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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유대인 (로마서2:25-29)
고영수 2022-01-22 추천 0 댓글 0 조회 732
[성경본문] 로마서2:25-29 개역개정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참 유대인 (로마서2:25-29/2022.1.23.오전)

 

1. 지난 15일, 남태평양의 통가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화산재로 솟구친 높이가 약 20킬로에 달했고, 그 규모는 반경 260킬로 정도였다고 합니다. 위성사진으로 보며 느낀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지구촌은 바로 이런 세상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코로나바이러스의 고통이 아직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 세상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한 채 이 지구촌을 계속해서 혼란과 두려움과 고통 속에 빠드리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처럼, 대도시 문명을 자랑하고 여기에 소망을 두고 있지만, 세상은 여전히 사람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문제는 왜 우리가 이런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이라면, 얼마든지 아름답고 평안한 그런 환경과 더 좋은 조건 속에서 사는 것이 당연한 것 같은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침에 눈만 뜨면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소망과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근심과 두려움에 빠뜨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과 소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그런 삶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우리 스스로 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을 떠난 우리에게 죄가 들어와서 그 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어 놓은 그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도리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영원한 저주 가운데로 몰아넣는 사망의 고통을 주는 이 죄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실정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공격하고 십자가의 복음을 조롱하거나 비판하고 있습니다.

 

2. 우리에게 진짜 원수는 죄를 틈타서 사망과 저주를 가지고 들어온 마귀인데, 사람들은 그 마귀에게는 순한 양처럼 순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교활한 마귀가 세상을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창세기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 시대와 같은 세상입니다.

정신 차려서 깨어 있지 아니하면 우리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고통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그의 축복을 받는 언약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지, 본문의 말씀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본문에서 유대인을 말하고 있는데, 유대인이란 누구며 어떤 사람들입니까?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자랑합니다. 이유는 그들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이 아브라함도 본래는 이방인이요 우상숭배 하는 이교도였습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고, 그들은 조상 때부터 달을 신으로 숭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시대를, 그 때의 세상을 어떻게 보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창6:5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신 것은, 땅 위에 사람은 물론이고 짐승들과 모든 호홉이 있는 것들을 다 쓸어버리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어난 사건이 노아의 홍수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홍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더 놀랍고 신기한 일을 계획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가?

 

3. 모든 생각이 항상 악한 이 인류를 죄로부터, 그 죄로 말미암은 고통 속에서 그들을 영원히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인 아람 사람 아브람을 찾아오시고 그를 통해 유대 민족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저주와 고통 속에 빠지는 것을 못본채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통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우리가 지은 모든 죗값을 대신하여 그를 십자가에서 대신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당신의 영원한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하나님이 아쉬워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마지 못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흉내만 내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태반이 넘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우리를 향해 쏟아부으신 그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대한 감격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나 대신에 내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는데, 그분에 대한 감사가 있으며, 그분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인 달을 숭배하며 온갖 죄악에 빠져 있던 그런 아브람을 찾아오시고 그를 구원하여 만인의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실 정도로, 그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가 오게 하실 정도로 죄인되었던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셨는데,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업신여기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무시한다면, 장차 우리는 어떻게 될지 한 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4.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자칫 우리를 오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 할례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내 삶에서 무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본문에서 율법이니 할례니 이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아무리 율법을 범하고 계속해서 위선적인 삶을 살아도 하나님이 만드신 율법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아무리 수고하고 희생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여 많은 계획을 포기 하고, 자식과의 약속도 없는 것으로 만들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거나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그들을 위해서 만든 것을 무효화하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자기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세 5경인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읽으면서 왜 하신 말씀을 또 말씀하고 반복하고, 반복한 것을 또 반복하시는지 옛날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 방식을 왜 그렇게 까다롭게 하셨는지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회사에 가보면, 대단히 위험한 물건을 취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원들이 자칫 잘못하면 사고를 당하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회사는 그런 물건을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물건을 만들어 낼 수도 이문을 낼 수도, 사원들을 고용해서 그들을 먹여 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그곳에서 일하는 사원들에게 매일 반복해서 위험 사항을 인지시키고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또 확인하고 또 점검하게 만듭니다.

 

5. 사람들은 아무리 위험한 것이라도 특별한 주의를 주지 않으면 조심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위험한 일을 반복하다 보면, 습관화가 되어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다가 큰 사고를 만날 때가 많습니다.

간단하게 만들고 간단하게 이야기 하고 너가 알아서 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중요성을 모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대충대충 넘어가다가 대형 사고를 만나는 것입니다.

모세의 형인 아론은 제사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평생에 가슴 아프고 제일 힘들었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의 두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두 아들의 죽음이 다른 것도 아닌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과정에 하나님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레10:2절에 보면, 그들이 성소에서 향로를 가져다가 불을 피울 때,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고 하였습니다.

한꺼번에 두 아들을, 그것도 제사장 위임식이 끝나고 나서 하나님 앞에서 죽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가져다 불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아론은 이렇게 끔찍하고 비참한 일을 당하고 나서야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무엇이며 그것을 침해하는 자가 당하는 벌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약 시대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즉시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만일 이렇게 중요하고 위험한 일을 대충대충 넘어간다면 매일 사람들이 때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불상사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관심이 없으면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고 염려하면 말이 많아집니다. 

 

6. 또 한 가지는 이스라엘에게는 12지파가 있었고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기업을 나누는 증에, 레위지파에게는 기업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나 성막관리 자체가 그들의 기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끝마다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라고 그들은 기업으로 받을 땅이 없으니 너희가 먹여 살리라고 귀찮을 정도로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데,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 목회자를 존경하고 섬기며 정성을 다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오면서 목사님의 선물까지 준비해 오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남다른 복과 은혜를 주시려고 그런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문제는 오늘 본문에서, 참 유대인이란 육체의 할례를 받는 자가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은 13살이 되면 성인식을 하는데, 이 행사를 가리켜 「바르미츠바」 라고 합니다.

바르는 아들이란 뜻이고, 미츠바는 계명이란 의미로, 계명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할례만 받으면 아무리 많은 죄를 지어도 다 용서받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할례받는 것은 이제부터 율법을 지킬 의무가 주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그들은 아무리 육체에 할례를 받아도 그것은 무할례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껍데기 육체가 유대인이라고 그들이 진정한 유대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혹시 할례를 백번 받아도, 율법을 지키기 못하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7. 그렇다면 마음의 할례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함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성령님은 우리 심령에 믿음의 인을 찍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도 유대인을 향해서,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렘4:4)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롬10:10에 보니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과거 유대인들이 할례를 통해 혈통적 유대인로 신분을 얻었다면,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고백과 그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영적신분의 변화를 이루는 이것이, 진정한 영적인 할례요 참 유대인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우리 마음에 믿음으로 할례의 인을 치고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안심하고 제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은 믿음으로 마음에 할례를 친 우리에게 복음의 새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받들고 섬김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행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교회 안팎으로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며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아니할 때, 하나님나라가 이곳에 임하고, 마음에 할례를 받은 우리를 영원한 자녀로 축복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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