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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하고(로마서2:9-16)
고영수 2021-11-06 추천 0 댓글 0 조회 770
[성경본문] 로마서2:9-16 개역개정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하고(로마서2:9-16/2021.11.7.오전)

 

1.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하지만, 그러나 원한다고 그 행복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원하는 행복을 얻기 위해 밤잠도 자지 않고 수고하고, 남들보다 더 성실하게 살아도 변하는 것이 없거나 도리어 점점 삶이 비참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축적하고 사람들을 농락하고 속이면서 사회적 신분 상승을 이루면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을 볼 때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절망감을 느끼는 것도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기독교 신앙 세계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생각과 결심이 허무하게 무너지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나의 신앙생활은 관습에 젖어 마치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처럼 위선적이고 변화가 없는 그런 신앙생활에 빠지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인생이 연약하기 때문이고, 이런 연약한 인생을 마귀가 지속적으로 유혹하고 공격해서 우리를 영원히 멸망시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심 있는 성도라도 헛된 정욕과 세상의 유혹에 쉽게 무너지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대답이 창3:4절에 보면 나옵니다.

마귀가 하와를 유혹할 때, 무엇이라고 말하였습니까?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의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3:17)고 하셨는데, 마귀는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마귀는 반대로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누구의 말을 들었습니까? 창조주 하나님, 곧 인생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말을 믿지 않고 원수 마귀의 말을 믿고 먹어서는 안 되는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로 이야기하는데도 잘못된 마귀의 말이 옳다고 수용한 것입니다.

인간의 불행이나 성도들의 실패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복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금부터 영원히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2. 오늘 본문의 내용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둘 다 다 죗값으로 망한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몇 년 동안 다니엘기도회의 간증을 들으면서 공통적인 것 한 가지를 느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나서 말로 다 형용하기 어려운 인생의 긴 터널 속에서 고통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그런 고난을 통해 하나님 앞에 꼬꾸라지고 회개하면서 새롭게 거듭나서 그야말로 간증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 축복이고 은혜이지만, 언 듯 생각하면 왜 하나님이 그들을 끝까지 지켜 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삼상31장에 보면, 사울 왕가의 비참한 최후를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 그리고 말기수는 한꺼번에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었고(2), 사울 자신은 자살이나 다름없는 최후를 선택했고, 그의 시체는 죽어서도 조롱과 저주와 멸시를 받았습니다(9-10). 이런 경우는 다윗도 별로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충성된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고 우리야의 생명까지 빼앗았지만 나단 선지자의 책망이 있기 까지는 그것을 큰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 왕가는 씻기 어려운 수치와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왜 우리 인생이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일을 만나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도 여전히 아무 문제가 없는 생활이 반복되면, !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쉽게 잊어버립니다. 사울 왕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13장을 보면, 블레셋과 전투를 해야 하는데, 사무엘이 오지 않으니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제 마음대로 집행하고 말았습니다. 사무엘에게 크게 책망을 받았지만, 사울 왕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왕으로 군림하였고, 다윗을 괴롭히고 죽이려 하는 일에 열심을 내어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의 죄에 대하여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에 그야말로 도적같이 그 가정에 재앙의 폭풍을 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나도 다 잊어버린 일을 가지고 왜 하나님은 새삼스럽게 감춰지고 묵었던 죄를 들춰내서 재앙의 고통을 당하게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범해도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는 것은,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큰 사건이나 문제가 터져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다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에, 그래서 심판이나 책망이 당장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간증의 주인공들이 믿음의 승리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의 과거는 죄로 말미암아 일시적으로 큰 고난에 빠졌다는 사실이고, 또한, 그 고난을 통해 더 성숙하고 복된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축복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변화가 되었고, 그 간증을 듣는 우리는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된 자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원하시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죄로 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셔서 일시적인 재앙을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사울 왕의 경우와 다른 것은 비록 자기 죄로 고난은 당했지만, 하나님 앞에 눈물의 회개가 있었기에 화가 복으로 변하고, 고통이 영광으로 바뀐 것입니다.

가롯유다도 변화되고 새롭게 될 기회는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라도 영원히 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방인과 유대인의 다른 점과 공통점에 대해서 분명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유대인은 율법을 소유하고 그 율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깨달으라고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은 그런 율법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대신 주신 것이 양심이고, 이 양심은 자기 생각을 양심의 법정에 세워서 서로 송사하도록 만들어 선악을 판단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대인이든지 이방이든지, 세상 사람이든지 그리스도인이든지,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심판을 받아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한다는 사실입니다.

 

4. 그렇다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나 양심이 율법 역할을 하는 이방인이나 다 함께 그들은 율법을 지킬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인간은 무능하고 연약하고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영에는 환란과 곤고가 있" 다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환란과 곤고가 무엇입니까?

평안이 없고 억압과 근심에 잠겨 있는 것으로, 마치 여인이 해산하는 것과 같은 고통을 맛보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고통과 억압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율법을 다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처음부터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가진 유대인은 그것을 지킬 수 없어서 망하고, 율법이 없는 이방인은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망하는 것입니다.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문제는 이런 은혜를 입어도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 위에도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5. 그렇다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하나님 앞에서 살 방법, 재앙과 저주와 고통에서 구원받는 방법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16절에 보니,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 하신다고 했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켜 나의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날 대신하여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지킬 수 없는 율법을 그는 십자가를 통해서 다 이루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시고 영원부터 영원까지 거룩하신 분이요, 그의 본체는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 율법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를 향해 율법이 요구하는 그 의를 이루기 위해서 날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은 날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지만,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죄인 된 내가 우리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우리 죄가 그 분을 죽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죄의식도 없고, 가책도 없이 너무 당연한 듯이 하나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너무 뻔뻔하고 무정하고 부끄러운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런 그리스도인을 향해서 독일의 신학자 본 훼퍼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저서인 나를 따르라에서, "죄에 대한 고백이 없는 성만찬의 참여, 죄에 대한 회개도 없이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설교------, 성례전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값싸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본회퍼가 말하는 값싼 은혜는, 그리스도를 따라감이 없는 은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기를 거부하는 은혜, 성육신적 실천이 없는 은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이 없는 신앙은 그야말로 싸구려 라는 것입니다.

 

6. 사도바울이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는, 6:7의 말씀으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는 것입니다.

그래서 썩어질 육체를 위해서 심는 자는 반드시 그곳에서 썩어진 것을 거둘 것이지만,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심는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6:8) 고 하였습니다.

교회 출석하고 예배 한 번 참석하는 것이 그렇게 부담이 된다면, 더 이상 교회 나오는 것을 중지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시장바닥의 싸구려 물건처럼 그렇게 취급하는 것보다 더 나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감사 헌금 한 번 드리는 것이 그렇게 부담이 되고 힘든 일이라면, 하나님도 그런 헌금은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에 충만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이 무엇이 아쉬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싸구려 은혜로 취급하는 그런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시겠습니까?

지금 우리 주위에는 인종차별이나 인권이나 환경문제를 가지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들 자신도 스스로 주장하고 외치고 있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을 뿐 아니라 행할 능력도 없다는 것입니다.

 

7. 하나님의 기준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기준만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각 사람은 행한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고, 그래서 율법을 자랑하는 유대인도 죄 때문에 망하고,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도 죄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6).

이래 저래 다 죄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의 결과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그 어떤 죄도 없는 것처럼 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택한 백성인 율법을 자랑하는 유대인이라도 하나님은 죄에 대해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16절에서 말하는 핵심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사도바울처럼 나의 복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연약하므로 스스로 죄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며, 율법의 요구를 한 가지라도 이룰 수 없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너무 비참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를 위해 보내셨고, 십자가는 나 한 사람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요 희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믿고 고백할 뿐 아니라,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 앞에 드러내고 간증할 때,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사건은 나의 복음이 되는 줄 믿습니다.

죄는 그리스도인이라도 예외 없이 망하게 합니다.

회개도 없이 무조건 용서 받는 그런 잘못된 설교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그 죄를 기억도 하지 않으시지만, 회개하지 않는 죄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심판과 재앙을 내리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자랑하는 유대인도 죄 때문에 망하고, 율법이 없는 이방인도 죄 때문에 망하지만,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십자가 앞에 나아가서 모든 죄를 회개하고, 말씀으로 매일 새사람이 되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참 평안과 축복을 누리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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