고 저 문을 열고 나기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도 말하기를,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삼상15:22).

하나님의 공의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고, 하나님의 공의는 불의를 미워하고 사람들이 기뻐하는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한 이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절망과 고통에 빠진 이 세상의 능력이고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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