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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줄 수 있는 것(요한복음17:1-10)
고영수 2022-04-09 추천 0 댓글 0 조회 684
[성경본문] 요한복음17:1-10 개역개정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당신이 줄 수 있는 것(요한복음17:1-10/2022.4.10.오전)

 

1. 2019년에 일어난 가평살인사건이라고, 남편을 죽이고 사망보험금 8억 원을 타내려고 이은해라는 31살의 부인이, 내연의 관계를 맺어온 다른 남자와 공모를 한 살인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면서 경찰은 달아난 범인들을 추적하고 있다고 합니다. 

경찰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번 사건을 포함해서 세 사람의 남자들이 그녀와 함께 있다가 의문사를 당했고, 당연히 보험금은 그녀의 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1998년에 와까야마에서 일어난 카레 독극물 사건으로, 하야시 마스미라는 37살의 보험외판원이 마쯔리에 모인 동네 사람 67명에게 아비산이라는 독극물이 든 카레를 먹여 4명을 살해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중독증상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에서의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의 만행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위해서라면, 가족이나 이웃의 생명까지 망설임 없이 빼앗아 버리는 그런 비정한 세상을 우리에게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웃에게 무엇인가를 나누어주고, 대가 없이 나의 소유를 내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흉악한 범죄자들처럼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재산은 물론 그들의 생명까지 빼앗고 불법을 자행하는 그런 모습에 이제 우리는 너무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알게 모르게 남들에게 나누어 주기보다는 받기를 더 좋아하고, 이웃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기보다는 그들을 이용하는데 길들여진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습니다.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고 얻고 누리는 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를 먼저 생각하고, 여기에 맞추어서 인간관계를 가지고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우리의 생각이나 이 세상의 풍조가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주신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람이 얼마나 귀하며, 그런 사랑을 받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구원받은 하나님의 참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오늘 본문은, 16장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고별설교를 하신 예수님이 17장에 와서 자신과 자신에게 속한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는 그런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내용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주었다는 단어입니다.

2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와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 다는 내용에서 시작해서 4절에는 "내게 하라고 주신 일" 이며, 8절에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이라는 내용들이 게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그에게 속하는 사람들을 보내 주셨고, 또한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으며, 아들만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아버지가 아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이 받으신 이 모든 것은 원래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었으며, 그것을 순종하는 아들에게 주셨다는 것과,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또다시 주었다는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1절에 보니 "때가 이르렀사오니" 하였는데, 이 때는 무슨 때입니까?

십자가의 길, 즉 인류를 구원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때야말로 가장 귀한 선물의 시간이고, 가장 기쁜 소식의 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그때는 죽음의 때요, 버림을 당하며 온갖 멸시와 고통을 다 받아야 하는, 가장 견디기 어려울 때가 온 것입니다. 이렇게 가장 힘들었을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1절에 보니,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였습니다.     

 

3. 요한복음은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이들에게 영생을 주는 이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때,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들이 죽는데 아버지가 영광을 받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는 곳에 내어주고 그의 죽음을 기뻐할 부모는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데, 어찌 창조주 하나님이 이런 일을 기뻐하실 수 있겠습니까?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말이 안 되는 이 일을 기뻐하셨고, 실제로 독생자의 죽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시는 목적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시고 영생하도록 만드셨지만, 어느 날,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인간이 반역하고 불순종함으로 죄가 가져온 영원한 죽음과 저주 가운데 빠져 육신이 죽어도 영원히 고통하는 존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실 일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창조주 하나님을 배신하고 죄로 망가진 인생을 깨끗하게 포기하고 새로운 인류를 만드시는 것과, 둘째는 그 망가진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재생하고 새롭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창작품인 인간을 쉽게 포기할 수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경험하지만 망가진 것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것을 고쳐서 새롭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많은 희생이 필요하고 그 가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뤄야 합니다.

더구나 두 번 다시 그런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더 많은 수고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4. 막12장에 보면, 포도원 농부의 비유가 나옵니다.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맡겨놓고 나중에 소출을 받으려고 종들을 보냈지만 그들은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리고 죽이면서 빈손으로 보냈습니다.

주인은 몇 번을 참으면서 마지막에는 아들을 보냈는데, 농부들 생각에는 상속자인 아들을 죽이면 이 포도원이 전부 우리 것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아들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포도원 주인은 그들을 응징하고 포도원을 되찾았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의 말씀은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십자가 사건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가면서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은 점점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고, 도리어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험악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재난과 분쟁과 무법천지로 혼란은 더해가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기븐(Edward Gibbon) 은 로마제국쇠망사를 썼는데, 그는 세계 최강의 로마제국이 멸망하게 된 이유 몇 가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혼의 급증입니다. 가정은 사회의 기초단위인데, 그 기초가 무너지면 다른 것들도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세금은 점점 늘어나면서, 세금을 국민의 환심을 사거나 잘못된 곳에 사용하는 것과,

셋째는 쾌락과 스포츠에 열광하면서 그것이 점점 광적이고 자극적으로 변해 버리는 것과,

넷째는 군비를 지나치게 증강하는 것과 다섯째는 기독교 신앙의 쇠퇴였습니다.

그 결과 인류 역사 이래로 최고의 문명과 힘을 자랑하던 로마제국은 야만족인 고트족과 반달족에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망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고통하게 만드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안에 있었지만, 로마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그래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을 더 좋아하고, 헌신하기보다는 이용하기를 좋아하고, 적은 것을 주고는 더 많은 것을 빼앗아가는 것을 처세술이라 생각합니다.

 

5. 십자가의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죽음이고 그래서 누구도 피하고 싶은 죽음인데, 예수님은 도리어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살리셨고,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기보다는, 아들의 희생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고 회복시키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십자가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었기에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아버지의 부끄러움이 되지만, 아들이 순종하는 것은 아버지의 자랑이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십자가를 향한 자신의 죽음이 아버지의 영광이 되는 것을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아들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은 사람들이 죄 가운데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원하셨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아니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서 그에게 모든 것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2절에 보니 아들에게 권세를 주셨다고 하였고, 5절에 보니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받은 권세는 믿는 모든 자에게 영생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만드는 권세였고, 잃어버렸던 그 어떤 것이라도 다 회복케 하는 권세였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나누는 이 영광은 이미 우리가 속해 있는 주님의 몸된 이 교회가 함께 받아 누리는 영원한 영광인 줄 믿습니다.

 

6. 본문 4절, "내게 하라고 주신 일" 이란, 아버지가 주신 십자가의 사명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하였습니다.

아무리 망가진 인생이라도, 죄로 인해 더러워진 인생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아들을 희생하면서 새롭게 하시는 그 은혜를 우리는 입은 것입니다.

그리고 6절에 내게 주신 자들이란, 예수님의 제자들을 포함하여 오늘 우리 모두를 일컫는 말이며, 이것은 우리가 원래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너희도 예수님처럼 너희 자신을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 내어놓고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제자들의 발도 씻어 주셨고,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 모두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새로워질 수가 없으며 고칠 수도 회복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곳에 자신의 몸 된 이 교회를 주셨습니다.

이 교회를 통해 일본복음화와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성령님을 보내 주셨고, 기도 응답의 복을 주셨고, 하나님 자녀된 권세를 주셨고,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함께해 주셨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부모나 형제,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나 이웃에게서도 받을 수 없는 그런 사랑과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저주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7. 기독교 신앙은 빼앗는 대신에 나누어 주고, 섬김을 받는 대신에 자신을 내어주므로 섬기는 신앙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신 것처럼, 그리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신 것처럼. 

그래서 자신을 내어주는 이 사랑에 대하여 사도요한은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일요4:9-10)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받음으로 구원을 얻고 영원한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이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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